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 <6> 김석구 LG유플러스 게임사업 파트장


읽기가 억지로 하는 숙제라면 그것만큼 고역일 때가 있을까. 그러나 게임은 과거 학교 앞 문방구에 또래들과 옹기종기 모여 동전을 넣고 즐기던 전자 오락기부터 게임팩을 들고 다니며 친구집에서 즐기던 비디오게임기, 휴대용 게임기에 PC용 게임, 스마트폰까지 고역스럽기는커녕 엄마 몰래, 와이프 눈치를 보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의 입장이라면 게임은 읽기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장애물로 인식하는 것이 다반사. 다시 말해 읽기와 게임은 상극인 것. 하지만 게임도 읽기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다면 종잇장을 넘기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언뜻 ‘게임덕후’의 비겁한 변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의 영역에서 읽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진지함을 넘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LG유플러스 본사에서 만난 김석구 게임 사업 파트장은 짐작했 게임덕후의 이미지를 단칼에 날려버렸다. 그가 강조한 게임 콘텐츠는 개인과 다수, 다수와 개인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며 더 나아가 읽기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결합한 콘텐츠 산업의 ‘끝판왕’이었다.


―읽기와 게임, 천적의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인데
 서로가 천적이라…. 그건 서로 다른 영역의 콘텐츠를 억지로 비교해 만들어낸 대결구도 같은데요(웃음). 특정 대상을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려는 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전제도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게임에 유희적 성격이 강한 만큼 읽기 역시 유희로써 순수한 즐길 거리의 성격을 갖고 있으니까요. 읽기가 곧 공부로 연결되는 학생들의 경우 좀 특별하게 보는데 게임뿐만이 아니라 방송, 당구, 이성 친구에 각종 취미생활까지 공부, 즉 읽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궁무진하죠. 게임이 읽기를 못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주변에 읽기 말고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요. 그러니 유독 게임이 읽기를 방해하는 원흉이라 보는 시각엔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드네요.


―게임을 통해서도 읽기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임에도 읽기의 성격이 녹아있습니다. 게임에 스토리가 존재하죠. 스토리를 따라 게임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 읽기의 요소가 있습니다. 게임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플레이어, 개인의 성향이 상당부분 반영되는데 이에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말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텍스트를 통한 읽기에서 한 단계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읽기와 게임을 유희적 측면에서 고려할 때 게임을 소비하는, 다시 말해 게임을 읽는 사람이 직접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느낌을 받아 그 몰입도가 증가합니다. 능동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기 때문에 게임이 서술하는 메시지를 즐기게 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그래픽, 사운드 등이 함께해 감동을 배가시키기도 합니다. 텍스트를 통해 얻는 감동과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요. 혹 누군가는 ‘무슨 게임 따위에 감동씩이나 받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페라를 보고도 감동 받지 않는다고 해서 문화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라 비판할 수 없듯, 게임에 특정한 문화적 잣대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게임이 읽기의 진화된 형태라는 것이 흥미로운데
‘게임이 읽기의 진화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좀 더 고민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희곡, 문학 작품처럼 게임에도 엄연한 창작자가 있어요. 가령 소설이 발단-전개-절정-결말의 구조를 갖듯 게임도 마찬가지죠. 다만 게임은 그 이야기 속에 플레이어, 독자가 직접 참여한다는 특징을 가졌고요. 그래서 기존의 읽기에서 진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언급하자면 내가 게임 이야기에 주인공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기존에 읽기 문화에서 체득하기 힘든 부분이에요. 최근에는 ‘가상증강현실’을 통해 더욱 실감 있는 게임, 이야기가 가능해졌죠. 읽기도 이러한 기술적인 부분을 충분히 활용해야한다고 봐요.


―그렇다면 텍스트를 통한 읽기와 게임을 접목한 새로운 콘텐츠로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게임 삼국지를 떠올리면 쉬울 것 같아요. 원작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겠지만 드라마, 영화에서도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게임 역시 역사뿐만 아니라 소설, 연극 등 다양한 장르와 컬래버레이션 형태로 접근이 가능하다고 봐요. 실제 가수의 음원과 게임을 결합한 콘텐츠도 최근 선보이고 있으니까요. 일본에선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경우도 많고요. 우리의 경우는 교육적인 학습영역에 무게를 두려는 경향이 있는 데 이외에도 관광지 소개, 제품 설명서까지 읽기를 바탕에 둔 콘텐츠 개발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뉴스 콘텐츠와도 가능할까
 물론이죠. 과거 정치를 풍자한 비슷한 유형의 게임이 있었는데… 지금 질문한 뉴스를 바탕으로 즉흥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가정할게요.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후보들이 있을 것이고 언론은 이들을 검증하거나 분석하는 기사를 보도하겠죠. 이를 게임의 반영하는 것이에요. 미디어와 SNS 등을 기반으로 개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캐릭터로 선택하고 뉴스에 보도되는 각종 이슈에 대응하거나 반론을 재기하는 거죠. 혹은 가상 공약을 내걸 수도 있고 다른 후보 캐릭터를 가진 상대와 토론도 할 수 있겠고 이런 가상공간에서 결론을 제외한 다양한 변수를 게임에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 선거당일 최종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면 게임은 종료되고 엔딩을 알리는 것이죠. 그리고 새로운 뉴스를 가진 게임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선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뉴스 콘텐츠와 결합해 끊임없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봐요. 물론 선거법과 같은 관련법규와 규제를 고려하지 않은 단계에서 즉흥적으로 생각한 내용이지만 뉴스와 게임의 컬래버레이션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비디오, PC, 모바일 등으로 디바이스 변화에 따라 게임의 내용과 형태도 변화하지 않았나
 최근의 예로 말하자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게임 산업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를 자랑했어요. 하지만 모바일로 게임 디바이스가 변화하면서 시장 생태계 역시 급격하게 변화했죠. 새로운 디바이스에 소비자가 편의를 갖고 소구점이 생기면서 그에 최적화된 게임이 등장합니다. 이에 적응하지 못한 개발사는 시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어요. PC게임분야에서 세계최고를 자랑하던 개발사들이 모바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읽기 콘텐츠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종이를 기반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던 출판사들이 모바일, 태블릿 등 새로운 디바이스를 활용하고 적응하고 있지 않나요. 독자들이 편의를 느끼는 새로운 디바이스를 연구하고 독자가 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최적화된 읽기 콘텐츠를 고민하는 것처럼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에요.


―게임 콘텐츠는 접근성 측면에서 읽기 콘텐츠보다 수월하지 않나
 플랫폼의 차이인 것 같아요. 플랫폼은 버스 정거장과 같아서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죠. 플랫폼은 그들의 안내자가 되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노선과 맞는 번호의 버스를 소개해요.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면 A 손님의 평소 취향을 분석해 콘텐츠를 소개할 수 있고 손님의 만족도를 높일 수도 있을 거예요. 이처럼 좀 더 친절한 플랫폼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게 당연하겠죠. 게임 산업에서 플랫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처럼 끊임없이 접근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읽기문화만의 특화된 플랫폼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 데
 바로 그것입니다. 읽기문화의 확산을 고민한다면 독자들에게 친절한 플랫폼 구축이 선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다양한 카테고리를 마련해 접근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영어공부를 하고 싶은데 만화책을 안겨주거나 만화책을 읽고 싶은데 난초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을 쥐어준다면… 손님의 이후 반응은 생각할 것도 없겠죠. 물론 콘텐츠의 경쟁력을 바탕에 두고 있어야죠.


―게임 사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읽기문화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 보는지
 읽기의 진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진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 속에서 진통을 경험하는 것이죠. 만에 하나 종이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이 읽기의 종말이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락실이 없어졌다고 게임이 멸종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흔한 비유지만 그릇이 달라지면 그 그릇에 담을 음식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읽기 콘텐츠를 생산하는 영역에서 디바이스의 변화에 거부감을 갖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플랫폼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미래지향적일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