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의 금연 투쟁기
아시아경제 박충훈 차장


새벽 5시, 헉!하는 괴성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2주째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그 날 밤은 어두운 집에 혼자 있다 괴한의 습격을 받는 꿈을 꿨다. 악몽의 원인은 분명 그 즈음 도전하고 있던 ‘그 일’ 때문이리라. 그것은 바로 ‘금연’.
금연을 시작한 첫날부터 살아오며 ‘내가 진짜 무서워 했던 것들’이 꿈에 차례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유리컵 깨진 조각이 카페트에 촘촘하게 박히는 꿈을 꿨다. 사실 나는 유리컵이 깨지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치워도 치워도 어디선가 유리조각이 나오는 것을 상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어느 날엔 어두운 집에 홀로 앉아 어머니가 오길 기다리는 꿈을 꿨다. 어린 시절 맞벌이인 부모님을 기다리며 어두운 집에 웅크리고 있던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또 크리스마스에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트라우마로 남았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다시 찾아온 것일까.
지난해 가을, 내게 ‘악몽’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리라곤 상상도 못한 채 용감하게도 금연이란 걸  해 보리라 결심했다. 살다 보면 여러 계기가 한번에 겹치며 예상치 못했던 행동을 이끌어낼 때가 있는데 금연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계기는 늦둥이 아들이 마련해 주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아빠~”하고 외치며 풀스피드로 달려와 안기는 다섯 살배기 아이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기 전 습관대로 한 대씩 피우던 담배 때문에 손에 가득 배어 있는 담뱃진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끈적한 담뱃진을 묻히긴 싫었다.
두 번 째는 아내 때문이었다. 그녀는 연애 시절부터 줄곧 담배를 끊으라고 충고했지만 나는 늘 한 귀로 흘려 듣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올해 말까지 반드시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인 시한까지 정해주며 금연을 종용했다. 아내는 좀처럼 허튼 말을 않는 진지한 성격임을 알기에 나는 굉장히… 음… 한 마디로… “쫄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편집국의 한 선배가 던져 주었다. 늘 그렇듯 오전 마감을 끝내고 편집국 식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 보는 게 어떠냐”고 말을 건넸다. 선배 본인도 보건 복지부가 시행하는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 병원이나 가면 처방을 받을 수 있다기에 점심을 먹고 회사 앞 가정의학과 병원에 들렀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라며 담담해지려고 조금은 애를 쓴 것으로 기억한다.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단한 상담 후에 약을 처방 받는다. 유명한 금연 보조 약물인 챔픽스다. 미국 화이자가 개발해 우리나라에선 2007년부터 판매 중인 약이다. 하루 반갑 이상 20여년간 흡연한 사람이 이 약을 먹고 담배를 끊을 확률은 44%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금연 성공률이 절반 가까이 되는 셈이다.
화이자는 챔픽스의 부작용으로 우울증, 메스꺼움 등의 증상과 함께 ‘생생하고 비정상적이며 기묘한 꿈’을 꿀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이 부작용을 내가 실제로 겪게 될 줄이야…. 새벽녘 잠을 깨기 직전에 꾸는 꿈들이 너무 생생해 한 2주 정도 꿈 내용을 기록해 놓기도 했다.
이 스펙타클한 악몽 퍼레이드는 금연약을 복용한 지 3주가 지나서야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잠자리도 점점 편안해졌다. 총 12주간에 걸친 금연프로그램도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담배를 끊은 지 이제 겨우 반년이 지났다. 금연 후 건강이 확연히 좋아졌다곤 할 수 없지만 매년 겨울이며 코 안이 헐던 증상이나, 술 먹은 다음날 어김없이 덮쳐오던 역류성 식도염이 많이 호전됐다.
최근 회사내 헤비스모커들이 총출동한 술자리를 간 적이 있지만, 그들의 줄기찬 권유에도 전혀 흡연 욕구가 나지 않아 신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퇴근 후 거실 복도 저 끝에서 달려 오는 아이를 아무 걱정 없이 꼭 안아주며 볼에 뽀뽀를 할 때 너무나 기분이 좋다. 만약 그 기쁨을 다시 놓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악몽’일지도 모른다.
P.S. 달구벌에 있는 남 모 선배도 지금 챔픽스제 악몽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잘 극복하고 광명(?) 찾기를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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