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거듭된 반전 그리고 파격.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번개’에 가까운 세기의 회동을 가졌다.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상징인 장소에서 극비 보안이 유지된 채 극적으로 이루어진 회담. 미리 써놓은 각본은 없는 것 같았지만, 마치 예행연습을 거친 듯 회동은 착착 진행됐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고, 마침내 남북미 세 정상이 거짓말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을 뛰어 넘는 그림이 그려졌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담아내야 하는 편집자들의 고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전협정 이후 66년, 역사에 기록될 남북미 판문점 회동을 바라본 편집의 눈은 어땠을까.

경향, 서울, 한국의 눈에 띄는 전면 편집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면 떠오르는 지면이 하나 있다. 2000년 6월 14일자 중앙일보 1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악수하는 장면을 통 사진으로 광고 없이 전면에 실은 파격적인 편집이었다. 이 지면은 마치 교과서처럼 20년 가까이 편집기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후 몇 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통 사진을 쓰는 전면 편집은 ‘단골 메뉴’가 됐다. 특히 지난해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함께 월경하는 장면이나, 평양에서 카퍼레이드 중 오픈카 위에서 손 흔드는 장면을 담은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남북미 회동에서도 눈에 띄는 지면들이 많이 나왔다. 협회 회원사 중앙 일간지 중 1면에 전면 편집을 시도한 곳은 3곳.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그리고 한국일보.
경향신문은 제호를 정상적인 위치에 놓고 남북미 정상이 만난 모습을 세로 사진으로 담았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한반도 땅 위에서 미국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남북 두 정상이 웃고 있는 모습을 거의 유일하게 풀 사진으로 실었다.
한국일보는 좀 더 파격적인 편집을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전면에 싣고 기사 대신 사진설명만 붙였다. <트럼프 “김위원장 백악관 초청” 김정은 “분계선 넘은 건 과거 청산 의미” 文대통령 “한반도 평화 큰 고개 넘어”> 하단에 한 줄씩 제목을 넣어 세 정상의 메시지를 깔끔하게 전했다.
서울신문은 아예 지면을 가로로 눕혀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제목과 전문은 세 정상의 사진 아래로 넣어 시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남북미 또는 북미, 조금은 다른 사진의 선택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냐, 기획된 정치 이벤트냐. 
판문점 회동 소식을 전한 주요 중앙 일간지 1면들은 사진도 제목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남북미 정상이 함께 있는 모습을 실은 곳은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세 정상이 한 프레임에 있다는 것은 상징적인 느낌을 준다. 전쟁의 세 당사국 정상들이 전쟁이 멈춘 경계선에서 만난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감. 모든 신문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 대통령이 사진 속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북미의 대화 재개를 위해 ‘조연’을 자처한 문 대통령의 역할을 보여준다.
경향신문은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을 사용하면서 발아래까지 초점을 잡았다. 이것은 동적인 이미지로 작용한다. 남북미 관계가 앞으로 더 진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듯하다.
서울신문의 사진 선택이 인상적이다. 트럼프,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순서대로 서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전면에 실었다. 진지한 표정의 트럼프를 사이에 두고 웃고 있는 남북 정상들을 담은 다른 신문들과는 대비된다. 세계일보도 서울신문과 비슷한 사진을 사용했다.
경향신문과 세계일보는 제목에 ‘평화’나 ‘비핵화’라는 단어를 써서 실질적인 진전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점을 전했고, 서울신문과 동아일보는 '만났다'는 의미에 큰 방점을 뒀다.
조선일보는 <북한 땅 밟은 트럼프 “김정은 백악관 오라”>는 제목에 ‘깜짝 만남’에 의미를 두기보다 신중하게 앞으로의 상황을 계속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국민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북미 정상이 군사 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실었다. 북미 간의 대화 재개와 함께 ‘적대 관계를 넘었다’는 데 의미를 둔 듯하다. 국민일보의 제목처럼 ‘역사적 스무 걸음’.
문 대통령이 지난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것을 이미 봤기에, 주연만 문 대통령에서 트럼프로 바뀐 ‘시즌2’의 느낌도 든다.
그러나 트럼프가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순간, 그어진 선에 불과했던 ‘적대의 상징’을 넘는 장면이 훨씬 더 이미지 적으로 전달돼 ‘역사적인 월경’으로 각인 효과를 줬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의미가 그만큼 컸다.
한국일보는 <2019.6.30 15:46 북한 땅 밟다, 적대를 넘다>라는 제목에 역사적인 시간과 의미를 부여했다. 트럼프의 월경은 정지 화면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살아 움직인다.
중앙일보의 경우는 특이하다. 북미 정상의 뒷모습을 싣고 <트럼프 북한 땅 밟았다>는 제목을 달았다. 남북미 회동을 이끈 주체는 트럼프임을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짚었다. 그러고는 김정은의 안내로 트럼프가 분계선을 넘은 상황을 드라이하게 바라봤다.
지방지들은 대부분 판문점에 함께 선 세기의 회담에 주목했다. 인천일보는 북미 정상이 분계선을 넘고 돌아오는 장면에 판문각까지 잡았다. <남북이 넘은 선 북미도 넘었다>는 세로 제목이 눈길 끈다. 사진을 세로로 길게 잡아 1면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여백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매일신문은 <판문점에서 만났다…정전 66년 최고의 ‘반전’>이라는 제목을 썼다. 반전은 ‘反戰’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