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시대의 읽기 <11>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


 

헨리 포드가 1909년 개발한 ‘모델T’는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이때 마차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마부들의 반감은 당연했고 소음과, 고장 등 자동차의 단점을 열거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부에게는 권한이 없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빠르고 안전하며 쾌적한 운송수단이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마차이건 자동차이건 상관이 없다. 우리가 매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매체에 관해 자유로웠으면 한다. 마부는 이미 운송에 필요한 지리와 소비자의 기호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가 운전을 배운다면 운송 시장에서 그만큼의 경쟁력을 갖춘 이가 누가 또 있을까. 마차를 타야한다고 주장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한다면 운전을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읽기는 과거에 비해 판이하게 달라졌다.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의 의견은 이렇게 요약된다.


―인터뷰 핵심으로 바로 접근하고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의 수장으로 ‘우리시대의 읽기’에 관해 말하자면.
읽기의 범위를 책으로 한정짓지 않는다면 우리 시대 읽기는 굉장히 늘었죠. 읽기가 타인의 사유, 의견, 지식 등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라면 말이죠. 책으로만 본다면 줄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읽기를 책 읽기로 국한돼 말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워요. 새로운 지식 전달의 매개체인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매체의 등장을 통해 오늘날의 읽기 문화는 더욱 풍부해졌으니까요.


―그러한 다양한 매체의 등장이 빠른 소비를 조장하고 정보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는데.
매체를 통해 쉽고 편해진 것이죠. 소비라는 것이 쉽게 쓰고 버린다는 의미라면 그 또한 쉽게 동의할 수 없어요. 사실 읽기에 관한 고민은 최근에 와서 시작된 것이죠. 과거 책은 커뮤니케이션의 독점적 위치를 갖고 있었어요. 이후 텔레비전, 라디오가 등장했지만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체 친화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죠. 하지만 이는 책과 경쟁하는 구도는 아니었어요.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보고 듣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인터넷은 다릅니다. 읽기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모바일과 결합으로 심각하게 주류화 됐고 전통적인 매체는 이를 주목하게 된 것이에요. 즉, 독점적 위치를 갖고 있던 책에 경쟁자가 생겼고 이 경쟁자가 기존 시장을 위협하게 된거죠.


―‘매체 친화적 내용’을 더 설명하자면.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하는 데, 책도 저자가 독자에게 자기의 생각과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입니다. 매개체인 책에 친화적인 형식이 존재하고, 저자들은 거기에 맞게 창작을 한 것이죠. 책에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책에 담겨진 내용 때문이지 책에 기록되는 것 자체는 아니거든요. 문자, 기호, 그림 등이 책에 담겨요. 그리고 이것들에는 깊이 있는 사고, 분석과 통찰, 긴 호흡 등의 특성이 연결됩니다. 그게 책의 가치로 이해된 거죠.


―그렇다면 종이 친화적 내용이 모바일에 담기나.
지금의 전자책 상당수는 종이책을 그대로 옮겨 놓은 형태입니다. 아직까지 과도기 현상이죠. 과거에 저자가 자신의 생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책뿐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양해졌죠. 전달하려는 내용에 적절한 방식을 저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어요. 인터넷, 모바일을 통해 음악, 움직임, 링크 등 더욱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게 분명하고 책에 비해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이 곧 그것을 활용하리라 봅니다. 다만, 고민할 부분은 책이 가지고 있는 깊이 있는 사고나 긴 호흡 등 장점들을 새로운 매체에서 어떻게 담아내느냐는 하는 점입니다.


―모바일 친화적 내용이 종이에 담기는 것도 활성화되지 않겠나.
쉽지는 않을 겁니다. 새로운 매체로 가는 방향은 순조롭지만 거꾸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음…. 우리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2년 전부터 웹툰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웹툰을 종이에 옮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아직 만화책 시장이라는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지요. 스크롤이라거나 움직임 등 웹툰의 플러스 알파까지는 만화책에서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문, 출판 등 종이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 미래는 부정적인가.
혹시 70~80년대 음반회사 중에 기억하는 곳이 있나요. 지구레코드, 오아시스, 동아뮤직….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까지 본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음악 시장도 함께 사라졌나요. 아니죠. 그래도 음반은 출시되고 시장은 오히려 더 커졌어요. 시장은 살았고 주체가 바뀐 것입니다. 과거 음반사는 기획사에서 제작한 음악을 CD, 테이프에 담아 유통하는 회사였죠. 오늘날 SM, YG 등 기획위주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음악 시장을 이끄는 원동력을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다시 말해 시장이 필요로 하는 역할이 바뀐 것이죠. 단순히 매개하는 것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요. 지금의 신문, 출판사도 음반사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죠.


―프랑크푸르트 등 해외 도서박람회를 보면 오늘날에도 엄청난 책들이 출간된다. 유독 한국에서만 새 매체에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는데.
호들갑은 아니고요(웃음). 변화를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종이가 사양이라 말하지만 그냥 사라져도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고민은 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냥 종이책 살리기를 통해 산업을, 그 회사들을 살리자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종이책의 장점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 할 것이냐의 고민은 충분히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종이의 장점을 말하자면.
10년 전, 그 이전부터 종이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종이는 끈질기게 오늘까지 살아남아 있죠.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글, 기호 등으로 인간의 사고를 풍부하고 명확하게 담아내기에 책은 그리 부족한 매체가 아니라는 점이죠. 보는데 다른 기기가 필요하지 않고 훑어보기도 쉽구요. 의외로 단순한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아마도 더 상당기간 종이는 존재할 것입니다. 음…. 책의 장점 중에 또 하나는 수 천년이 지나도 책만 남아있다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플로피디스켓으로 된 자료를 갖고 있는 데 사실 이게 지금 작동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생겨요. 자료를 보존하는 데 책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죠.


―도서관 역시 가치?역할?규모부분에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 도서관은 지금의 도서관 모습과 달라질 것이 틀림없어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도서관은 둘로 나눠 볼 수 있어요. 공간 중심과 자료 중심으로 말이죠. 공공도서관 같은 공간 중심 도서관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기능을 도입해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저희나 전문도서관 같은 자료 중심 도서관이 훨씬 큰 변화를 겪을텐데, 결국은 아카이브로 발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료중심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사업이 있나 또 향후 계획은.
지난 연말 김소월의 초간본 시집이 경매에서 1억3천500만원에 낙찰 됐어요. 도서관의 입장에서 이제까지 김소월 시집의 가치는 초간본이건 오늘 발행된 것이건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도서관 자료가 가진 물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1억3천500만원의 가치를 설명해주니까요. 그래서 도서관도 박물관처럼 전시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우리 국립중앙도서관의 문학실을 리모델링 중이고요. 또, 기록매체박물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남겨진 수많은 기록들이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전달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말이죠. 도서관 역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