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좌충우돌 편집일기
 강원도민일보 안영옥 차장


 74주년 광복절 지면 고민에 고민 거듭
 제호를 ‘집자’ 형태 독립신문 서체로
 단지동맹과 평화의 소녀상 나란히 배치
 독자들 스스로 마음의 여백 채우길 기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갈등과 ‘No Japan’으로 대변되는 국민의 분노…. 시절이 주는 부담 때문에라도 이번 74주년 광복절 지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슈임이 분명했다.


#독립신문 그리고 ‘보일민도원강’
지면 기획은 ‘의미 부여’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우선 제호를 독립신문 서체로 변경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독립신문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1896년 4월 7일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이자, 민주주의와 자주독립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광복절을 맞이하는 장치로서 의미가 충분했다.
10여 가지 서체 샘플을 만들고 편집국 내 의견을 모아봤지만 1% 부족한 느낌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차라리 독립신문에서 집자를 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 그대로의 글자라면 지면에 담아내는 의미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자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보정 끝에 제호가 완성됐고 14~16일자 제호를 독립신문 서체로 변경해 제작하기로 했다.
독립신문 제호를 최대한 차용해보자는 생각에 제호도 역방향으로 설정했다. 이리하여 독립신문의 활자를 입은 ‘보일민도원강’이 만들어졌다.]


#안중근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제호는 정해졌지만 광복절 당일 지면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이때 불현듯 ‘아린(芽鱗)’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아린’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의 겨울눈을 둘러싸고 꽃이나 잎이 될 연한 부분을 보호하는 단단한 비늘 조각’이다. 꽃눈과 잎눈이 얼지 않고 봄에 싹을 틔울 수 있는 건 이 얇은 비늘 조각 ‘아린’의 존재 덕이다. 혹한으로부터 최후의 가장 여린 것을 지키기 위해 ‘아린’을 자처했던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는 지면을 만들 수는 없을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지면이고 싶었다. 넘침을 경계하는 중국 고대의 술잔 ‘계영배’와 같은 지면 말이다. 화려함은 필요 없었다. ‘제2의 광복’을 주제로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이어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하자며 ‘과거의 우리’가 왼손 약지를 끊어 결성했던 단지동맹(斷指同盟),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현재의 우리’가 만든 평화의 소녀상. 이 둘을 지면 위에 나란히 올려둔다면 독자들에게 가만히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편집기자 마음에도 빛 한줄기
이번 광복절 지면이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는가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고민의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구차한 이유도 있거니와 독립, 광복이라는 거대한 산을 그려내기에 나의 화폭은 너무 좁았다.  
광복절은 지나갔고, 요 며칠 다시 일상의 지면이 반복됐다. 광복절 지면에 담긴 후배의 글이 마음을 맴돈다. ‘아무개 신분에서도 불꽃들은 타올랐습니다. 진정한 제2의 광복을 위해 불꽃처럼 타오르지는 못할지라도, 각자 품속의 빛(光)부터 다시 찾아(復) 밝혀볼 일입니다’ 2019년 8월 아무개 편집기자의 마음에도 옅은 빛 한줄기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