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7월 19일 백두산 장백폭포를 배경으로 한국편집기자협회 N·E·W·S 원정대원들이 창립 55주년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부산일보 김동주 차장, 경남신문 강지현 차장, 세계일보 권기현 기자. 매일신문 박헌환 편집부장, 서울경제신문 김덕호 차장.


N·E·W·S 원정대 백두산에 가다
매일신문 박헌환 대장 등 5명
천지신명도 55주년 축하해 주듯
북파·서파 코스 두번 모두 ‘성공’

백두산을 다녀왔다고 주변인들에게 자랑했을때 처음 받는 질문은 뻔하고 분명하다.
천지를 봤느냐 못 봤느냐. 산밑에서 바라본 하늘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천지의 날씨는 여러사람들을 좌절시켜 왔었나보다. 여행 전 인터넷에서 찾아본 글들 중에는 천지를 보지 못했다는 불평이 많았다. 등소평도 3번을 올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나, 그래서 그런지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그 연못을 보려면 몇 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소문도 들었더랬다. 그래서 우리 원정대는 보았느냐? 대답은 “봤다”이다. 그것도 첫날과 둘째날 두 번다 성공했다. 천지신명도 편집기자협회 55주년 원정대를 축하하는 것 같았다.
한국편집기자협회 창립 55주년을 맞아 출범한 백두산 N·E·W·S원정대. 매일신문 박헌환 원정대장을 비롯 서울경제신문 김덕호 차장, 부산일보 김동주 차장, 경남신문 강지현 차장, 세계일보 권기현(필자) 기자 등 5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지난 7월 18일 3박 4일 일정으로 민족의 성산 백두산으로 떠났다.
첫날 오른 북파의 천지는 가까운 하늘에 가득찬 구름 덕분인지 진한 남색을 띠었고 봉우리들도 진한 고동색을 띄었다. 날카롭고 거친 봉우리들 사이로 장판같이 깔린 천지를 보니 가슴이 뛰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는 3년 전 4월에 백두산을 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북파코스를 실패하고 서파코스에서만 꽁꽁 언 천지를 볼 수 있었다. 하늘은 맑게 열려 드문드문 보이는 구름이 낮게 떠서 얼고 눈이 덮인 천지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기억이 있다. 얼지 않은 천지를 본 건 나도 처음이어서 소중히 눈에 담으려는데 날벌레들이 얼굴에 막 붙어대며 성가시게 했다. 여름이라 천지도 녹았지만 벌레들도 대목인 듯했다.
봉우리 바위의 경사면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고산지대의 산양처럼 총총대며 다녔다.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는데, 백두산(장백산)의 관광사업권이 몇년 전 길림성에서 중앙정부로 넘어간 뒤로 입산객이 하루에 4만명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이 가장 많았고 한국말도 꽤 들렸다. 드문드문 서양인들도 보였다. 중국인 아저씨들은 상의를 벗은채로 단체사진을 찍어댔다.
첫째날 북파가 성공이었다면 둘째날 서파는 대성공이었다.
코발트 빛의 하늘이 활짝 열려서 천지의 색도 따라 선명해졌다. 구름 한조각이 턱하니 우리 머리 위로 걸터앉으니 선명한 그림자가 천지 수면위로 드리워졌다. 이 정도로 가까이 있는 구름을 봤을 옛사람들의 마음이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들이 느낀 신성(神聖)이란 그 마음에 가까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북파와 달리 서파의 완만한 봉우리들 사이로 채도 높은 녹색의 언덕이 평원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부는지 호수에 여러갈래로 잔물결들이 일었다. “아 돌아가기 싫다~” 강지현 대원이 말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몰래 저기 언덕으로 내려가서 물가에 텐트를 치고 산천어를 잡아 톰소여처럼 구워먹는 상상을 했다. 내일 날씨는 틀림없이 오늘과는 다를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3년 전과는 서파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 때는 진흙창에서 한국인 등산객들이 쪼그려 앉아 캔멸치에 소주를 마셨었는데, 지금은 나무로 된 플로어를 마련해놓아서 누구나 할거 없이 주저앉아 간식을 먹었다. 러시아 소녀가 전망대 난간 맨구석에 걸터앉은채 음악을 들으며 천지의 봉우리들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아서 허락없이 사진을 남겼다. 그림이 궁금해 스케치북을 들여다봤는데 너무 못 그려서 웃고 말았다. 천지는 계속 그럴 것처럼 선명하고 밝았는데, 그 모습을 눈에만 담기에는 계속 성이 안차 찍은 사진을 계속 또 찍었다. 최대한 많이 가지고 가자 하는 마음으로. ▶ 관련기사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