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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숙 기자의 교열 이야기


날으는 ‘기생충’, 아시아태평양어워드 최우수작품상 영예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날으는 개인용 비행체 상용화”
날으는 응급실 닥터헬기, 8년간 1271건 출동


한글문서에서 ‘날으는’을 쳐보면 엔터키와 동시에 ‘나는’으로 저절로 수정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만큼 확실하게 틀린 표기다. 그런데도 이 ‘날으는’은 오늘도 어딘가의 매체에서 큰 제목으로 쓰이는 힘 센 오자이기도 하다. 최근 개인용 비행체가 부각되면서 자주 거론돼 눈에 띄는 오류 제목으로 떠올랐다.
‘날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공중에 떠서 어떤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이다’란 뜻의 동사인데 이 동사는 활용이 중요하다. ‘날다-날아-날면-나니-나는’이 된다. 마지막에 ‘날으는’이 아니고 ‘나는’이 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날다’에 ‘-는’이 연결되면 ‘ㄹ’이 탈락되는 법칙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보다 ‘날으는’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렇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70~1980년대 방영한 추억의 시리즈물 외국 드라마 ‘날으는 원더우먼’ 때문이다.
이 외화시리즈는 그 시절 어찌나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지 결방이라도 하는 날이면 항의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이런 원더우먼의 인기 덕분에 ‘날으는’이란 단어가 우리 머릿속에 표준어로 잘못 각인되는 저력을 갖게 됐다. 한번 자리 잡은 기억의 힘은 대단해서 표준어인 ‘나는’보다 더 자연스러운 표기로 자리매김한 ‘날으는’은 이제 드라마가 종영한 지 4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오류에는 ‘거칠은’이 있다. ‘나무나 살결 따위가 결이 곱지 않고 험하다’란 뜻의 형용사인 이 단어는 ‘거칠어-거치니-거친’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1984년 가수 김수철 씨가 발매한 노래 ‘젊은 그대’가 지금도 각종 경기의 응원가로 쓰일 만큼 인기를 누리면서 ‘거친’을 쓸 자리에 아직도 ‘거칠은’이 종종 쓰이고 있다. 거칠은 벌판이 아니고 거친 벌판이 맞는 표기다.
 참고로 ‘시들은’ ‘찌들은’ ‘녹슬은’도 몽땅 틀린 표기다. ‘시든’ ‘찌든’ ‘녹슨’으로 써야 바르다.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