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선거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승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략 싸움을 펼친다. 물론 진흙탕 싸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꼼수나 비방, 모략은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이기는 전략이다.
신문도 매일 선거판과 다름없는 싸움을 한다.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다. 선거처럼 승자와 패자가 나눠지는 싸움은 아니지만, 다음날 아침 특종과 낙종 사이에서 누군가는 달콤함을 누군가는 혹독함을 맛본다. 선거 시즌이 되면 그 싸움은 한결 더 독해진다. 민심이 어디로 향해 있는가를 정확히 꿰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 당일 그리고 다음날 각 신문의 1면을 통해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끌게 한 전략과 그들의 선택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살펴본다.


#오늘 뭐 하십니까? 당신의 목소리 찾으세요
총선 당일 상당수 신문들은 국민의 소중한 권리 행사를 강조하는 제목과 디자인으로 승부했다. 4년 전 20대 총선이 열리던 날(2016년 4월 13일)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4가지 시나리오’로 파격적인 지면을 선보였던 경향신문은 올해 선거일에도 실험성이 돋보였다. 4월 15일자 1면에는 기표 마크가 찍힌 마스크 사진과 ‘다녀올게요, 투표소’라는 인상적인 제목이 함께 했다.
21대 총선은 기존의 선거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감염 위험 때문에 유권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투표소에서 위생장갑을 끼고 투표했다. 어떤 이들은 20대 국회 4년에 대해 말조차 꺼내기 싫을 지도 모른다. 이 지면에는 유권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말을 하지 않아도 21대 국회에 대한 바람을 투표로 말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다녀올게요, 투표소’라는 제목을 실행하듯.
서울신문과 중앙일보는 지면에 역사를 소환했다. 서울신문은 제헌국회에서 20대 국회까지 거치는 동안 국회에서 결정됐던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1면에 담았다. ‘21대, 어떤 국회를 원하십니까’라는 제목은 21대 국회의 명장면 또한 국민이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4년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오로지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날 발행한 중앙 일간지 1면 중 서울신문이 유일하게 광고를 싣지 않았다. 유권자의 권리 행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중앙일보는 서울신문과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1면에 창간 이후 치러진 역대 총선(7~20대)의 결과를 실은 지면들을 역순으로 배치했다. 중앙일보가 사진 대신 지면을 넣은 것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의도치 않은 사진으로 인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지도 모를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일보도 두 신문과 비슷한 스타일의 지면을 선보였다. 17~20대 총선 다음날 1면 4장을 싣고 ‘어떤 세상을 꿈꾸나요’라며 물음표를 남겼다.
전자신문은 국회의사당 앞에 의자 하나를 놓고 찍은 사진을 1면에 사용했다. ‘이 자리에 앉을 자격 선택의 날’이라는 제목이 그 의미를 말해준다. 국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아무나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다. 300개 의석에 앉을 자격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경제의 1면 제목이 신선하다. “오늘 뭐 하십니까?” 달력에 선거일은 빨간 날로 표시가 되어있지만,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다. 놀러가더라도 그 전에 반드시 투표하라고 호소한다.
지방지에서도 색깔 있는 지면들이 많이 나왔다. 인천일보 역시 경향신문처럼 1면에 마스크를 가져왔다. ‘당신의 목소리를 찾으세요’는 투표로 말하라는 의미다. 코로나로 인해 소통이 단절된 역대 최악의 선거가 됐지만, 투표권 행사로 마스크를 뚫고 유권자의 목소리를 내어주기를 유도했다. 영남일보는 상단에 특별한 메시지를 담았다. 발걸음을 응용한 두 개의 기표 마크 사이에 ‘거리는 두고, 투표율은 높여요’라는 제목을 붙였다. 20대 총선 때 대구경북의 낮은 투표율을 깨알같이 넣어 지역민 스스로 투표율을 높이도록 움직이게 했다.


‘한 곳만 바라보지 않았다’ 민심 담은 한 줄
선거 결과가 담긴 4월 16일자 조선일보의 1면 사진 선택은 흥미롭다.
출구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 가운데, 당 지도부 사이에 앉은 이낙연 공동상임위원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위원장은 양쪽 옆에서 금방이라도 환호성을 지를 것 같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두 손으로 살짝 막아서고 있다. 마치 ‘아직 지켜봅시다. 들뜨지 말고 신중하게 대처합시다’며 말하듯. 선거운동 기간 동안 막말이 판을 쳤다. 그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위원장의 신중함이 담긴 이 장면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적표를 받은 여야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서울신문 1면의 ‘177석, 역대급 슈퍼여당’이 눈길을 끈다. 많은 신문들이 ‘민주당, 단독 과반’을 제목으로 사용한 데 비해 당시 상황에서 좀 더 명확한 숫자(개표 완료 후 180석)와 단어를 끌고 왔다.
한국경제는 사진 대신 정당별 전국 당선지역을 나타내는 그래픽을 실었다. 늦은 시각까지 경합을 벌인 선거구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동서로 나뉜 파란색과 분홍색이 선거 결과를 한눈에 알려준다.
‘충북은 한 곳만 바라보지 않았다’. 충북일보의 제목은 압권이다. 선거구 8곳 중 4곳이 초박빙 대결을 펼쳤고, 5대3으로 나누어지게 된 선거 결과를 한 줄에 잘 표현했다. 
대전일보는 1면에 당선인과 경합 지역 후보자들의 얼굴만 실었다. 선거 결과를 알리는 기사가 다음날 ‘당연하게’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비례대표 투표 용지를 실제 크기로 ‘난감하네’
선거 기간에 나온 이색적인 지면들을 소개한다. 4월 1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실렸다. 그것은 세로 길이 48.1㎝에 달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 무려 35개 정당이 참여해 역대 가장 긴 투표용지가 됐다. 경향신문은 이 투표용지를 광고도 포기하면서 실제 크기로 실었다. 유권자의 혼란을 가중시킨 점을 꼬집기 위해서다.
경인일보의 3월 30일자 5~9면에 실린 경기지역 입후보자 명단은 편집자들의 정성과 노력이 돋보인다. 선거 때 어느 신문에서든 한번은 나올 법한 입후보자 명단이지만 경인일보는 달랐다. 선거구별로 나누고, 그 구획은 그래픽으로 계단을 만들어 깔끔하게 정리했다. 유권자들이 걷고 오르고 투표하는 그림은 독자들이 지면을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했다. 이 지면을 만드느라 고생한 경인일보 편집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