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 <6> 김나영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실장


 

“외국어 공부한 적 있죠? 점자는 외국어와 같아서 공부하고 배워야하는 또 다른 언어입니다”
점자로 텍스트를 읽는 사람들…. 그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색다른 읽기의 형식과 의미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한국인이 한글로 읽는 것. 미국인이 알파벳을 읽고, 중국인이 한자를 읽는 것은 활자의 차이일 뿐 읽기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점자만은 유독 특별한 그 어떤 것이 숨어있을 것이란 생각은 왜였을까? 이에 대해 김나영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교육지원실장은 ‘선입견’의 문제를 집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생각 밑바탕에 있어 그들의 불편을 보완해 주는 도구와 수단들까지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
점자 역시 일반 활자처럼 시각장애인의 읽기와 쓰기를 위한 도구이며 시각장애인뿐만이 아닌 비장애인과 소통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한글 이외의 언어일 뿐이다. 다만 6개의 점으로 구성돼 눈이 아닌 손가락으로 읽을 뿐.


―점자를 통한 읽기의 개념… 활자와는 다를 것 같다
 우리가 읽는다는 개념을 한글로 아니면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쓰인 것을 보고, 의미를 파악하고, 지식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면 점자도 마찬가지예요. 시각장애인은 TV를 안 볼 것 같지만, 그들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있고 또 봐요. 물론 시각적으로 본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드라마 봤는데 여배우 악역 연기가 일품이었지’ 이렇게 봤다고 표현하죠. 읽는 것도 마찬가지 ‘읽었다’ 라고 하지 ‘점자를 만져봤어’ 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점자를 통한 읽기는 비장애인이 읽기를 통해 얻는 효과와 다를 것이 없어요.


―점자로 된 도서를 찾아보기 힘든 데
 점자로 도서를 출판하는 것. 즉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도서 발간이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작업인데 그만큼의 인프라가 갖춰 있질 못하죠. 그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출판사의 협조를 받기 힘들다는 것에 있어요.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의 경우 교과서, 참고서 등이 필요한데 이를 점자로 바꾸려면 해당 출판사의 원본 파일이 있어야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될 수 있거든요. 하지만 파일이 출판사의 자산이고 유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쉽게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죠. 물론 출판사의 원본 파일이 없어도 시중에 발행된 책을 직접 점자로 바꿀 수 있어요. 저작권이나 법적으로 문제도 없고요.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책을 필요한 때에 제공하기 힘든 점이 있죠.


―비장애인도 점자를 통한 읽기가 필요할까
 훈련을 통해 비장애인도 얼마든지 점자를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읽기의 목적을 위해 점자를 배우기보단 대체 도서 발간을 위한 봉사의 개념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점자로 대체 도서를 발간하는 사람을 ‘점역사’라고 하는 데 전국에 시각장애인이 28만명, 점역사는 300명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교과서 한 권을 점자로 바꾸는 데 2~3개월 걸려요.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점역에 참여한다면 큰 도움이 되겠죠.


―모든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나
 그건 아니에요.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을 수 있는 분들은 5% 정도에 불과해요. 생각보다 많지 않죠. 일정한 간격을 갖고 6개의 점으로 이뤄진 점자는 손가락 한마디로 읽어야 하는 글자에요. 그만큼 예민한 촉각이 필요하고 오랜 훈련을 해야죠. 그나마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점자를 배우기 쉬운 편이예요. 아무래도 촉각이 예민하니까. 하지만 중간에 사고나 병으로 시각을 잃은 중도시각장애인의 경우 손가락에 촉각이 무뎌 그만큼 배우기 어렵고 점자를 읽는 것 자체가 장애인으로 도드라지고 튀는 행동이라 생각해 꺼리는 분들이 있어요. 게다가 IT 발달로 컴퓨터, 스마트폰 등에서 텍스트를 소리로 지원해주니까 힘들게 점자를 배우려 하지 않죠.


―그렇다면 ‘점맹율’이 95%에 달한다는 건데 점자의 가치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글쎄요. 점자의 가치를 의심한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조한 글자이죠. 만일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린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한글은 우리의 말을 우리의 글자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어요. 점자 역시 마찬가지죠. 점자는 시각장애인 스스로 만들어 낸 문자라는 것에 큰 의미와 가치가 있어요. 한글처럼…. 점자는 18세기부터 사용됐고 발명한 사람 이름을 따 ‘브레일’이라고 하죠. 브레일 역시 시각장애인이었고…. 그렇다고 18세기에 시각장애인이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에요. 훨씬 이전부터, 문자 자체가 없는 원시시대부터 시각장애인은 있었고 그때는 언어가 중심인 정보 체계로 대부분을 기억에 의존해야 했죠. 시각장애가 있다고 사회에서 현격히 뒤처져 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고 사정은 달라졌어요. 문자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죠. 사회는 점점 고도화되고 교육과 학습을 통해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데 그러질 못하니 원천적인 기회조차 없어진 거죠.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록하고 표현하는 문자 그 자체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에요.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진 거예요. 그래서 점자를 ‘훈맹정음’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한글의 가치를 의심할 수 없는 만큼 점자의 가치를 의심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훈맹정음’이라 불릴 정도로 소중한 점자를 시각장애인이 기피하는 이유가 있나?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 같은 데
 사실 시각장애인 사이에서도 점자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아요. ‘점자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 최근 IT 발전으로 문자가 아닌 소리로 내용을 전달해주는 보조기구들이 많아졌어요. 컴퓨터에서 모바일까지 화면에 모든 내용을 읽어주는 기능이 있으니까. 굳이 힘들게 점자를 배우지 않으려 하죠. 하지만 소리 의존도가 높은 만큼 그에 따른 문제점은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어 문서 작업을 할 때 시각장애인 한 분이 계속 ‘변오사’라고 쓰는 거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변호사’를 뜻하는 거였는 데, 소리에 의존도가 높아 문자를 작성할 때 오탈자가 많아지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거죠.


―점자로 시·소설 등 콘텐츠를 창작하기도 하나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콘텐츠를 창작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꼭 그럴 필요성을 찾기도 힘들고…. 이유는 비장애인과 같은 문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점역의 역할에 있어 창작의 개념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점역사를 두고 외국어를 한글로 바꾸는 번역가와 같은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번역이라고 볼 수 있죠. 다른 점은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을 때 이해하기 쉬운 문장의 형식이나 레이아웃이 있어요. 가령 들여쓰기나 문장의 맺음, 장문을 단문으로 전환하는 것 등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좀 더 읽기 쉽도록 변형을 하죠.


―점자의 활용을 높이는 방안이 있나
‘전자점자’의 등장을 통해 다시 점자를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어요. 비시각장애인에게 전자점자라는 것이 생소하겠죠. 설명하자면 컴퓨터에서 점자로 된 문서 ‘점자 파일’을 상대방에게 보내면 키보드처럼 생긴 휴대용 점자정보단발기가 이를 인식하고 6개의 점을 표현해줘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굉장히 편리한 도구라 다시 점자를 배워야겠다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에요. 뿐만 아니라 ‘점자 디스플레이’라는 것도 개발이 추진되고 있어요. 스마트폰을 소리만으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가령 지도검색 같은 경우 경로, 지형지물 등을 한 번에 파악하는 데 소리만으론 어렵죠. 이에 한 업체에서 스마트폰과 연동할 수 있는 ‘점자 디스플레이’를 개발 중이에요. 점자 디스플레이를 연결하면 해당 정보에 점이 넓은 디스플레이에 ‘툭툭’ 올라와 지도 전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청각에 촉각이 더해져 정보의 질량이 풍부해지는 거죠. 점자는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읽기의 매체로 편의성을 강화해 끝임없이 진화되고 있어요.


―점자도 언론시장과 마찬가지로 종이점자와 전자점자의 경쟁이라 볼 수 있을까
 경쟁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전자점자의 편의성의 우수하기는 하지만 종이라는 것 자체, 점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또 현재는 단말기 크기의 한계가 있어 한 번에 한 행씩만 표현돼요. 만일에 태블릿처럼 넓은 점자용 디스플레이가 개발되고 상용화된다면 점자의 보급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겠지요. 종이점자와 전자점자의 비중 역시 달라지겠고요.


―시각장애인의 읽기에 있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읽기는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할 때 가능하죠. 기록?전달되는 내용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고요.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구성원으로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키우는 것. 다시 말해 기록된 내용을 시각장애인에게도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교육을 위해선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점역의 과정을 거처야 해요.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출판사들이 원본 파일을 제공해준다면 그 점역에 필요한 과정을 단축할 수 있어요. 특히 교육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야 하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절실한 문제입니다. 물론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의 문자에 선입견을 갖거나 특이한 행동으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읽기 행위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요. 비장애인이 글을 읽고 공부하고 필요한 지식을 얻듯이 시각장애인들도 글을 읽는 것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의 읽기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세요. 그들에게 점자는 세상과 연결하는 또 하나의 빛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