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시대의 읽기 <12> ‘괴짜신부’ 홍창진



“신부님 맞으세요?” “신부 맞는데요”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에서 만난 홍창진 신부를 만났다. ‘우리시대 읽기’의 관점을 세상에 관한 읽기로 잠시 옮겨 준비한 질문들이 부질없어 졌다. 세상을 읽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순간부터 각자의 희망대로 펼쳐지고 읽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앞에 두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선배와 수다를 떨 듯 이야기를 나눴다.


―신부님의 활동에 대해 호불호가 분명한데 이에 관한 생각은.
저는 기본적으로 진부한 것을 싫어해요. 바둑을 둘 때 깊은 생각을 하지만 수가 보이는 대로 하잖아요. 어떤 질문을 받거나 상황이 생기면 내가 가진 수대로 생각대로 하는데 사람들은 ‘왜 저렇게 하지? 알파고 인가’ (웃음)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신부가 될 때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신부가 되고 보니 세상보다는 성스러운 것, 신비의 묵상을 강조하더라고요. 물론 그것을 비관하는 것은 아니에요. 종교의 근본이니까. 하지만 세상 일에 관심을 띄엄띄엄 가져서도 안되죠. 항상 관심을 두니 말과 행동이 치우치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신부님과 좀 다르게 봐요. 대중이 7:3 정도 저를 지지하고 다른 신부님 들이 저를 7:3으로 지지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으니까.


―토크쇼 등 방송활동 뿐만 아니라 신문 기고도 하고 있는데, 우리시대 미디어를 통한 읽기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음…. 일단 (미디어에서) 올바르게 전달하지 않고, 생각 없이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방송을 할 때 그래도 인문학적으로 휴머니즘을 담아 전달하자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강력한 메시지 하나만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 줄이고 낮추려 노력하죠. 하지만 매체를 만들어 내는 입장은 좀 달라서 그들과 나의 공통분모를 찾아 거기서 또 포기하고 포기해요. 그래야 전달하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건지는 게 있죠.


―2004년 ‘경기 천주교신문’ 창간 당시 편집주간을 맡기도 했는데.
천주교 신문이 두 가지인데 처음 대구에서 가톨릭신문을 창간했어요. 이후 서울에서도 평화신문이 만들어 졌죠. 그럼 교인들은 어떤 신문을 선택해서 볼까요. 천주교의 딜레마는 교구와 교구사이에 서로 간섭하지 않지만 통합하려하지도 않아요. 교구중심제이니까요. 그 상황에서 당시 주교님이 ‘우리도 신문을 하나 만들어 보자’ 하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무가지로 10만부 찍었죠. 경기도 교인이 80만명이 넘는 데 30만부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교인들이 가져가서 윗집 아랫집 나눠주기도 하니까. 경기도 구석구석 신문이 보급될 수 있죠. 또 광고가 되잖아요. 교회 신문이라고 광고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 돈이 생기면 또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고…. 문제는 저를 환영하지 않는 7:3이죠. 교회에서 무슨 수익사업을 하냐고 시기상조라 말씀하시니까. 6개월하고 접었어요.


―아쉽지 않나. 당시 4개월치의 광고까지 준비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던데.
복음과 휴머니즘을 지키기 위한 보수라면 받아 들일만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새로운 시도가 싫다는 것은 비겁한 것이죠. 만일 가톨릭신문과 평화신문이 통합한다면 300만부도 가능할거에요. 좋은 점이 교인들이 직접 신문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죠. 아마도 한국에서 광고 최고로 많은 신문이 될거에요. 광고를 통한 수익은 다시 사회에 환원합니다. 그러니 세속적인 것은 아니죠. 요즘 같은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이 또 있나요. 이 조직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하나의 매체로 연결될 필요가 있어요. 지금도 전 부르짖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종이의 가치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고 보는지.
그럼요. 종이에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죠. 한시대의 인구가 60년을 공존한다고 봐요. 사람의 인식이 자신을 중심으로 만나는 사람, 종교인은 90대 노인에서 5세 어린이까지 만나죠. 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다른 생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한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에요. 인도는 카스트제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IT 천재를 키우기까지 150년이 공존한다고 하니까요. 종이의 가치에 대해 두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리고 신문은 구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시대 계약서 같아요. 이미 발행된 신문을 가지고 기자가 다른 말을 못하잖아요. 인터넷, 모바일은 삭제하거나 첨부하기 쉬운데 신문은 그렇지 않으니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성격이라고 봅니다.


―신부님·수녀님, 천주교 성직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언론사의 편집기자의 수가 줄어드는 것처럼 경제적 논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 데.
원래는 종교가 보험업을 했거든요. ‘죽으면 지옥 간다’ 엄포 놓죠.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헌금도 내고…. 그런데 보험회사가 등장하면서 두려움의 반은 보험으로 해결해요(웃음). 어쩌면 더 순수해 질수 있는 것이죠. 종교가 지향하는 것이 순수인데 갈고 닦아, 쪼개지고 또 쪼개져 순수에 가까워 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편집기자는 좀 다르겠죠. 자본은 참 재미있는 게 휴머니즘이 없어요. 자본이 자본가의 것일까 의심이 생길 정도로…. 또, 무섭게도 컨설팅을 통해 조직을 바꾸고 사람을 자르고…. 자본의 속성이 그런 것 같아요.


―그 자본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
사실 자본을 극복하는 방법을 연희동에서 찾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가난하잖아요. 몇 년씩 공부하고 유학까지 하고 한국에 와도 뾰족한 수가 없어요. 특히 미술 분야는 자본의 끄나풀이 된 것 같아요. 아이돌 키우듯 작가를 키우고 7~8년 시들해지면 또 다른 작가를 키우고…. 그래서 ‘연희동작가자치협동조합’을 생각했죠. 이제 1년 됐는데 저변을 넓혀가고 있어요. 목표는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서 주목받는 작들의 산실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작가들이 모이고 지역이 활성화 되면 자본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것이죠. 이때 지역 불매운동 등을 통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세상을 바라보면 ‘신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과거 13~17세기 종교 안에 신이 있었다면 오늘날엔 문화 안에 신이 있어 자본과 대치중인것이죠.


―사회 곳곳에서 소통을 말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소통을 쌍방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데 결코 그렇지 않아요. 철저한 갑의 문제입니다. 갑이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면 소통은 불가능해요. ‘소통하자’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소통이 안되는 사람들이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소통하기 싫으면서 하는 말이에요. 반면에 을은 항상 소통하고 싶죠(웃음).


―우리시대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현재의 기자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데 있어 오늘날 이런 환경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황하고 있다고요. 자신의 가슴 속 마그마가 있어 온도를 서서히 올린다 생각하고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지켜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느 순간이 오면 특유의 해학과 표현, 열정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를 즐기세요. 삶을 즐긴다는 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