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전혜숙 기자의 교열 이야기

 

우즈벡 대통령 영부인 소개하는 김정숙 여사
영부인 사칭 사기범에게 거액 뜯긴 윤장현
최사랑 "허경영, 영부인 될 거라며 결혼 약속"

 

2008년 3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써오던 ‘영부인’이란 호칭 대신 ‘여사’ ‘부인’을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영부인’이란 호칭은 그 단어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권위의 냄새가 묻어난다고 부연했다. 그에 따라 청와대의 공식 문서와 서신에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언론도 ‘대통령 부인’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정부가 이런 발표를 한 데는 우리말 영부인에 역사의 수난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부인(令夫人)’에서 ‘영(令)’은 남을 높여 이르는 역할을 한다. 영부인이란 단어는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이며 다른 사람의 부인을 높이기 위해 누구에게나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식(令息)’은 남의 아들을 높여 이를 때, 딸에겐 ‘영애(令愛)’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 때 대통령을 ‘각하’, 그의 부인을 ‘영부인’으로 부르기 시작하더니 박정희 정부 들어 영부인, 영애, 영식이 대통령 가족만을 지칭하는 말로 독점적으로 사용됐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한자어로 영부인이 대통령(大統領)의 ‘영(領)’자와 결합해 나온 말(領夫人)로 아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표기는 사전 어디에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수십 년간 잘못 사용해온 이런 왜곡의 힘은 깊게 뿌리를 내려버려 여전히 여러 언론사에서, 가까운 편집국에서 오늘도 작업 중인 지면에 영부인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군사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정치권과 언론에서 무심코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영부인=대통령 부인’이란 그릇된 등식이 우리 말글 역사에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이미 영부인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본래의 뜻이 변질돼 시대에 동떨어진 단어가 된 지 오래인 데도 말이다. 청와대에서 쓰지 않겠다며 기사에도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표기를 그것이 소수의 매체일지라도 관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용하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이상이다. ‘대통령 부인 ○○○ 여사’ 식의 표현을 분명히 공표하고 나름의 언론에서 사용하려고 노력해온 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충분한 과도 기간이었다. 이제 무심코 사용해온 언론인이라면 바르게 쓰는 흐름에 발맞추자.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