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23> 헤드라인 쇼퍼와 뉴스 스캐닝


 

 

‘독자가 떠나가고 있다!’
종이신문 업계는 뉴미디어가 독자를 빼앗아갔다고 ‘네 탓’을 하지만 독자는 읽을거리가 없어서 신문을 스스로 떠나왔다고 냉정하게 외면하고 있다. ‘똑똑한 독자’들은 더는 새롭지도 않고, 분석적이지도 않고, 심층적이지도 않은 신문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비슷한 무료정보가 넘쳐나는데 굳이 돈을 내고 신문을 사 볼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한다. 이렇게 독자가 외면하다 보니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광고주는 지갑을 닫고, 저널리즘은 위축되고 있다.
그렇다면 ‘떠나가는 독자’를 붙잡아 다시 불러들일 방법은 없을까?
우선 절대 필요조건은 ‘좋은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고, 그다음 충분조건은 ‘좋은 콘텐츠’를 제대로 편집하는 것이다. 이때 편집은 스쳐 가는 독자의 시선을 멈칫하게 해서 헤드라인과 이미지, 그리고 인포그래픽 등으로 기사를 읽게 만들고, 열독과 구독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내비게이션(navigation) 역할을 한다.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뉴스 편집은 활자 미디어가 갖는 시간의 제약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자들을 강력하게 흡입할 수 있는 새로운 편집 스타일을 요구받고 있다.

‘News Reading’에서 ‘News Scanning’
신문 열독률 감소가 ‘떠나가는 독자’를 대변하고 있다. 2019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동안 종이신문을 읽었다’는 응답자는 12.3%에 불과했다. 1996년 열독률이 85.2%로 거의 열 명 중 아홉 명이 종이신문을 탐독하던 시대에서 이제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소비하는 세상으로 급변했다.
구독률은 1996년 69.3%에서 해마다 내리 하락세를 거듭하더니 지난해에는 급기야 6.4%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종이라는 플랫폼은 독자에게 잊혀가고 있지만, 신문 기사 자체는 그렇지 않다. 종이신문을 포함해 다양한 디바이스로 기사를 읽은 비율을 의미하는 결합열독률은 88.7%로 전년 대비 소폭 상승했다(2017년: 88.5%/2018년: 86.1%). 또한, 최근 1주일간 주요 경로별 신문 기사 이용률 변화도 두드러졌다. 모바일 인터넷(스마트폰, 태블릿 PC)을 통한 신문 기사 이용률은 8년 전인 2011년(19.5%)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지만(79.1%), 종이신문의 경우 꾸준히 하락해 12.3%로 내려앉았다(출처: 2019 언론수용자 조사/언론진흥재단 재구성).
이같이 종이신문 열독률은 떨어지고 있지만 헤드라인 중요성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수용자들이 인터넷 공간(PC/모바일)에서 신문 기사를 소비할 때 가장 큰 선택 기준은 ‘헤드라인’이다. 인터넷 타임라인에 쌓인 유사한 기사 중 이성과 감성을 사로잡는 몇 개의 기사를 클릭(터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용자들이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 제호보다 헤드라인에 이끌려 클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헤드라인 위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헤드라인 쇼퍼(Headline shopper)’라고 부르는데 위와 같은 조사 결과들은 현실적으로 헤드라인이 오히려 본문보다 더 중요하고 수용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스마트미디어 시대 수용자들의 뉴스 소비는 ‘News Reading’에서 ‘News Scanning’으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모바일로 무장한 유비쿼터스 수용자들은 종이신문 중심의 정태적 뉴스 소비에서 벗어나 집, 지하철, 직장 등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동태적 뉴스 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열독률은 높지만, 몰입도가 낮다는 것이다. 이동 중에 뉴스를 소비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헤드라인 위주로 클릭해서 가볍게 콘텐츠를 소비하고 또 다른 사진이나 기사의 ‘핫 링크’를 눌러 콘텐츠 쇼핑을 하는 것이다. 이런 뉴스 소비를 ‘News Scanning’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가볍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헤드라인 뉴스나 팩트(fact) 중심의 속보는 열독률이 높지만, 호흡이 긴 장문의 심층해설 기사, 즉 In Depth Report는 상대적으로 클릭 수가 떨어질 수도 있다.
‘헤드라인 쇼핑 시대’ 편집기자의 역할
또한, 바닥을 친 것으로 보였던 하루 평균 종이신문 이용 시간은 또다시 감소해 4.2분으로 조사됐다(출처: 2019 언론수용자 조사/언론진흥재단). 이 조사 결과대로라면 종이신문 수용자의 시선은 헤드라인을 쭉 훑어가면서 흥미 있는 기사와 사진에 잠깐잠깐 시선을 멈출 뿐이다. 이러한 ‘헤드라인 쇼핑 시대’에 제목은 다양한 지면의 구조물 속에서 정보의 로드맵을 그려주고, 수용자가 그 기사를 읽게 하는 ‘호객’ 역할을 한다.
이렇게 수용자의 열독 습관이 다이제스트 소비로 급변하고 있다. 헤드라인은 이제 단순한 본문 요약에서 벗어나 헤드라인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수용자의 감성과 이성에 소구해야 한다. 본문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소극적 정보 전달에서 편집기자의 관점을 녹인 스토리빌딩(story-building)과 스토리세팅(story-setting),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흥미를 끌어야 한다. 물론 스토리빌딩 과정에서는 기사의 팩트를 간과해서는 안 되고, 스토리텔링 과정에서는 쉽고, 빠르고, 강렬하게 메시지를 다듬어야 한다.
그렇다면 ‘헤드라인 저널리즘’ 또는 ‘헤드라인 독립’의 시대, 편집기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날카로운 이성의 잣대와 부드러운 감성의 상상력을 겸비한 ‘지면(紙面)의 제왕’ 같아야 한다. 기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통찰력과 그 통찰력을 통해 뽑아낸 제목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디자인 과학도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스트레이트 기사의 경우, 육하원칙에 따라 단순하게 제목을 뽑으면 되지만 스토리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해설성 기사나 감성적 접근이 필요한 피처스토리(Feature story)는 편집기자의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가 요구된다. 같은 내용의 기사라도 언론사마다 헤드라인이 다른 것은 뉴스정책이나 편집기자의 관점 차이에서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편집기자 개인의 능력과 열정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떠나가는 독자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편집기자가 쥐고 있는 셈이다. 오늘 지면 조판기 앞에 앉으며 기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의 발길을 잡고 싶어진다.

스포츠조선 콘텐츠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