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백두산 원정대 여정기
화창한 날씨 싱겁게 보게된 천지
벅차 오르는 감동은 감출 수 없어
잠 못 드는 밤 대장 방에 모여
편집자들 열정으로 의기 투합



7월 20일 서파 코스를 통해 백두산에 오른 한국편집기자협회 N·E·W·S원정대원들이 천지를 배경으로 토퍼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매일신문 박헌환 편집부장, 부산일보 김동주 차장, 경남신문 강지현 차장, 서울경제신문 김덕호 차장, 앞줄은 세계일보 권기현 기자.


7월 18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심양공항에 도착한 백두산 N·E·W·S원정대는 북한말투를 쓰는 가이드를 만났다. 서영리. 82년생. 자신을 한족이라 소개했다. 2시간을 이동해 점심식사 장소인 신빈현 영능진에 도착했다.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나고 자란 곳이라는데 과연 그래서 그런지 만주족 문화특구마을 같이 꾸며 놓은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옥마을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현판에 상호를 한자와 만주어로 병기해 놓은 만주족 전통가옥형식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고구마맛탕, 탕수육, 민물생선튀김, 계란볶음 등 15가지나 되는 요리! 테이블을 돌려가며 덜어먹으니 그제서야 중국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원정대원들뿐만 아니라 동행한 일행들과도 지역 맥주와 전통주를 한잔씩 나누며 눈을 맞추었다. 백두산 북파코스의 관문인 바이산시 송강하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북파코스로 출발했다. 똑같이 생긴 수십대의 하얀색 봉고차가 구름같이 많던 사람들을 착실히 실어날랐다. 트레킹을 기대했던 대원들과 나머지 일행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봉고차는 천지 북쪽사면의 굽이진 도로를 빠르고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 좁은 왕복 2차선 도로를 속력도 줄이지 않고 올라가는 운전 솜씨가 감탄스럽긴 했으나 겁이 났는데, 여기저기 구겨진 가드레일을 보고 때마침 누군가가 물었다. “저게 다 자동차로 박아서 생긴것 아닙니까?”
도로 옆 언덕 곳곳에 피어난 노란 만병초들이 백두산의 웅장함과는 대비되듯 소박했다. 천문봉에서 안개가 가득한 천지를 내려다보고 원정대원 모두는 감동에 젖었다. “천지를 보려면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한다더니 너무 싱거운거 아니냐?” 하며 농담을 했지만, 이 벅차오르는 느낌은 진짜였다. 김동주 대원이 준비해 온 편집기자협회 55주년 토퍼를 각자 하나씩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다.
천지에서 내려와 밥을 먹고 향한 곳은 장백폭포. 올라가는 초입에 열기구 VR체험존을 마련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훌륭한 자연풍경을 놔두고 가상체험을 한다는게 이상해 보이다가도, 4차산업이 여기 까지 들어왔나. 정말 중국은 이 분야에선 발빠른건가 싶은 생각도 들어 잠시 서서 구경해 보았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산책로 주변으로는 온통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온천지대였다. 장백폭포의 물줄기가 넉넉하고 웅장했다. 일행들과 집합하기 전 시간이 부족했지만 꼭 다시 먹어보고 싶었던 온천수 계란과 옥수수를 사먹었다. 온천수에 담궈놓은 계란은 노른자는 완숙인데 흰자는 반숙이어서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또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지하삼림으로 향했다. 기분이 좋아 숨을 한껏 들여마셔 보았다. 화산재가 쌓인 곳에 물줄기가 침범하고 지대는 침감하여 그곳에 미인송(美人松)과 자작나무가 빽빽이 자라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산책로 한쪽에선 다람쥐가 사람들에게 먹을걸 달라고 애교를 부려댔다.
이도백하시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서 보니 낡은 거리에 화려한 리조트가 빼곡이 들어섰거나 공사 중이었다. 지린성에서 관장하던 장백산(백두산)관광사업을 중앙에서 가지고 간 이후로 대규모 개발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오늘은 그냥 잠들수 없다는 생각으로 원정대장의 방에 모여 건배를 했다. 회사마다 조금씩은 달랐지만 편집자들의 고충이나 열정은 비슷해보였다.
원정 3일째 날씨가 무척이나 화창한 덕분에 서파의 천지는 더 신성하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1442개나 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곳곳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이 보였다. 아마도 생전에 꼭 천지를 보리라는 일념으로 오셨으리라. 몸이 불편해 오르기 힘드신 분들을 실어나르는 가마꾼들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치며 오르내리는 그들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고되보였다. 서파에는 북파보다 만병초가 더 많이 피어있었다. 계단을 벗어나서 언덕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관리원이 큰소리로 호통을 쳐댔다. 그런데 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댔다. 또 언제 오랴 하는 생각들이었을까. 전망대에 올라 청명한 하늘과 잔잔한 천지연못을 눈에 가득 담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 맞다. 또 언제 오랴. 온다고 해서 또 언제 보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금강대협곡의 경치는 이상한 비빔밥과 끔찍한 미역국을 먹지 않고 봐도 충분히 장관이었을거다. 화산재돌은 물에 뜬다고 하는데 그런 조직을 가진 암석들이 만들어낸 기괴함과 웅장함이란!
가이드가 서둘러 일정을 건너뛰고 마무리하려하자 일행 중 한분이 왕지(王池)를 가보자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다. 안 갔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로 이 여행의 또 다른 정점이었다. 특히 그 만개한 꿩의다리 꽃들이 가득한 왕지화원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중국기서에 나오는 선녀들이 뛰어놀 것 같은 곳이었다. 이 풍경을 볼수 있는 시간은 1년 중 1~2주정도 밖에 없다고 가이드가 말했다.(그런데 이곳을 안 오려고 했다니!)
화원 옆에 난 길을 따라 내려가서 왕지를 둘러보았다. 누르하치는 이 작고 소박한 연못을 보고 큰뜻을 세웠다는 말인가? 그곳은 그의 탄생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했다.
서파코스의 명소를 둘러본 후 첫날 들렸던 통화시의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이드가 호텔객실키를 건내주며 맛보라고 망고스틴과 꽈리를 한웅큼씩 줬다.
여행을 끝내는 기분 좋은 달콤함이었다.


세계일보 권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