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 2주의 시간
11월 초 어느 날 이승규 편집부장이 기획회의를 마치고 나와 나에게 말을 했다.
“디지털뉴스국 모바일팀과 뉴콘텐츠팀에서 산재 기획을 하는데, 지면에 들어갈 것 같아”
그러고는 하는 말이 “1면은 산재 피해자 명단만 들어간대”라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 수일 뒤 ‘11월 중순쯤’으로 정해진 게재 날짜와 함께 960여명의 산재 명단이 초안으로 내 손에 쥐어졌다.
장○○(46·떨어짐), 김○○(46·끼임)…. 단순하고 반복적인 이름들의 명단들이었다.
명단들로 1면을 채우자고 한 것이 편집국장의 아이디어라는 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이제는 ‘알 길이 없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명단을 손에 쥐고 ‘삽화를 그릴까?’ ‘김용균 씨의 사진을 넣을까?’ 등등 여러 생각을 하며 회사 화상 DB를 검색하던 중 눈에 탄광촌에 버려진 안전모 사진이 들어왔다.
거꾸로 뒤집힌 안전모 사진을 펜터치 형태롤 만들어 보면 좋겠다 싶어, 디자인팀 성덕환 팀장에게 작업을 부탁해 지금 신문에 실린 ‘안전모 이미지’가 나오게 되었다.
고백하건대 명단으로만 지면을 채운다는 생각에 김진성 서울신문 부국장이 운영하는 편집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월호 당시 제작한 ‘수작’ 한국일보 오피니언판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따라하기엔 제 능력이 너무 부족했다는 점도 이 글을 통해 전한다.
하루하루 지면을 만들면서, 틈틈이 산재 기획면을 만졌다. 제목도 이래저래 뽑아보고 레이아웃도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고…. 그 사이 명단의 숫자는 1,200명으로 늘었고, 그에 맞춰 레이아웃도 바뀌었다.
해당 지면 신문 제작일 11월 20일 아침 출근길에 담배를 피우다 ‘제목을 세로로 세워볼까?’ 생각이 들었고, 최종 지면을 포함해 3개 정도의 시안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11월 20일 오전 11시쯤 편집국장이 “지면을 볼 수 있냐”는 물음에 이승규 편집부장 손에 3개 지면을 들려주었다. 편집국장과 기획 기사를 출고하는 담당 부서인 디지털뉴스국 편집장 그리고 편집부장이 모여 회의 끝에 당일 아침 아이디어로 제작한, 신문에 게재된 세로 내림 제목의 지면으로 낙점되었다.


# 모두가 함께
신문이 게재된 다음 날 아침.
아마도 내 인생에 그렇게 많은 칭찬과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1면 편집자가 누구냐”는 이야기도, 지면을 보고 여야 3개 당에서 특별하게 성명을 발표했다는 말도, SNS에서 쏟아지고 공유되는 것도,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회사 내부의 누가 내게 말했다
“우리 경향신문이 산재 문제에 그동안 열심히 보도하고, 담아낸 것이 한번에 터진 것 같다. 기획에 참여한 개개인도 잘했지만, 조직의 역량인 거 같다”
나는 이 말에 크게 동의한다.
사회부, 청와대, 모바일팀 발령 후에도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던 김지환 기자의 첫 단독 발제와 이것을 온라인 전용 콘텐츠로 담아내어 수작을 만들어 낸 뉴콘텐츠팀, 그리고 신문에 담아낸 편집부와 그 모든 것을 허용한 경향신문의 내부 구성원들 모두의 공이다.
1면은 신문의 얼굴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처럼 무능한 편집자는 한달의 대부분을 경향신문이라는 제품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거 같다.
‘오늘도 3명이 출근하지 못했다’ 지면은 경향신문 편집기자라면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지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단지 그날 1면의 자리에 있었을 뿐.
1면이라는 화려한 포장지가 벗겨진 뒤 알맹이가 부족하면 그 제품은 ‘가짜’이듯. 2면과 3면을 담당한 이종희, 김용배 기자가 산재 기획에 딱 맞는 제목과 훌륭한 레이아웃으로 기획의 본질적 내용을 돋보이게 담아 주었다.
 이종희, 김용배 후배는 (아무도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경향신문 ‘90년대생 보고서’ 기획 때도 1면에서 난잡하게 만든 것을 2면과 3면에 무릎을 탁치는 제목으로 멋지게 담아 주었다. 부족한 선배지만 편집기자로서 그들의 능력을 상찬해주고 싶다.


# ‘울림’
개인적으로 산재 명단을 처음 보았을 때,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고 문익환 목사의 ‘연설’이 떠올랐다. 문익환 목사의 연설에 그 어떤 수사도 그 어떤 요구도 없지만 독재에 항거하다 사그러든 열사들의 이름을 절절하게 부르는 모습.
1년간 사라진 노동자들의 모습을 지면으로나마 불러준 것이 이 지면의 가장 큰 울림이 아닐까 싶다.
그 지면을 보고 대학 졸업 후 평생을 노동권과 인권을 위해 살아온 나의 존경하는 선배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 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진심. 떠나보낸 이들을 우리에게 체적 얼굴이 되게 한 거, 그 호명들이 정말 값진 거라서 고맙다”고….


경향신문 장용석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