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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남준 차장 해외시찰 후기]


비행기를 타야 할 인천공항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추락과 상승을 아찔하게 오가는 롤러코스터만 타다가 비행기는 못 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패딩점퍼가 더운 건지, 머리에서 김이 나 그런 건지, 내 얼굴에는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출국 전날 밤 12시 : 짐을 다 싸놨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챙길 건 여권(이게 패착이었다. 여권을 마지막에 챙기다니). 이상하다. 없다. 이사 오며 짐 정리 하다가 다른 서랍에 넣어뒀나. 3시간 동안 온 집을 뒤졌지만, 없다. 롤러코스터가 내리막으로 시동 걸린 순간이었다.
#출국 당일 새벽 3시 : 인터넷 검색으로 인천공항에서 임시 긴급여권 발급받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 그럼 그렇지. 여권 없다고 출국 못 한다는 게 말이 돼?(이 오만) 롤러코스터 오르막으로 급반전.
#출국 탑승 3시간 전 : 외교부 영사민원 창구에 임시여권 발급 신청서를 여유 있게 들이밀었다. 창구 직원의 철퇴. “독일은 괜찮지만 프랑스는 임시여권 자체를 인정 안 해 입국 불가합니다.” 악! 급전직하로 롤러코스터 추락.
#출국 탑승 2시간 전 : "생각을 하자, 생각을." 나도 모르게 영화 ‘극장전’의 극강 찌질 캐릭터 동수가 했던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여기저기로 전화를 돌렸다. 종로구청 여권과에 본래 여권 즉시 재발급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답은 “불가.” 아내에게 전화해 여권을 다시 찾아보라고 했다. 반응은 “뭐?” 이 한 마디. 심지어 외교부에까지 방법이 없나 문의해봤다. 결과는 ‘노.’ 롤러코스터 추락에 가속도.
#출국 탑승 1시간 40분 전 : 임시여권 발급에만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는데 지금 만든다 해도 시간이 없다. 게다가 발급 신청 자체를 안 받아준다. 출국을 포기하자.
#출국 탑승 1시간 30분 전 : 미친 속도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롤러코스터를 멈춰 세운 건 여행사 인솔자였다. “프랑스 안 가는 일정으로 바꾼다고 말하고 일단 임시여권 발급받으시죠. 독일에서 프랑스 입국 땐 육로로 가니 여권 검사 안합니다. 그러니 파리에 들어가면 한국대사관 들러 여권 재발급 신청합시다.” (이 얼마나 똑소리 나는 솔루션인가)
#출국 탑승 데드라인인 14시 25분 : 임시여권이 나왔다. 받아들고 뛰었다. 허겁지겁 짐을 부치고 탑승 게이트로.
#출국 탑승 : 비행기에 타니 단체톡에 ‘탑승을 축하한다’는 문자가 쇄도.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탑승을 축하받은 건.
#귀국 탑승 전날 : 파리에서 여권을 도둑맞은 더 기막힌 사연의 후배가 나타났고, 우린 바로 동병상련의 ‘여권 동지’가 되고 말았다. 그 동지의 멘붕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게 바로 출국 전 인천에서의 내 표정이었을 테니까.


동아일보 김남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