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그걸 알았으면 내가 뉴욕타임스를 인수했지!”
언론 현업에 종사하는 누군가의 한마디다. 디지털 시대 편집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도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있지만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 한다. 그래도 또 물었다. 제25회 한국편집상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편집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았다. 지난 11월 15일 한국 프레스센터 1층에서 한국편집상 수상자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경인일보 박준영 차장, 동아일보 김남준 차장, 조선일보 서반석 기자, 아주경제 최주흥 기자, 한국일보 윤은정 기자 5명의 수상자가 참석했고, 협회 김창환 부회장(세계일보)이 진행을 맡았다.



 지난 11월 15일 한국프레스센터 1층에서 한국편집상 수상자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경인일보 박준영 차장, 조선일보 서반석 기자,

동아일보 김남준 차장, 협회 김창환 부회장(진행·세계일보), 아주경제 최주흥 기자, 한국일보 윤은정 기자.



김창환: 편집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
김남준: 모든 매체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영화 미술 광고뿐만 아니라 시각적 모든 것이 레이아웃과 디자인 차원에서 다 힌트다. 또 텍스트로 되어 있는 모든 미디어가 힌트다. 또 하나, 지면 배정이 되면 데스크나 동료들이 농담으로 한 마디씩 던지는 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 영감이 되는 단어나 표현들을 건지고 그 뉴스를 바라보는 인식을 깨우칠 때가 많다. 작심하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뉴스 댓글 식으로 논평하는 것들이다. 편집이 혼자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집단지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한마디씩 던지는 것들이 진지한 회의가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집단지성이 된다.
서반석: 동감한다. 내 일이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자꾸 딱딱한 생각만 하게 된다. 한 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조언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 줄 때가 있다. 그리고 또 댓글 창에 떠 있는 단어들을 참고하게 된다. 댓글을 보면서 이 뉴스를 이렇게도 해석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과정이 편집에 도움이 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특히 양쪽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박준영: 특별한 곳보다는 일상에서 인상 깊었던 것에서 힌트를 챙긴다. 주요 이슈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대립을 많이 한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구나’라는 식으로 많이 활용한다.
윤은정: 포털에서 연예뉴스 댓글을 없앤다고 해서 가장 두려웠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나도 편집할 때 댓글을 많이 활용한다. 요즘에는 포털보다 유튜브를 많이 본다. 유튜브에도 댓글이 다양하다. 신선하고 기막힌 편집 자막도 많이 등장한다. 유튜브를 보는 도중에 캡처해놨다가 지면에 써먹기도 한다.
최주흥: 나도 유튜브가 떠올랐다. 요즘에 핫한 ‘펭수’를 좋아한다. 그 채널을 보면 최신 트렌드가 다 나온다. 거기에 나오는 자막을 눈여겨본다. 사람 얼굴에  ‘ㅏ’ 모음을 붙이는 식의 새로운 기법이 많이 나온다. 옛날신문을 찾아 볼 때도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가끔 들어가 보고 참고한다. 둘러보면 옛날 지면 중에 좋은 지면이 많다.
김창환: 편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편집 원칙이나 철학을 갖고 있는지.
최주흥: 배워가는 과정이라 데스크나 선배들로부터 듣는 게 많은 편이다. ‘공감’ 얘기를 많이 한다. 그전에 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해서, 눈길을 끄는 게 좋은 편집이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누군가 내 지면을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게 있어야 좋은 편집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내가 만든 지면은 100% 공감할 때보다는 꼭 한 두 명이 ‘이게 뭐냐’라고 물어볼 때가 많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편집을 하는 게 꿈이다.
윤은정: 막내 때는 선배들 지면이나 외국 신문들을 보고 따라하는데 목적을 뒀다. 맡은 지면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마냥 화려하게 하려고만 했다. 그러다보면 기사와 레이아웃이 따로 노는 편집이 많았다. 이 일을 점점 하다 보니 편집은 정돈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문이라는 것이 기사 하나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지면 전체를 보는 것이니까, 얼마나 정돈이 잘 돼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박준영: 여행면은 여행면답게, 사람들면은 사람들 면답게. 편집은 어느 면을 맡느냐에 따라 필요한 요소가 달라진다. 그래서 항상 제로베이스에서 접근한다. 나는 중간을 추구한다. 지면을 화려하게 꾸미려고만 하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단순하게만 하면 재미가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가운데’ ‘중간’을 마음에 두고 항상 고민한다. 
서반석: 편집은 설득의 연속이다. 취재를 설득하고, 데스크를 설득하고 또 그 과정을 통과한 제목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설득의 기본은 앞서 얘기가 나왔던 공감이다. 나 혼자 ‘이거 너무 죽이는데’라고 생각하면 뭐하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숱한 경험을 지나며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찾고 있다. 내가 그 기사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 그려 본다. 때로 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혹은 한발 옆에서 보기도 한다.
김남준: 내 성정이 감성적 경향이 있어서 편집을 할 때 충돌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감성적 사람인데 기사에 따라 논리적이고 이성적 접근을 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3년 전 추석 무렵 미국 호텔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 광장에 몇 만 명이 모여 공연을 보고 있는데 그 호텔에서 용의자가 4만명 머리 위로 총탄을 날린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야근 때 알려졌고 1면에 잡히게 됐다. 고민하다가 독자들에게 극적으로, 감성적 충격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1면 제목을 ‘4만명 머리 위로 총탄이 쏟아졌다’라고 뽑았다. 그랬더니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다. 총기 난사 사건은 ‘00명 사망’ 이런 식으로 침착하게 접근해야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논란 끝에 그대로 제목이 나왔다. 이번 대상 수상작인 점자 편집도 그런 감성적 방향으로 접근했다. 물론 그런 방식이 위험하고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김창환: 제목이나 레이아웃이 안 될 때 어떻게 돌파구를 찾는지. 노하우를 공개해 달라.
김남준: 어디서 그런 걸 본 적이 있다. 생각이 안 날 때는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ㅎㅎ
박준영: 진짜 그렇게 하게 된다. 편집을 하다가 막히면 몸을 움직인다. 그러면 분위기 전환이 된다. 일단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손이라도 씻으면서 계속 되뇐다. 책상에 돌아와 자리를 정돈하면서 일을 재시작한다.
서반석: 다들 영업비밀이라 그런지 말을 아낀다. ㅎㅎ 머리가 안 움직일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맞다. 담배를 못 끊는 이유가 그래서다. 저희 회사는 흡연 장소가 건물 밖에 있다. 사무실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간다. 뒤뜰 벤치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단풍 보고 하늘을 본다. 오가는 길에 누군가 만나 잠깐 수다를 떨면서도 돌파구가 나오기도 한다.
최주흥: 나는 오히려 손을 열심히 움직여 본다. 타이핑으로 가제를 쳐보고, 지면에 그림이라도 하나 올려보면서 궁리를 해본다.
김남준: 일단 네이버에 뭔가 검색어를 때려 본다. 그러면 뉴스, 블로그 심지어 이미지까지 쫙 뜬다. 스크롤해서 내려가 보면 이미지에서 새로운 접근이 튀어 나올 때도 있다.
김창환: 가장 확실한 건. 데스크한테 한 번 혼나는 거다. 위기에 몰리면 제목이 나온다.
서반석: 데스크에게 들릴 정도로 엄청 큰 한숨을 쉬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데스크로부터 “왜”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해결책을 내놓기도 한다.
김창환: 언론 환경이 디지털 쪽에 무게가 쏠리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서 편집의 역할이나 전망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나.
윤은정: 편집부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디지털국에서 2~3년 정도 일을 하고 돌아왔다. 정답은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서 표현하는 큰 틀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다르지 않다. 편집부 선배들이 디지털에 대해 두려워하고 지면과 다르다는 오해를 많이 한다. 지면 편집자들이 그런 편견을 깨는 게 우선인 것 같다.
김창환: 오프라인 편집을 했던 게 디지털 쪽에서 도움이 됐나.
윤은정: 그렇다. 제목을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비해 디지털 업무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도 편집부 출신이 디지털에 집중력 있고, 사안을 넓게 본다는 평가가 있다. 편집기자가 오히려 디지털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다. 
서반석: 디지털과 지면은 너무 다르다. 디지털 쪽은 기사나 제목이나 휘발성이 강하다. 지면 편집자로서 앞으로 중요한 점은 내가 가치 있는 뉴스를 판단할 수 있느냐,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곱씹어 볼 수 있는 제목을 달 수 있느냐에 있다. 그리고 디지털 영역이 넓어질수록 편집자 영역도 더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스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누구보다 편집자가 잘하는 일이니까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창환: 편집 기자들은 오래 앉아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보며 활동량이 많지 않다. 평소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
김남준: 한때 헬스를 하다가 지겨워서 그만뒀다. 당시 헬스 트레이너가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운동법을 가르쳐 줬다. 스쿼트, 푸시업, 프로거 플랭크(바닥에 엎드린 자세에서 개구리처럼 폴짝 뛰었다가 다시 엎드리기) 3종 세트를 코치해 줬다. 당시 시작은 20개씩 3세트. 꾸준히 개수를 늘려서 지금은 40개씩 6세트를 한다. 다 하면 30분가량 걸리고 땀이 쫙 난다.
윤은정: 심각한 건 아니지만 부종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1시간에 한 번씩 움직이라고 했다. 마감 시간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화장실에도 못 가서 기저귀를 차야할 판인데. ㅎㅎ 부종 해결을 위해서 일하는 중간 중간에 잠깐씩 일어나 움직인다. 마사지 기구도 따로 사서 퇴근 후에 셀프 마사지를 한다. 한때 운동을 꾸준히 했다. 그런데 운동도 꾸준히 하니까 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긴다. 요즘에는 나의 행복함에 기준을 두고 산다. 술 먹고 싶으면 미친 듯이 마시고 다음날은 운동도 하고 균형을 찾으려고 신경 쓴다.
최주흥: 걷는 것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나서 회사 주변을 많이 걷는다.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1시간 정도 걷는다. 매일 같은 코스가 아니라 다양한 코스를 선택한다. 그렇게 하루를 환기시키면 머리도 정리되고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서반석: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담배를 끊으면 10년 더 살 것 같은데 안 피우면 오늘 죽을 거 같다. ㅎㅎ
박준영: 몇 년 동안 체중이 많이 불었다.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 끝나고 집에 가서 맥주 한 캔에 야식을 꾸준히 먹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풀리는데 몸이 불어 나가니까 병원에서도 혼나고 와이프한테도 혼났다. 
김남준: 부서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라’는 거다. 비타민이나 영양제나 간기능 개선제나 약을 멀리하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김창환: 편집기자에게 데스크란? 가볍게 얘기해 보자.(신변 보호를 위해 발언자 익명 처리)
A: 데스크는 내 제목을 가장 먼저 보는 독자다. 그 사람을 넘어서야만 신문에 나가게 된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만든 지면을 다듬어 주고 같이 고민해 주는 최고의 파트너다.
B: 안 고치면 밉고, 고쳐도 미운데, “네가 고쳐”라고 얘기하면 가장 밉다. 안 고치면 내가 발전이 없지 않나. 그렇다고 고치게 되면 ‘내 세계를 몰라주나’라는 서운한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데스크가 고치는 경우 대부분 옳을 때가 많다. 한데 직접 고쳐 주면 좋은데 어떨 때는 “다시 생각해 보고 네가 고쳐 봐”라고 얘기한다. 나를 존중해 주는 것인데 가장 힘들어진다.
C: 데스크는 구명조끼다. 마지막 순간에 나한테 남은 최후의 보루다. 쓰지 않아야 하는 카드이면서 어쩔 수 없는 순간에 꼭 필요한 존재다. 평소에는 안 써야 되지만 죽을 위기에 닥치면 하나 밖에 없는 생명줄이다.
D: 나를 성장하게 하는 사람이다. 내 생각과 다를 때도 ‘이렇게 고쳐’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데스크가 고쳐주는 게 맞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마디씩 들어가면서 성장을 해 나간다.
E: 데스크는 사랑이다.ㅎㅎ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B: 가끔 소름끼칠 때가 있다. 한쪽 눈에 현미경, 한쪽 눈에 망원경을 장착했다. 원근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디테일과 숲을 다 본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고 내가 상상도 못했던 지점에서 꼬집는 안목에 감탄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