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 <5> KBS 안익수 음향효과감독

‘따그닥 따그닥’ 어디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진짜로 말이 뛰고 있는 것도 아니여 이건 나무 그릇으로 내는 소리여. 봐 내 손이 뛰고 있잖아”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만들고 변화시켜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소리의 마법사 안익수 KBS 음향효과감독은 소리는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읽고 만질 수 있는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소리를 읽는다.’ 안 감독의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근무하고 있는 KBS 녹음실에 들어선 순간 읽히는 소리의 세계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낸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아닌 소리를 읽는다는 표현이 낯선데
 우리가 읽기라 하면 흔히 텍스트를 해독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다루는 입장에서 볼 때 읽기와 듣는 것은 일맥상통합니다. 소리는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죠. 활자를 통해 이야기를 읽고 내용을 상상하는 것처럼 소리를 통해서도 같은 목적과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 활자를 통한 읽기보다 소리를 통한 읽기가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고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죠.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을 생각하면 더 쉬울 것 같다
 그렇죠. 오디오북 이전에 존재했으니…. 혹시 라디오 드라마 들어본 적 있으세요? 라디오 드라마가 오디오북의 시초라고 할 수 있죠. 소리를 통한 읽기에서 라디오 드라마는 종합예술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활자로 된 대본을 소리로 전달함으로써 언어와 감정을 배가시키고 상상력도 극대화 시킬 수 있죠.


―라디오 드라마에서 효과음의 역할은 무엇인가
 효과음은 라디오 드라마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사용합니다. 자동차 시동‧급제동, 오토바이, 새 울음, 낙엽 소리까지 다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효과음이 단순한 소리가 아닌 인물의 감정이 실린다는 점인데…. 예를 들자면 발걸음 소리도 인물의 성격,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요. 남자, 여자, 어린아이, 노인 등, 그뿐만이 아니라 실현을 당한 남자의 발걸음,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의 발걸음에 잠자는 아기의 곁을 조심조심 지나는 발걸음까지 모두 다르죠. 이러한 효과음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나의 콘텐츠를 형성해요. 이 콘텐츠를 대중이 소비하죠. 곧 읽게 되는 것이에요. 여기서 효과맨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효과맨의 분야 중 ‘폴리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도구를 통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동차 문 닫는 소리를 전기밥솥을 내는 것처럼 말이죠. 할리우드에서 처음 도구를 통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소리 연기자’가 등장한 것이죠. 저는 이 폴리 효과를 할 때 가장 큰 재미와 보람을 느껴요.


―시대에 따라 소리의 역할, 패러다임 등이 달라졌을 텐데
 물론이죠. 사람이 소리를 사용한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분명한 변별점 중 하나입니다. 화산이 터질 때 땅이 울리는 엄청난 굉음은 인간이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도 마찬가지죠. 새소리, 시냇물 소리에 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요. 소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나팔, 북 등을 울려 사전에 약속한 메시지를 주고받잖아요. 이후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소리는 예술과 오락의 분야로 진화합니다. 악기의 탄생이 그렇고, 노래하는 구전가요, 설화·역사 등을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등장하죠. 시대가 흐를수록 소리를 통한 메시지 전달과 역할은 그 비중이 커집니다. 전화기의 발명, 주파수의 발견은 소리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최초의 방송 역시 소리를 전하는 라디오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소리는 소통이 바탕 되기 때문에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앞으로 소리는 영상의 보조 수단이 아닌 영상을 주관하고 이끌어가는 주체가 될 것입니다.


―소리가 영상과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는 것. 쉽게 와 닿지 않는데
 공포영화에 소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때요? 주인공이 음습한 공간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옷장을 향해 손을 뻗어요. 그런데 아무런 소리가 없다면…. 무섭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음향효과 때문에 극장에 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홈시어터를 설치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것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영상이 자극적일수록 소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인기 아이돌 가수 포스터를 보고 있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특별한 반응을 찾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듣는다면 세 살짜리 아이가 춤을 춥니다. 포스터를 보고 춤을 추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겠죠.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어요(웃음). 이처럼 소리, 음향효과는 영상과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통이 필요한 모든 행위의 목적과 효과를 극대화하는 주체가 될 것입니다.


―소리읽기, 우리 실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나
 음…. 삐삐를 기억하시죠. 삐삐를 칠 때 연결음이 있었는데 각자 개성에 맞는 음악을 설정했어요. 연결음을 통해 자신을 들어내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상대방은 그 연결음을 듣고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판단하게 되죠. 연결음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상대는 그것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옛날이야기를 예로 들었지만, 과거부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소리읽기가 시작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핸드폰 컬러링도 그렇고, 벨 소리를 통해서도, 개인화된 디바이스의 소리설정을 통해 소리를 읽고 있는 것입니다.


―활자를 통한 읽기에서 오독이 있듯이 소리에서도 ‘오청’이 있지 않을까
 물론입니다. 방금 언급한 핸드폰 컬러링에도 그렇죠. IT 업계에 근무하는 이십 대 젊은 여성의 핸드폰 연결음이 민요라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연결음을 읽고 그 사람의 전체적인 느낌을 판단하는 데 오해가 생길 수 있겠죠. 또 소리에 감정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에게 혼난 아들이 방을 나가면서 문을 닫는데 바람 때문에 문이 꽝하고 닫혔다면, 아버지가 버릇없다며 화를 낼 수도 있겠죠. 아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처럼 소리에는 메시지가 있고 감정이 존재해서 오청이 있을 수 있어요.


―오청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오청을 줄이는 것…. 사실 오청은 오독처럼 메시지를 읽는, 수신하는 사람의 주관이 상당부분 개입된 것이라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은 데요. 아니면 서로에게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 정도(웃음).


―소리를 컴퓨터로 만들어 내는 시대다. 혹자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영역이 축소될 것이라고도 하는 데
 그 부분은 인정할 수 없어요. 미래학자 한센의 말을 인용하자면 21세기는 이야기가 있는 감성사회를 추구합니다. 소리는 감성을 일깨우는 매체며 소리의 중요성은 미래로 갈수록 커지죠. 소리에 대한 영향력은 커질 것이고 인간에게 유용하게 개발될 것입니다. 같은 문을 여닫는 소리에도 각기 다른 감정이 실린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람이 만들어 내야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감정을 소리를 통해 담아낼 수 있습니다. 컴퓨터로는 한계가 있죠. 하지만 컴퓨터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있듯이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없는 소리…. 그러니까. 공룡울음 소리 같은 것. 공룡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광선검 부딪칠 때, 우주선 지나갈 때…. 이런 소리를 만들어 낼 때는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신디사이저나 샘플링을 통해 주파수를 변화시켜 만들어내요. 각각 필요한 부분이 있을 뿐입니다.


―소리는 다양한 상상력을 동반한다. 라디오 드라마, 오디오북처럼 소리와 접점이 될 수 있는 콘텐츠 영역에 무엇이 있을까
 연극, 뮤지컬과 같은 무대공연과 미술, 사진 등 전시에서 활용할 수 있어요. 귀로 보는 그림이라고 해서 전시회에 오디오 서비스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말씀드렸던 폴리사운드, 도구를 이용한 소리로 하나의 공연을 만들 수도 있고요. 넌버벌 퍼포먼스도 가능하죠. 이 밖에도 다양한 콘텐츠와 융합해 더 풍부한 콘텐츠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문과도 가능할 것 같은 데… 가령 신문 읽어주는 기계 같은 것
 스마트 환경에서 ‘음성합성기능’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르는 영어 단어에 펜을 갖다 대면 단어 뜻에 발음까지 알려주잖아요. 그것이 음성합성기술인데, 텍스트, 그림, 음성을 합성하는 것입니다. 신문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 펜을 이용할 수도 있고, 카메라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시각장애인, 노인들에게 유용할 것 같아요. 신문산업에서도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소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될까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널리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홍익인간’의 소리를 고민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실생활에서 유용한 소리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들이 소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 안경에서 전파를 쏘아 거리, 사물 등을 인지 할 수 있죠. 박쥐나 돌고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시각장애인에게만 소리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아요. 청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는 고막을 통해 전달될 뿐만 아니라 골전도, 피부 등 온몸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가전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죠. 냉장고, 에어컨, 선풍기 등 지금까지 소음을 줄이고 없애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소음을 좋은 소리, 도움이 되는 소리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소리, 휴식에 도움을 주는 소리 등을 가전에 접목할 수도 있고요. 소리의 진화는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