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신문에 점자가 마치 오톨도톨한 듯 인쇄돼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그 점자로 손이 갔다. 눈을 감아 보았다. 그리고는 사진 속 점자책을 더듬는 하선 양의 손가락들처럼 내 손가락들로 지면 위 점자를 더듬어 봤다.”

밤 10시까지 13시간 3분에 걸쳐 ‘점자 수능시험’을 마친 시각장애인 학생의 감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점자라는 돋보이는 아이디어를 지면에 접목시킨 김남준 차장.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의 출발점은 여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숙력된 과정들과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결단들은 얼마나 큰 고민의 결실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편집상 대상 수상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편집을 할까. 그의 편집은 뭐가 다를까. 평범하지 않고 평범해서는 안 될 인터뷰를 기대하며 그를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차장과의 일문일답.

   

-먼저 한국편집상 대상 수상소감을 부탁한다.

영광스럽고도 민망스럽다. 심사위원단에 낙점 받은 것만도 큰 영광인데, 협회 회원사 동료기자들이 투표로 뽑아준 대상이니 이보다 더 영예로울순 없을 것 같다. 가슴 한켠에 말로 다하기 어려운 감사가 묵직하게 들어차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수상 소식을 들은 우리 누나가 보인 첫 반응을 잊을 수 없다. “뭐냐, 너 솔직히 장애인 문제에 별다른 관심 없었잖아.” 적어도 나보다는 장애인 인권이나 생활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누나가 던진 한 마디에 뜨끔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무심했던 내가 편집 아이디어 하나 갖고 이토록 큰 상을 받아도 되는 건지…. 더구나 점자 체계에 대해 일자무식이면서도 지면에 활용한 그 뻔뻔함이란…. 그래서 요즘 수상 축하 인사를 들을 때마다 “민망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나 자신과 독자, 편집동료들이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갖게 된다면 의미 있는 편집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점자를 사용한 편집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멋진 지면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싶다.

처음엔 막막했다. 전국에서 가장 늦게까지 수능을 치른 시각장애인 학생 김하선 양의 고충과 환희와 소망을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기사였다. 자칫 뻔하거나 신파조의 얘기가 될 수도 있어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사진부 선배가 찍어온 사진 중에 하선 양이 점자 교재를 손가락으로 읽고 있는 컷이 있었다. 유심히 들여다봤다. 손가락으로 점자를 더듬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렇게 손끝으로 점자를 하나하나 해독해가며 수능시험을 치른다면 얼마나 큰 수고를 들여야 하는 걸까. 밤 10시까지 13시간 3분에 걸쳐 ‘점자 수능시험’을 다 마쳤을 때엔 어느 정도의 성취감과 탈진을 맞닥뜨리게 되는 걸까. 내가 느낀 그 궁금함과 막막함을 독자와 함께 나눠보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독자들은 18세 김하선 양이 감당하는 실존적 조건과 인고의 도전을 간접적으로라도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독자로 하여금 하선 양의 도전을 점자로 더듬어보게 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진을 일단 과감하게 트리밍했다. 상반신과 얼굴까지 다 나온 사진이었는데 점자책을 더듬는 손만 남겨놓고 잘라냈다. 그리고 제목을 뽑아내려 하선 양에게 ‘빙의’해봤다. 하선 양이 느꼈을 피로와 희열을 생생히 전달하는 구어체 제목을 생각했다. 취재기자에게 ‘밤 10시 수능 끝! 271쪽 점자 문제 다 풀었다’라는 헤드라인을 점자로 표현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알아봐 달라고 주문했다. 하선 양에게 점자를 가르친 부모님께 연락해 결국 점자 형식의 문장을 받은 후 디자인팀에 제작을 의뢰함으로써 신문지면 위에 점자를 구현해낼 수 있었다. 신문에 점자가 마치 오톨도톨한 듯 인쇄돼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그 점자로 손이 갔다. 눈을 감아 보았다. 그리고는 사진 속 점자책을 더듬는 하선 양의 손가락들처럼 내 손가락들로 지면 위 점자를 더듬어 봤다.

 

-편집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두 가지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취재, 편집기자 모두 점자를 모르니 제목을 점자 형식의 ‘번역본’으로 받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자꾸 지체돼 조바심 났던 기억이 또렷하다. 또 한 가지는 점자 제목을 얼마나 리얼한 입체감으로 신문지면에 구현해낼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 레이아웃 구상을 들은 황준하 편집부장이 “잘 나올까…. 책임지고 잘 나오게 해봐”라며 무거운 재량을 주셨다. 다행히 디자인팀 김충민 기자가 ‘천의무봉’의 솜씨로 입체같은 입체아닌 점자를 완성해냈다.

그리고 하나, 고백하듯 밝히고 싶은 게 있다. 만약 내가 몇 해 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대성당’을 읽지 않았다면 이날 ‘점자 편집’할 생각을 했을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엔 서먹했던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성당을 그림으로써 하나가 되는 ‘굉장한’ 장면이 나온다. 시각장애인의 제안으로 펜을 잡은 비장애인은 처음엔 성당을 보며 그린다. 움직이는 그 손 위에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손을 포갠다. 그러고는 펜을 쥔 비장애인에게 그대로 눈을 감고 그려보라고 한다. 하나의 손이 돼 역지사지 ‘체인징’한 두 사람. 유체이탈과 상호빙의의 경지에서 공감의 마법을 겪는다. 소설은 비장애인의 한 마디로 끝난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지면 구상을 할 때 소설 속 이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 접점을 찾기 위해 소설이 시각(그림)을 촉각(손 포갬)으로 치환했다면, 난 그걸 패러디해 촉각(점자)을 시각(비주얼 그래픽)으로 변환했다고 할까. 하하, 너무 거창한가. 그런데 하늘 아래 새것 없다고, 아마 이런 점자 편집 시도는 처음이 아닐 거라고 추측해 본다. 유수한 편집기자들 중 어느 누군가는 이미 해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가 받은 이 상은 먼저 하고도 드러나지 않은 그분들께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편집에 대한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편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편집이 무엇이냐는 거대한 질문에 답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고, 내가 지향하는 편집은 있다. 어쩔 수 없이 내 기질이나 삶의 이력과 맞물려 있는 문제일 텐데, 대학 때 문학을 전공했다. 물론 얼치기, 사이비 문학도였지만 세상과 사람을 ‘문학적’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프란츠 카프카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책이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 이 문장 속 ‘책’ 대신에 ‘제목’이란 말을 넣어보고 싶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제목. 마음에 가닿아 그 사람의 관성과 타성을 깨뜨리는 편집.

모든 기사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제도나 조직, 경제수치나 거대담론을 다루는 경우에도 그 기사의 주인은 ‘사람’이다. 사람에 곡진하게 가닿고 사람을 지성(至誠)으로 이어주는 편집을 하고 싶다. 수상작인 점자 편집에 빗대어 말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점자를 놓고 싶다, 더듬어 접점이 되도록.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의 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곡선들을 각진 팩트로 옮겨놓은 게 기사”라고 했다. 팩트라는 육하원칙에 압사당하는 진실의 주름이 얼마나 많을까.

이번 조국 사태로 언론이 상처를 많이 입었다. 동의 안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난 언론이 조국 사태의 피해자를 넘어 어떤 면에서는 최대 패배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주류 언론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팩트 절대주의’의 신뢰도에 거대한 균열이 생긴 것 같다. 언론은 빼도 박도 못할 팩트라며 보도했지만, 상당수의 독자와 국민은 ‘악마의 편집’이라며 불신하기도 했다. 언론이 팩트를 조합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김훈이 말한 ‘세상의 곡선들’을 놓치거나 찌그러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 편집이 팩트로 진실을 압사시키지 않을지 늘 조마조마하다. 이 두려움을 넘어 단순하고 각진 팩트에서 복잡하고 말랑한 진실을 되살려 전달할 수 있을까. 내겐 영원한 화두다.

 

-주로 어떤 면을 담당하는지.

이틀에 한번 꼴로 야근을 하는데, 야근 날엔 오전부터 밤까지 종합1면을 편집하고, 야근 아닌 날엔 종합2~8면 중에서 맡는다. 1면도 어렵지만 안쪽 면도 안 풀릴 때는 정말 어렵다. 디테일을 챙기다 큰 그림을 놓치기도 하고, 숲을 본답시고 나무를 팔아먹기도 하고. 21년차 편집자인데도 나날이 헤맨다. 내가 헤맬 때 황준하 편집부장이 나선다. 나는 황부장이 가장 무섭다. 한쪽 눈엔 현미경, 다른쪽 눈엔 망원경을 장착한 채, 원근을 조절해가며 샅샅이 두루두루 내 편집의 들보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나도 황부장도 말이 별로 없는 편이라서 일은 조용히 진행되는데, 부장이 때때로 입을 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종합데스크로서 모든 걸 울트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짧게 한마디 툭 던지는데, 면도날처럼 예리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면도날에 베일 때마다 배운다. 우리 부서엔 그밖에도 여러 가지로 무서운 선후배들이 정말 많다. 숫기가 부족해 평소 표현은 거의 못했지만 늘 든든하고 감사하다.

 

-편집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당연히 여러 신문들이 1차 소스다. 강호엔 배워야 할 고수 편집자들이 정말 너무 많다. 그리고 책과 영화, 미술, 광고 등 모든 ‘매체’가 교재다. 가령 시를 읽으며 제목 표현을 기웃대 보고, 영화 미장센에서 사진 트리밍을 배우고, 광고를 다룬 책에서 레이아웃 힌트를 얻기도 한다. 시사 유튜브 방송과 댓글을 보면서 여론을 염탐하기도 한다. 길거리 상점 간판들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카피’를 어떻게 뽑았나, 뭐 건질 건 없나 해서. 하하.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과 그 이유는. (★필요시 통째 삭제)

글쎄….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겸양이나 무성의가 아니라 진짜 그렇다. 지금까지 편집기자로 살면서 판을 짠 후 단 한 번도 “그래, 이거다” 싶게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결벽주의 성격 탓인지 지면 어딘가에는 꼭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 거였다. 이번 수상작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마찬가지였다. 제목을 더 함축적이면서도 여운 있게 달 수는 없었을까. 점자와 한글제목과 사진 배치를 좀더 효과적이고 세련되게 디자인할 수는 없었을까. 하긴 이 욕구불만이 기나긴 여정의 동력원이 돼 주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의 편집 노하우가 있다면 과감하게 공개해 달라. 평소 지면의 아이디어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유체이탈’을 자주 해 본다. 내 머릿속 폐쇄회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기사와 고정된 생각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공중부양해보면 가벼워진 머릿속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스치듯 들어올 때가 많다. 나를 벗어나 다른 인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보기도 한다. 취재기자나 기사 속 등장인물 입장에서 ‘내재적 접근’을 해 보면 막혀 있던 소통과 공감의 물꼬가 확 트일 때가 있다. 기사를 읽고 전달하는 일은 나를 내세우면 안되는 거간꾼 일이다. 그래서 나를 버려야 발신자와 수신자 둘 다를 얻는다는 걸 명심하려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이제 편집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주 긴 레이스이니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게 보고 우직하게 편집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기를 권한다. 해보고 나서 안 하는 것과 그냥 안 하는 것은 나중에 세월이 쌓인 뒤 큰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후배들은 다방면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 나만 신봉하는 ‘개똥 방법론’일 수도 있는데, 신문을 선도하려면 신문을 열심히 보면 되지만, 신문을 바꾸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편집기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오래된 나무도 새 잎을 틔운다’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늙은 편집나무가 돼도 새로운 잎을 계속 틔웠으면 좋겠다. 풍성히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대상/ 동아일보 김남준 차장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