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 기획한 민음사 서효인·박혜진 편집자


종이책이 가진 힘은 일방향성
많은 미디어가 쌍방향적이고
인터랙티브한 방식 원하지만
책은 절대적으로 일방향적
온몸으로 읽는 경험 통해야
저자라는 사람과 그 생각 이해

민음사 편집자 서효인(사진 오른쪽), 박혜진(왼쪽) 씨를 만나 출판편집의 세계를 들어보았다. 두 편집자는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기획하고 함께 책으로 엮어냈다. 콘텐츠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책으로 탄생하는 편집의 과정도 물어봤다. 편집기자들에게도 콘텐츠 큐레이팅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만큼 기회가 되면 뉴스를, 정보를 묶어 종이책이나 디지털북으로 엮어내 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 어떻게 해서 출판편집자의 길을 걷게 됐나
박혜진 편집자(이하 박): 대학 시절 학보사 활동을 했다. 한때 언론사 입사를 꿈꿨지만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가 돼 기사를 쓰는 것과 책을 편집해서 책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는 게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책을 기획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저자들이 써왔던 이야기를 보며 저자들을 선택하고, 기획하고, 책을 내고, 피드백을 받는 등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의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서효인 편집자(이하 서): 시인으로 막 등단했던 때 여기저기서 활동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가 인연이 있었던 출판사에서 편집자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제안을 받아 시작하게 됐다. 10년 가까이 일했다. 내 적성이 시를 쓰는 것보다 이 일을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 박혜진 씨는 문학평론가이면서 편집자, 서효인 씨는 시인이면서 편집자이던데 멀티잡을 뛰고 있나.
박 : 멀티하게 돈이 들어오니까 멀티잡을 뛰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하하.
서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적인 직장인들처럼 일을 한다. 시를 쓰는 거는 번외 수입이 되긴 해요. 원고료가 많든 적든 말이죠.
박 : 저도 비슷한 것 같다. 문학잡지 쪽에서 제안이 오면 글을 쓴다. 그리고 팟캐스트도 하고 있고.


—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서 : 장르와 분야별로 과정이 많이 다르다. 문학출판은 먼저 좋은 글을 쓰는 작가를 편집자가 발견하는 게 첫 번째 과정이고, 다음 작가와 미팅을 해서 작가가 관심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 스케줄 등등을 파악한다. 다음 출간계약을 맺고 원고를 받는다. 그 원고를 편집자가 보고 수정해야 할 것, 더 좋아질 부분 등을 작가와 논의해 초고를 만들어 낸다. 다음에 초고가 들어오면 조판을 맡겨서 책 형태로 뽑아내고 실질적인 교정 작업을 한다. 교정을 하는 중간(1차 교열, 2차 교열 때)에 표지 시안들을 디자이너한테 부탁한다. 디자이너가 표지 시안을 몇 개 주면 편집부 내부에서 얘기하고 작가와 상의를 해 최종 표지를 만들어 낸다. 그쯤에 3차 교열이 진행그되고 표지와 교열이 마무리될 때쯤에 추천사와 홍보 카피를 결정한다. 마케팅부와 회의를 해서 방향성을 잡고 책이 나오면 홍보마케팅 작업을 한다. 이후 2쇄를 찍기 전에 크든 작든 수정할 게 있으면 체크해 뒀다가 찍기 전에 수정작업을 한다.
박 : 드라마로 치면 PD인 것 같다. 작가도 있어야 하고, 원고 나오면 그걸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고, 마케팅과 홍보 등을 전반적으로 조율하는 일을 한다. 편집자의 일을 크게 보면 작가와 일하는 것과 독자들을 대하는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원고와 책 부분은 작가와 일을 많이 하고 책이 바깥으로 나오면 그걸 또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그 사이 마케팅팀과도 조율하고 문학 담당 기자들에게도 보도자료 전달하고.


— 박혜진 편집자는 ‘출판계의 미다스 손’이란 얘기가 있던데 ‘82년생 김지영’ 말고 또 화제가 된 책을 알려달라.
박 : 많이 알려진 건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다. 당시 사회적으로 ‘헬조선’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화제가 많이 됐다.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와 흐름들을 소설적인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 큰 반향을 불러왔다고 본다.


— 82년생 김지영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한 일간지 제목을 보니 ‘명절스트레스 시달린 남자가 투고함 속에서 찾아냈다’고 나오던데.
서 : 그거는 책이 나올 때 아주 첫 부분이라 누가 발굴했다라고 특정 짓긴 어려울 것 같다. 사실 누가 읽었어도 그냥 지나가진 않았을 원고다. 우연히 제가 그 업무를 하고 있어서 원고를 챙겨 놔두고 있었다. 앞장 몇 부분 읽어보고 논의해볼만 하다고 판단, 혜진 씨와 얘기해 내기로 결정했다. 그 뒤로 전반적인 절차는 혜진 씨가 맡았고.


— 최근 일본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얼마정도 팔렸나. 인센티브도 많았다는 후문이던데.
박·서 : 올 3월에 107만부 넘어선 것 같다. 일본판도 같이 포함을 하면 120만부 쯤? 일본 독자들도 많이 공감해주는 편이다. 인센티브는 합리적인 선에서 받은 것 같다. 
— 책제목은 박 편집자가 지었다고 들었다. 
박 : 작가님이 감각이 좋다. 처음 지은 제목이 ‘820401 김지영’이다. 주민등록번호 앞부분이다. 그걸 보니까 ‘잊혀진 이름들이고 불러지지 않는 이름들인데 작가님은 이걸 불러주고 싶어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기자들도 제목 뽑을 때 생각하겠지만 ‘820401 김지영’이라고 하면 뭔가 어렵고 입에 달라붙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걸 좀 더 익숙한 통사구조로 바꿔보고 싶었다. “너 몇 년생이니” “너 몇 년생이야”라는 말이 한국인에겐 흔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니까 그걸 줄여서 82년생 김지영이라고 달아봤더니 쉽고 편하게 와 닿았다.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으로나 주체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80년대생 여성들이 이 책을 통해서 좀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책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람도 많았을 것 같은데 피드백도 많이 받았나?
박 : 어떤 작품보다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각계 각처에서 소설에 대한 평가들을 다 했다. ‘한 작품을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읽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와중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는 건 그것을 모두 관통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코어’가 전달됐기 때문인 것이라 본다. 그리고 책을 낼 때는 내부적으로 ‘이게 몇 만부 나갈까요?’ 등의 얘기들을 많이 하긴 한다. 책의 예상 판매 계획에 따라 준비하는 마케팅도 다를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만들 때 얼마나 팔릴지 예상은 못했지만 원고를 읽고 나서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었다. 책읽기 전에 없었던 생각들이 책을 읽고 나서 분명하게 들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책이 나갔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과 공감, 반향이 굉장히 크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 편집자로서 보람이 클 때는.
박 : 책이 많이 나가지 않더라도 호평을 받으면 참 좋다. 상을 받을 때도 좋고 독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서 많이 팔릴 때도 보람이 크다. 또 여러 문학상들 받을 때 특히 지방에 초청돼 시상식에 참석할 때 그럴 때가 편집자로서 보람이 들 때다.


— 미디어로서 책이 가진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서 : 책을 처음부터 끝가지 다 읽으려면 다 내줘야 되는 것 같다. 자신을 온전히 다 내주고 내밀하게 집중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책읽기라 본다. TV와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콘텐츠가 인식이 되는데 책은 그렇지 않다. 확실히 자신을 다 내맡겨서 집중을 한 다음에야 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힘들어서 사람들이 점점 책읽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면 그 책을 읽기 전 사람과 읽은 후 사람은 확실히 달라진다. 사람을 온전히 다 빠지게 하는 콘텐츠는 책인 것 같다. 그게 책의 단점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 책이 앞으로 살 길은 무엇인지.
박 : 어렵고 답을 갖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긴 하다. 책이 인터넷이라든지 우리에게 익숙한 매체들과 비교를 했을 때 열등하면서도 우위를 가지고 있는 건 일방향성인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쌍방향적이고 인터랙티브한 방식이며 즉각적이지만 책은 절대적으로 일방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몸으로 읽어야 하고 아주 불리한 입장에서 저자의 말을 들어야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만 저자라는 사람과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내면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라 그걸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디자인이라든지 책이 지닌 물성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들이 이뤄지고 예쁘고 좋은 책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잃지 말아야 되는 것은 ‘어떤 것이 독자들의 가독성을 가장 높이는 방식의 편집인가’다. 그래서 파격도 중요하지만 무너뜨리고 있는 것들, 지켜야할 것들은 어떤 게 있는지 찾아서 모으는 매뉴얼 작업도 중요한 것 같다. 


— 디지털과 모바일의 위협이 거세다. 디지털에 대해 응전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게 있다면.
서 : 새로 생긴 디바이스, 플랫폼들과 미팅을 해보고 프로젝트들을 조금이라도 진행해보면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고전이고 좋은 콘텐츠였다. 플랫폼이 아무리 좋아도 담긴 내용이 별게 없으면 성장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콘텐츠의 본질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플랫폼 기업 관련자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가장 갈급해 하는 것들은 결국 사람들이 들어와서 찾는 콘텐츠인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대로 잘 만들어 내는 게 (아무리 플랫폼이 변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게 튼실하다면 플랫폼의 변화에 있어서도 응전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플랫폼 변화에 몸을 바꿔가면서 부딪히기에는 IT기업에 못 당할 것 같다. 잘하는 것들과 잘 콜라보레이션 하는 게 답일 것 같다.
박 : 협업이 좋은 전략 같다. 몸을 계속 바꿀 수는 없다. 플랫폼에 몸을 맞추는 것은 출판사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 출판 편집자로서 신문 편집이 이랬으면 하는 것들이 있나? 디자인 측면, 콘텐츠 측면에서.
서 : 신문은 혜진 씨가 많이 본다. 아저씨처럼. 날씨도 신문으로 보는 편집자다.
박 : 하하. 신문 편집을 보면서 제가 요즘 많이 보는 것들은 제 나이또래 2030들이 즐겨 보는 라이프 관련된 섹션들을 많이 보는 편이다. 트렌디한 정보를 다루는 면을 많이 보지만 가끔 일러스트레이션들이 굉장히 올드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기사의 내용을 잘 살린다기보다는 10년 전 버전의 편집디자인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 시각적인 부분들을 보완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서 : 편집기자들이 제목 뽑아 내잖아요. 가끔 사회면 뉴스 제목에 ‘피해女’ 등 이런 제목들이 종종 나온다. 젠더 감수성이 예전에 머물러 있는 제목들을 보면 화가나 본문까지 안 가고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 마지막으로 묻겠다. 신문의 미래는 어떨 것 같나
박 : 신문의 미래는 너무 건강할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본다. 뉴스의 가치가 뉴스의 매체에 따라 다르다. 매체간 경쟁이 많긴 하지만 계속해서 퀄리티 페이퍼를 찾는 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그 사회의 층도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기사에 대한 수요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신문의 미래 역시 밝다고 본다. 디지털엔 가짜뉴스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뉴스의 가치는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