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사회: 남한서 협회 부회장
패널: 권오진 문화일보 차장, 김남준 동아일보 차장, 서반석 조선일보 기자, 임윤규 중앙일보 차장 (가나다 순)

1면은 신문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 꽃을 피워주는 사람이 편집기자다. 오늘 톱기사에 최고의 제목 한 줄을 뽑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대로 강판만 된다면 흥행 대박은 말할 것도 없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국장단, 데스크단에서 시끌시끌하다. 설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갑자기 터진 뉴스에 속에서 울화통이 터진다. 엎어야 한다. 하지만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에 또 기가 막히는 제목을 뽑아낸다. 나를 숨기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지면에 쏟아낸다. 그게 1면 편집기자다. 각 신문을 대표하는 1면 편집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열정과 고민이 담긴 이야기들을 함께 들어보자. 

사회: 1면 편집을 언제부터 하고 있고, 몇 명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나?
임윤규: 2015년부터 햇수로 5년째 1면 편집을 맡고 있다. 중앙일보의 경우에는 혼자 하던 때도 있었는데 힘드니까 2명이 교대로 맡고 있다.
권오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작년부터 올해까지 하고 있는데 문화일보는 1면을 한 명이 담당한다. 1면 편집자가 휴가 가는 경우를 대비해서 대체 편집자를 둔다. 중간의 3년은 종합면을 하면서 간간이 1면을 대체했다.
김남준: 처음 시작한 것은 2011년. 그 때는 전담으로 하는 선배가 한 명 있었고, 야근에 그 선배가 한 작업을 이어받아서 3교대로 하는 백업 멤버로 1면을 시작했다. 1년을 그렇게 일을 한 후, 본격적으로 맡아 3교대와 전담을 거쳐 지금은 맞교대를 하고 있다. 하루씩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
서반석: 1면을 맡은 지 1년 정도 됐다. 1면 편집자는 3명이 돌아가며 제작한다.
사회: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다음날 타사와 바로 비교가 된다. 내가 만든 1면이 살짝 밀렸다는 기분이 든 적 있나. 애로사항에 관한 얘기도 듣고 싶다.
임윤규: 1면 하면서 달라진 것은 큰 것을 보는 눈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큰 사건은 물 먹었다는 느낌은 좀 덜한데, 단독 뉴스의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잘 뽑았을 때는 다르다. 한방 크게 맞으면 자꾸 생각이 난다. 맞붙어서 깨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다. 1면을 하고 있다는 마음 때문에 다른 걸로 만회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권오진: 나 같은 경우는 석간이다 보니 아침에 벌어진 뉴스의 이슈 셋팅을 하거나 조간 뉴스를 이어받아 이슈 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뉴스의 흐름이 어떤지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1면 편집자라는 자리가 신문의 스탠스, 국장의 성향과 자신의 관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하는데 그 점이 어려운 것 같다.
김남준: 국장의 스타일에 따라서 굉장히 많이 바뀐다. 어떤 국장은 1면을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하라는 지침을 1년 내내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는 튀고 임팩트 있게 제목을 만들었다. 
서반석: 1면 편집은 기존 면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편집을 처음 시작할 때는 기발하고 재치 있는 것들이 좋아보였는데, 1면을 시작하고부터는 적확한 표현에 더 신경 쓰게 된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숨기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을 하게 됐다. 아주 적확한데, 핵심을 찌르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찾는 싸움인 것 같다.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니까 그런 부분들이 어렵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사회: 다른 신문에서 최근에 본 인상적인 제목들이 있나.
임윤규: 좋은 제목들이 나오면 찍어서 좋은 점과 의미 같은 것을 담아 ‘카톡’에 저장해놓고 반복해서 보는데 스크랩 수가 2년 전 정도부터해서 확 줄었다. 요즘엔 평타 수준의 제목이 많다.
권오진: 전체적으로 신문 제작 스타일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편집상 제목도 예전엔 2자, 3자짜리 짧은 제목도 있었는데, 올해는 대부분 긴 서술형 제목이 대세인 것 같다.
임윤규: 우리가 덜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에 쫓기고 기사에 쫓기고 하다 보니 그런 건 아닌지. 나도 예전보다는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다.
김남준: 짧고, 힘 있고, 임팩트 있는 제목들을 예전처럼 너그럽게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닌 측면도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때 <세계 최고 ‘봉’>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영화라는 매체는 예술인데 최고, 1등급, 2등급 식으로 등급 부여를 한다는 것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순간의 환희를 터뜨리는 게 어떨까 해서 쓴 제목이었는데.
서반석: 예전에는 논란이 되어도 회자되는 제목이 더 좋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팩트에 충실한 제목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 최근 조국 사태 같은 큰 이슈에 눈에 띄는 수상작이 안 나오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편집이 이슈를 주도해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취재가 가져온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편집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윤규: 조국 사태는 민감한 사안이라, 정확한 제목으로 가는 게 맞다. 여러 가지 특종이 터지는 데, 스스로가 맥을 잡고 있지 않으면 기사의 경중을 파악할 수가 없으니까 전체의 흐름을 그려가며 따라갔다. 갑자기 발제가 들어오면 기사를 파악할 시간도 없으니 미리 흐름을 잡아놓으면 따라갈 수가 있다.
김남준: 조국 사태는 워낙 복잡한 것이 많아서, 출고 부서에서도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었다.
권오진: 다들 비슷하겠지만 자칫 한쪽으로 조금만 치우쳐도 악의적인 제목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그런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
김남준: 조국 사태와 관련해서 팩트에 최대한 신중하고, 충실하고, 적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안이었다. 맥을 정확하게 짚어주거나 숨겨져 있던 의미를 두드러지게 해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회자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편집의 역할이 좀 무력했다는 점을 느꼈다.
서반석: 조국 사태는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중간 중간 상황을 정리해줘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스트레이트를 뛰어넘는 편집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고민도 반성도 많이 한 시간이었다.
사회: 1면 편집하면서 이것만은 지키자 하는 철칙 같은 것은.
김남준: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새롭게 해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매일매일 새로운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니다. 반발 짝 나가거나, 제자리에 맴돌면서 토씨만 하나 바뀌어서 비슷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땐 편집이라도 새로워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편집의 우선은 ‘새로움’이다.
임윤규: 나는 루틴(routine)이라는 걸 만들었다. 난 커피를 좋아하는데 아침에 일부러 마시지 않는다. 출근할 때까지 40분 정도 걸리는 데 참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커피 집에서 한잔 먹는 순간 행복하다. 마음을 즐겁게 해서 나오니까 기분이 좋다. 아침밥 먹기 전에 2~3개 신문을 보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준비운동을 미리 해둔다.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가 세계 1위가 된 비결이 바로 ‘루틴’이다. 준비운동을 하고 일을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김남준: 준비 시간을 더 여유 있게 가지자는 말씀 아닌가. 임 선배와 아까 커피 한잔하면서 루틴에 관한 얘기를 잠깐 했다.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됐다. 아침에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커피 한잔하면서 여유 있는 시간 동안 모든 세팅을 하는 것이다. 오늘 어떤 뉴스가 톱으로 잡힐 지, 제목은 어떻게 갈 것인지 마인드 컨트롤로 준비한다고 들었다.
임윤규: 남들과 똑같은 시간에 출근했을 때 허겁지겁 일을 시작하고, 뉴스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겼다. 나를 위해서 최적화된 몸을 미리 만들어놓는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권오진: 1면 처음 맡았을 때는 국장한테 끌려 다녔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만드는 가장 긴밀한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한편으로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1면 편집기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지켜야 할 선 같은 것들을 잘 만들어놓아야 한다.
서반석: “이거 안 될 거야”라는 자기 검열만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방향이 맞지 않아 깨지더라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먼저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 하나만은 지키려고 노력하다.
사회: 내가 작업한 지면을 다음날 신문으로 봤을 때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그 때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김남준: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이건 내가 만든 지면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반석: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다. 강판을 끝낸 1면은 너의 것이 아니라고. 가능하면 종쇄와 함께 아쉬움도 마감하려 한다.
사회: 데스크에게 진심이 담긴 ‘엄지 척’을 한 적이 있다면?
임윤규: 기술과 체력과 인성을 다 갖춘 위대한 사람이 데스크인 것 같다. 인성이라는 게 착하고 못 되고 그런 게 아니다. 프로 세계의 인성은 프로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데스크는 위대한 사람 같다.
김남준: 종합면 데스크(차장)와 부장 데스크 두 분을 모시고 있는데, 두 분이 지향하는 편집 스타일이 나와 많이 다르다. 우리 데스크들은 ‘팩트 귀신’이다. 팩트의 강약만으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내공이 대단한 분들이다. 충돌보다는 그런 점을 배우고 상호보완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내 편집 성향이 지금까지 어떤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던 게 분명히 있다. 그게 잘 고쳐지지는 않지만, 보완이 되고 업그레이드되는 데 보탬이 많이 된다.
권오진: 두 번의 1면 편집을 하면서 네 분의 국장과 두 분의 데스크를 모셨는데 항상 국장 교체기에 1면 편집을 하다 보니 데스크와 1면 편집기자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반석: 편집자가 놓고 있는 큰 역할 중 하나가 뉴스 밸류의 판단이라 생각한다. 우리 데스크는 늘 취재가 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강조한다. 취재에서 별거 아니라는 기사를 1면으로 뽑아내 큰 반향을 끌어낸 경우를 자주 봤다. 깊게 보면서 또 멀리 보는 눈을 데스크를 통해서 많이 배운다.   
김남준: 밸류 판단이라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거는 톱이고, 이거는 1단이라고 판단을 할까. 우리가 생각하는 뉴스 밸류라는 것은 과연 자기의 뉴스 철학으로써 판단하는 것인지, 언론 시장과 언론사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타지의 이런 사례도 있다. 거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돌고래 ‘제돌이’를 1면 톱으로 키워 ‘동물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면, 이 밸류 판단은 무리수로 시작했지만 묘수로 성공했다. 밸류가 없어 보이는 것을 발굴해 거대 밸류로 발전시킨 사례. 그렇다면 밸류 판단이라는 것은 결국 여론시장에서 히트할지를 미리 읽는 흥행감각 같은 것일까.
권오진: 각 사가 선호하는 팩트가 있다. 작은 팩트로 큰 뉴스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어떤 팩트는 단발성으로 끝나거나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파급력은 작지만 지속성이 있다고 보는 그런 뉴스도 있다. 결국 취사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임윤규: 가치라는 게 ‘같이’ 만들어가는 거니까. 너무 혼자 세상의 고민을 떠안으면 안 된다.
사회: ‘같이’의 가치. 맞다. 신문은 같이 만들어 가는 거다. 1면 편집기자들의 고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결국 내 이야기 같다. 오늘 말씀들은 각자의 1면에 투영될 것 같다. 귀한 시간 내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