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재택 편집해보니 / 경인일보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커지자 경인일보 편집국에도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사옥 1층에는 호텔 체크인을 기다리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습니다. 감염병에 대해 무지했던 터라 중국어만 들려도 황급히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콜록 콜록” 어디선가 기침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승강기에 같이 타면 몸을 돌려 피하기 바빴습니다. ‘이러다 확진자가 나올 것 같다’ 막연한 불안감이 편집국에 커져갔습니다.


# 신천지 보도 후 전달된 비상플랜
‘자가 격리’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할 때쯤 편집국 내 비상 플랜을 점검 중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가 격리나 건물 폐쇄를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현장 마감, 감면 등 각 부서별 대처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편집부도 ‘재택 편집’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부서원들이 보유한 PC를 조사 후 상대적으로 성능이 좋은 PC를 추렸습니다. 논란도 있었습니다. 노트북으로도 재택 편집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결론은 OK. 기술 관련팀에 자문 결과, 화면이 작아지고 조작감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 편집 작업에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 명의 ‘베타테스터’들이 선발됐습니다.


# 드레스룸에 자리를 펴다
재택 편집 결전(?)의 날. 간지를 집에서 완성하고 오후 늦게 출근하라는 데스크의 오더를 받았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임할 생각에 집에서 가장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안방 드레스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빈 선반에 노트북과 마우스를 올려두니 안락한 사무실이 완성됐습니다. ‘여기라면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겠구나.’ 근무 장소를 확보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출근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현관을 열고 집을 나서는 대신 노트북을 열고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 데스크보다 무서운 딸아이의 습격
처음엔 순조로웠습니다. 근무 장소만 바뀌었을 뿐 제작 방식은 똑같았으니까요. 거실에서는 다섯 살 큰 딸의 포효하는 소리와 50일 갓 지난 둘째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습니다.
기사를 정독하고 조판을 시작하려던 그 때. 드레스룸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아빠 뭐해?” 거실에서 뽀로로를 보고 있던 큰 딸이 옆에 앉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아달라고 합니다. “아빠 지금 일 하는 중이야. 낮잠 코 자고 일어나서 아빠랑 재밌게 놀까?” 늘  이 시간에 출근하던 아빠가 집에 앉아서 노트북을 보고 있으니 이상했나봅니다. “근데 아빠 왜 회사 안 가?” “응 그게 아빠가 재택근무를 하게 돼… 아니 오늘은 회사 안 가는 날이… 아니 회사를 조금 늦게 오라고 해서 이따 갈거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큰 딸을 달래고 다시 편집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 “선배 그게 아니고요…” 결국 전화기를 들다
평화가 찾아오자 내 몸에 불편함이 찾아왔습니다. 15인치 노트북 화면은 아무리 쳐다봐도 적응하기 어려웠고, 키보드 배열이 조금 다르다보니 단축키를 누르는 손가락이 꼬이기 일쑤였습니다. 회사에서 직접 조판하는 것보다 아주 미세하게 딜레이가 발생하는 것도 은근히 신경 쓰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통’. 메신저가 있지만 복잡한 소통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픽 작업을 하는 중 선배가 메신저를 보내서 의견을 물었는데 회사와는 달리 알림창이 뜨지 않아 나중에 확인하고 답장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래픽이 완성돼서 앉혔는데 당초 의도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서 다시 메신저로 얘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픽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는데… 위치도 조금 왼쪽으로….” 같이 있었으면 1분도 안 걸렸을 수정 작업이 메신저를 통해 진행하려다 보니 속도가 안 나 답답했습니다. 결국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더 강력해진 큰 딸의 포효와 더 애절해진 둘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현관을 나섰습니다. 어색한 시간에 출근을 해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니 한두 명씩 물어봅니다. “어땠어?” “집에서도 편집을 하는 게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다음 대답은 속으로 했습니다. (“아이가 집에 있으면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안광열 차장


 "아빠 어디 봐" 경인일보 안광열 차장이 재택편집 중 다섯 살 큰 딸의 놀아달라는 재촉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혼자 작업해보니 편집은 역시 ‘협업’


재택 편집해보니 / 아시아경제 / 이근형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매일 매일 늘어나자 각 언론사들은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대면 인터뷰, 모임·회식을 자제하는 등 되도록 사람들과 접촉을 줄이라는 게 요지였다. 그리고 각 출입처에 문을 닫는 기자실이 늘어나면서 취재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편집기자에게는 아직 남일이었다. 편집 툴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시아경제가 사용하고 있는 서울시스템의 경우에는 락 키(lock key)가 반드시 필요했고 서버와 프린터까지도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어서 회사 밖으로 컴퓨터를 들고나가 작업을 할 수 없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 것은 원격시스템 연결.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도중에 편집부에도 재택근무 시스템 구축 미션이 떨어졌다.
기술파트에서 전달해 준 방법은 역시나 원격접속을 통해 내부 컴퓨터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일단 내부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무실 안에 방 하나를 잡아 놓고 재택근무와 같은 환경을 구현해 테스트를 했다. 중간에 몇 번 사람들이 들락날락 했지만 어쨌든 테스트는 성공. 3월 5일부로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은 출퇴근 시간의 소멸이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나서 잠을 깬 후 컴퓨터를 켰다.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회사였다고 해도 지금은 다들 조간을 체크하는 시간이고 작업 중에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원래도 조용한 아침 시간이지만 완벽한 적막은 낯설었다.
회사 내에서는 회의가 끝나고 오늘의 지면계획이 날아온다. 지면계획에 맞춰 발제를 점검하고 비슷한 기사가 나온 게 있는지 인터넷으로 체크한다. 아이가 깼다. 다행히 장모님이 아침시간에는 봐주기로 해서 작업에 집중한다. 하지만 종종 로봇을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온다. “아빠, 합체가 안돼요.”
급할 땐 문 열고 뛰쳐나갈 수 있는 상태와 달리 재택편집은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오가면서 말로 전달하면 될 수정·참고·요청 사항들이 일일이 메신저로 날아왔다. 망할 미쓰리 메신저는 이름이 앞에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디가 앞에 나오기 때문에 여러 개가 함께 날아오면 누군지 헛갈리기 일쑤다. 평소에도 마감을 끝내면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는 일이 많았는데 평소보다 더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전은 끝났다.
오후가 되자 아들과 단둘이 남았다. 점심을 먹고 부서원들과 남이 타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 시간인데, 밥을 대충 먹고 아이 점심을 챙겨줬다. 아이와 함께 재택을 하게 된다면? 모두 웃으면서 놀리듯 상상했던 그것. 그 장면이 펼쳐졌다. 아이는 자기 혼자 두는 아빠를 가만 두지 않는다. 아예 방에 로봇을 가지고 들어와서 철퍼덕 앉아 놀다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오른팔에. 일단 과자를 먹이면서 진정을 시킨 후 오후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아빠 나랑 놀아요.”
어쩔 수 없이 꺼내든 카드. 거실 TV 앞에 데려다 놓고 유튜브를 켜줬다. 평화가 시작됐다. 서둘러 틀을 잡아 놓고 기사를 앉혔다. 들려오는 비명소리. “이거 아니야∼” 방에서 나와서 TV를 보니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유아를 보면서 재택을 하는 기자들은 명심할 것. 재택에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이다.
하루 이틀이 쌓여가고 2주쯤 시간이 흐른 지금. 재택근무도 그럭저럭 할 만해졌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서버 불안정으로 회사에서보다 더 끊기기도 하지만 어쨌든 마감은 했다. 또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땐 더 신속하게 재택 시스템을 갖추고 지금보다 많은 인원을 재택근무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끝내고 남은 뭔가의 아쉬움, 찜찜함이 있다.
지금은 기술적으로 딜레이가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케스트라 단원도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스피커만 올려놓으면 되니까. 그런데 제대로 될까. 합주라는 것은 그 순간의 분위기와 묘한 차이에서도 바뀔 수 있다. 누군가 못 따라 오는 단원이 있다면 다른 파트에 더 힘을 줄 수도 있다. 관객과 연주자들의 몰입도가 높아 더 열정적으로 연주를 진행할 수도 있다. 신문 제작도 그런 면이 있다. 마감임박해서 쏟아지는 기사, 새로 터지는 이슈, 바쁜 움직임이 느껴지는 공기.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 공기가 신문에 담기면서 신문 편집은 더 생기를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택에서는 그럴 수가 없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사실, 편집은 종합예술이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