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편집부 지정 생존자’로 분리 근무해보니 / 세계일보 


대휴 중에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받았다. 수화기 저 편에서 진정 다급한 부장의 말씀이 들렸다.
“혜차! 생존팀이야, 내일부터 가산으로 출근해”
놀란 나의 말을 전할 틈도 없이 부장의 말씀이 이어졌다.
“그냥 똑같이 일하면 돼. 하던 일 그대로 하면 돼! 알았지!”
당황스러운 나도 급하게 묻는다.
“왜 제가 가요?”
“아무 이유 없어. 그냥 가”


 세계일보는 코로나19 확산 대비 차원에서 3월 2일부터 가산동에 새 사무실을 마련해 이원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가산동 사무실에서 편집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모습.


그렇게 나는 생존팀에 합류했다. 이미 간지 데스크가 생존팀 선발대로 일주일 전부터 가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출근해서 그 선배의 빈 책상을 보고서야 그 곳에 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렇듯 선배도 어느 날 갑자기 생존팀장이 된 것이다.
생존팀 사무실은 가산동에 있다. 이곳으로 통하는 모든 길은 미로 같다. 미로는 어디로 가도 막힌다. 당연히 막힐 길 일찍 나섰다. 전에 편집국으로 쓰이던 건물은 이제 임대건물이 됐다. 세 평 내지는 네 평짜리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 사무실이 마련됐다. 도착했을 땐 컴퓨터 설비가 끝나지 않아 본사 총무팀장이 나와서 세간살이를 구비하는 중이었다. 흡사 본가에서 쫓겨나와 변두리 단칸방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처럼 분위기는 묘했다. 속속 도착한 생존팀원은 편집자 4명에 미술기자 1명, 제작팀 3명과 화상·정보기술부 각각 1명씩이었다. 이렇게 총 10명이 생존팀을 꾸렸다.
우리의 임무는 만약에 사태, 이를테면 코로나19 접촉자나 확진자로 인해 본사가 폐쇄됐을 때 이 곳에서 지면 제작을 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간지도 똑같이 짜고 야근도 똑같이 기존에 하던 업무를 그대로 하면 됐다.
그러나 달라진 환경은 똑같은 프로세스로 제작하기엔 열악했다. 제대로 프로세스를 갖추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다.
과정은 똑같다. 부서 방에 올라온 지면 계획을 확인하고 부장에게 지면확정 사인을 받으면 그대로 기사 챙겨서 제목을 달고 레이아웃을 그린다. 지면 제작을 하다 혹여나 마감 임박해서 변수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5시30분 강판보다 생존팀은 지면 제작을 15분 앞당겨야 한다.
기사를 챙기려 출고부서에 전화하니 처음이라 그런지 모두 협조적이다. 수고 많다며 해당 기사를 가장 먼저 챙기겠노라 약속한다. 나쁘지 않다. 편집하며 이렇게 친절한 출고부장들의 태도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막상 난관은 소통에 있었다. 마감에 임박할수록 전화는 빗발치는데 단 두 대 뿐인 전화기를 쫓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작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메신저나 유선전화 외에 다른 소통 방법은 없다. 지면 막느라 정신없는데 본사에서 전화는 계속오고, 깨톡은 미친 듯이 울려댔다. 좋은 지면은 고사하고, 하자 없는 지면도 담보할 수 없는 날들이 반복됐다. 야근 때는 소통 자체가 더 어려웠다. 생존팀 사무실에서 편집자 홀로 대기하고, 야근조장은 보이지 않는 야근자에게 어떤 업무를 배분해야 할지 헷갈렸다. 어떻게 확인하고, 조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사무실내 유선전화가 보충되고, 메신저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사무실에서 11분 거리 구로 콜센터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 긴급메시지는 많게는 하루에 7, 8개씩 울려댔다. 점심시간, 식당안 사람들이 동시에 전화기를 챙겨드는 풍경이 자주 펼쳐졌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긴급메시지에 생존팀은 하루아침에 위기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 배달음식은 금지라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하는 식사 시간마다 생존팀이 먼저 폐쇄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갑자기 찾아온 감염병처럼 느닷없이 꾸려진 생존팀은 불안했다. 감염병이 언제 잦아들지도, 또 언제 본사로 돌아갈지도 담보할 수 없다. 팀원 중 3명이 일산에 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다닌다. 둘은 자차로 이동하지만, 정년에 가까운 선배는 두 시간 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함께 가자 권해도 출퇴근 편하자고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노예 19년차라 그런지 뼛속까지 노예 근성으로 가득한 나는 분리 불안에 시달렸다. 본사에서 떨어져서 열악한 환경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 모두에게 똑같이 벌어진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로 생존 21일차, 커피 향 그윽하던 사직로 뒷길이 벌써 그립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만을 우리들은 바라고 있다. 면수와 관계 없이 그런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기엔 프로세스가 받쳐주지도 않지만, 마음의 준비는 더더욱 안됐기 때문이다. 본사 팀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빠져나간 편집자와 조판자. 편집자야 제 판 짜면 될 일이지만, 안 그래도 부족한 조판자가 빠졌으니, 마감시간에 종합면 조판마저 편집자들의 몫이 됐다. 처음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던 불만이 이제는 체념이 된 듯하다.
생존팀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제작 과정에 조금의 여유가 찾아왔다. 점점 위세가 약해지는 감염병도 위안이 된다. 이 상황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생존팀만큼 본사팀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편집국 진상들 안 보니 속 편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이다. 그거 하나는 정말 편하다. 괜히 목청 높이는 사람도, 황당한 트집 잡는 사람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좁은 사무실에서 함께 비비고 있을 때가 좋았다. 우린 이제 돌아가고 싶다. 


서혜진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