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박춘원의 호모비디오쿠스

 

텔레비전은 최소 지난 70~80년간 전 세계에 걸쳐 매스미디어의 시대라고 특성이 정의되는 인류사적 시기를 열고 주도해 온 미디어였다. 방송 역사에서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을 이용해서 방송을 송출한 국가와 시기는 독일, 1928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시험 방송 수준으로서 국가 단위에서 도입된 본격 텔레비전 방송은 1929년 영국 BBC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올해가 2019년이니 텔레비전 방송이 지구상에 출현한지 90년이 된 해이다. TV 방송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90년 동안 기술면에서 기계식 TV로 출발해서 이제 풀 디지털 TV로 진화했으며 조만간 꿈의 화질이라 일컬어지는 8K 해상도(7680X4320)를 지원하는 FUHD(Full Ultra High Definition) 방송이 일반화될 예정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의 경우 15인치 기준 최고 해상도가 통상 1920X1080이므로 8K 해상도라면 얼마나 정밀한 화질을 제공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TV와 관련된 기술 진화는 눈부시다.
하지만 매스미디어 시대를 대표하는 영상 매체로서 TV 방송은 이제 90년이라는 나이와 더불어 서서히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이들이 ‘본방사수’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 용어야말로 TV 방송의 쇠락을 상징하는 대표 용어가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기반 OTT와 모바일 서비스의 일반화로 인해 이동 중에 자신이 보고싶은 동영상 콘텐츠를 마음대로 찾아보는데 익숙한 시청자들은 더 이상 TV가 설치된 특정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봐야만 하는 TV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다. 게다가 휴일에 보고 싶은 콘텐츠를 한번에 몰아보는 이른바 ‘빈지워칭(Binge watching)’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TV 방송사에서 제발 우리가 방송하는 시간대에 방송 좀 봐 주세요 하고 읍소 하는 용도로 탄생한 용어가 본방사수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구조 변혁의 중심에 소셜미디어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개인 동영상 공유 서비스인 유튜브가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이제 TV로 상징되는 매스미디어 시대가 저물고 유튜브로 대표되는 1인 영상 미디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지구적 범위에서 시대를 주도하는 미디어 세대 교체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소통 체계의 구조 변화다. 즉, 기존의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에서 다수와 다수간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일반화되는 변화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TV 매체가 행사하던 사회 주요 의제 설정 기능에 기반한 문화 권력이 해체되고 이들 권력이 이제 개인에게 이전되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미디어 권력 이전의 대표적 현상이 지난 8월에 발생했다. 지난 8월 25일 유튜버 퓨디파이(PewDiePie·본명 필릭스 셸버그) 계정 구독자가 1억명을 돌파한 것이다. 채널을 개설한 지 9년 만의 일이다. 물론 인도 한 음반회사가 운영하는 ‘T-Series’ 채널이 5월에 구독자 1억명을 기록하긴 했지만 이는 운영자가 거대 미디어 회사라 개인인 퓨디파이의 경우와 수평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누가 1억명 돌파를 먼저 했나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 중계를 주로 하는 개인 유튜버의 말 한마디가 전 지구 범위에서 1억명에게 도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십년간 전 지구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TV라는 매체는 이제 생존을 위해 유튜버라는 개인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으며 영향력은 감소일로에 있다. 한국에서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 PD 나영석씨의 유튜브 진출을 들 수 있다. 나영석 PD가 취하는 전략은 독특하다. 유튜브에 개설한 ‘채널 나나나’에 업로드 한 20여분짜리 정도의 영상이 본편이고 나 PD가 제작해서 TV 방송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말미에 약 5분정도 삽입한 내용은 유튜브 채널로 시청자를 끌고오기 위한 이른바 트레일러 형식이다. 유튜브와 공중파의 지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채널 나나나’는 9월 20일에 첫 방송 시작 후 한달 지난 현재 구독자 87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스타 PD 중 한명인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역시 유튜브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중이다.
더 극적인 사건은 MBC 뉴스데스크 1일 광고 매출액과 유튜브 키드 채널인 ‘보람TV’의 1일 광고 매출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올 7월 26일 MBC 노동조합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세간에 알려진 내용을 보면 이날 MBC 뉴스 광고 판매액이 역대 최저인 1억 4000만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금액은 5살짜리 꼬맹이와 또래 친구 2명이 장난감 가지고 노는 영상 위주인 ‘보람TV’ 1일 평균 광고 매출액 1억 2000만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거대 공중파 방송사인 MBC의 뉴스 광고 판매액이 늘 이렇지는 않다. 하지만 최저라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스태프 몇 명 데리고 가내 수공업 환경에서 제작하는 꼬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콘텐츠 광고 매출과 비슷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는 시청자에게 콘텐츠가 도달하는 정도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지표인 조회수를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통계 자료에 나와 있는 가구수와 평균 TV 보유대수를 기준으로 한국내 총 시청 가능 TV 대수를 2300만대로 추정하고 MBC 뉴스의 최근 평균 시청률을(2~3%) 기준으로 시청자 수를 산출하면 50만~70만 뷰 정도가 나온다. 이에 비해 보람TV 채널에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콘텐츠는 무려 1억 2000만 뷰를 기록하고 있고 인기 있는 콘텐츠들의 경우 약 4000만 뷰를 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실시간 시청자 수와 유튜브 콘텐츠의 누적 조회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뉴스의 경우 실시간 소비되고 추가 소비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고 따로 유튜브에 편집해서 업로드 해 놓은 뉴스 영상 누적 조회수를 살펴봐도 1만 단위를 넘지 못하고 있어서 누적 조회수를 반영한다는 게 그다지 의미가 없다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제 영향력에 기반한 미디어 권력은 개인에게 완전히 넘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존 저널리즘 미디어에 종사하던 기자들도 속속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개설하고 1인 미디어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짜 뉴스 범람 등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사회 전체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개인들에게 부여된 미디어 권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적절한 자정 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 공론장을 구축하는 것이다.

위즈메타 CTO 겸 한국외대 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