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종원 충청투데이 편집국장













신문의 꽃은 편집이다. 그렇다면 편집국의 꽃은 편집국장이다. 한 세기가 가도록 ‘편집’은 수석부서로서 명멸하지 않고 만개했다. 그러나 사반세기가 지날 무렵 그 꽃은 점점 소멸의 징조를 보이며 변방의 꽃으로 지기 시작했다. 수익과 비수익, 본류와 지류, 내(內)와 외(外), 문(文)과 지(知)의 대척점은 결국 외(外)로 기울었다. 편집은 수척해졌고 동시에 척박해졌다. 어제오늘의 변고는 아니지만 편집의 위기는 분명히 왔다. 신문의 위기보다도 절박하고 박절하다. 때문에 작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거기에서 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때 30년 가까이 편집 통(通)으로 있다가 수장에 오른 이종원 충청투데이 편집국장은 어쩌면 편집기자들에겐 희망의 단초일지도 모른다.(물론 지금도 여러 곳에서 편집출신 편집국장이 활약 중이다) 인터뷰 성사는 쉽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길 좋아하지 않는 성정 때문에 삼고초려로 간신히 만났다. 겨울날, 늦은 저녁 선술집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온 내공과 신문에 대한 열정이 결실을 맺었다.(감축 드리며) 간단히 소회를 말해 달라.
“특별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다. 다만 신문기자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원래 편집국이란 자체가 활어(活魚)처럼 펄떡펄떡 뛰는 곳 아닌가.(웃음) 알다시피 파시(波市)다. 물론 편집국장이 로망은 아니었다. 열심히 달려왔을 뿐인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이다.”


―편집국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회고한다면.
“기자부터 차장, 부장, 부국장을 거치면서 개인기보다는 하모니를 중시했다. 일할 때는 전쟁터의 전사처럼, 일이 끝난 후에는 쉼터의 여행자처럼 강온의 배합을 적절히 활용했다. 치열했던 편집의 삶은 잉크냄새 폴폴 풍기던 신문 낱장이 위로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로 39.4㎝ 세로 54.5㎝. 가로7단 세로15단’의 신문이 활판윤전기에 걸어지면 자연스럽게 위로가 됐다.”


―학연, 지연을 이겨내고 편집국 수장이 된 것 아닌가.
“경기도 이천이 고향이다. 물론 학교도 대전에서 나오지 않았다. 학연, 지연을 극복했다는 말은 사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자의 길이 어디 그런 끈으로만 이뤄지는 것인가.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노력과 열정이다. 꿈을 이루려면 꿈만 꿔서는 안 된다. 꿈은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거라고 본다.”


―고루한 질문이겠지만 편집을 정의한다면.
“편집기자는 ‘쟁이’여야 한다는 지론이 있다. 취재는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를 보지만 편집은 숲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취재가 현미경을 들 때 편집은 망원경을 들어야하고, 취재가 사실을 말할 때 편집은 진실을 말해야한다. 제목을 뽑고 레이아웃을 하는 과정은 실로 가슴앓이가 필요하다. 괴롭지 않은 지면이란 없다. 제목을 뽑는 것도 괴로워야 하고, 그 고통 속에서 참다운 헤드라인이 나온다. 고민하지 않는 지면에 감동이 있겠는가. 감동이 없다면 당연히 독자들은 동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들을 온전히 해내려면 공부하는 수밖엔 없다. 기자 초년시절에 익힌 것을 계속 우려먹는 건 편집이 아니라 그저 테크닉일 뿐이다. 세상은 하루하루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편집기자는 왜 존재하는가. 더구나 지금은 종이신문의 질감만 따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다(多)미디어의 세상이다.”


―편집에 테크닉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인가. 테크닉도 일종의 노하우일 수 있는데.
“컴퓨터조판(CTS)이 시작됐을 때 편집기자들은 저항했다. 오퍼레이터로 전락되는 거 아니냐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사실은 위기를 느낀 거다. 당시만 해도 대지(臺紙)에 문자와 사진을 붙이는 대지바리가 대세였지 않은가. 그 다음이 오퍼레이터 편집이었다. 불과 20년만에 모든 게 변했다. 지금은 편집기자 스스로 지면제작기를 열어서 조판하는 걸 선호하고 있다. 오퍼레이터 편집은 레이아웃 구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을 쓰는 일이기에 골치 아프지 않은가. 이래라저래라 하느니 본인이 직접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동화되어가는 것이 개혁이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신문의 위기, 편집의 위기라는 자조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편집기자의 생존방법, 나아갈 방향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90년대 말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부터 신문편집은 기나긴 험로를 걷게 됐다. 동료들이 떠나고 월급이 줄었다. 부지불식간에 컬러의 삶이 흑백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지면확장경쟁이 시작되자 너도나도 돈 되는 곳으로 보따리를 싸서 옮겼다.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 부침(浮沈)은 현실이었다. ‘오른쪽’이 반드시 ‘옳은 쪽’은 아니지 않은가. 신문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게 아니다. 세상의 움직임이 굴신의 시대로 옮겨갔을 뿐이다. 그런데 편집의 위기는 자초한 측면이 있다. 자만했고 오만했다. 애면글면 변화하지 않으려고 발버둥만 쳤다. 속된 말로 취재와 편집 사이에서 자부심만 가지고 살았지 않은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편집기자가 편집동네를 떠나 새로운 직업을 가졌을 때 성공할 확률이 있는가. 한마디로 방안퉁소(실력·자신감이 없어 퉁소를 방안에서만 연주한다)였다.”


―너무 심각하다. 그렇다면 국장은 편집이 무조건 좋았는가.
“강원일보를 거쳐 충청투데이에 왔을 때 이미 난 정점에 서 있었다. 이후 편집부장, 지방행정부장, 문화레저부장, 편집부국장을 거치며 편집 그 이상의 신문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일할 맛 나는 편집국을 만들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 편집만을 고집하는 건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이다. 소통을 제1원칙으로 여긴다.”


―편집의 가치는 무엇인가.
“편집의 가치와 편집기자의 ‘같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편집은 가치 있는 일이고, 이 일을 하려면 ‘같이’ 가야 한다. 마음을 열었더니 마음을 역이용하는 일이 흔하고, 열정을 주었더니 열정을 악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최근 10년 동안 전국 신문사 편집식구들이 반(半)으로 줄었다. 그만큼 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다. 더구나 다(多)미디어시대에서의 편집은 스스로 살 궁리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안녕을 묻지 말고 서로가 안녕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얼마나 오래 살(버틸) 것인가를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늙어갈(새롭게 태어날) 것인지를 통섭하자는 얘기다.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삶의 길, 어떤 게 옳은지 정답은 없다. 오히려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렇다.(웃음) 축구는 취미가 아니라 에너지다. 운동장은 마치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지면(紙面)과 같다. 어디로 어떻게 찰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거야말로 지면구성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일주일에 한번쯤은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여백을 채워가는 게 즐겁다. 일종의 정신무장이다.”


―편집 통(通) 편집국장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취재만 오래했던 국장은 편집의 속살까지 알지 못한다. 저변(底邊) 정도만 이해할 것이다. 반대로 편집만 했던 국장은 취재에 대한 감각이 약하다. 양쪽을 오갔던 나로썬 큰 장점을 가졌다고 본다.”


―어떤 신문을 만들고 싶은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사람냄새 나는 신문이다. 아무리 좋은 기사라고 하더라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사문(死文)이다. 신문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도 어쩌면 스마트폰 등 온라인(디지털 미디어?온라인매체?SNS?스마트폰 앱?블로그)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거리는 크게 둘로 나뉜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 쪽이든 모두다 뉴스가 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정보들(쓰레기더미) 중에서 취사선택된 내용만 뉴스가 된다. 빼앗긴 독자들을 다시 흡인하려면 읽히는 신문을 만들어야한다. 인물 중심의 소프트한 콘텐츠를 지향한다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 늦지 않았다.”


―옐로저널리즘은 어떤가.
“예컨대 소수의 포털이 옐로저널리즘이라는 얼굴을 감추고 페이퍼를 공격하고 있다. 여자를 춥게 만들어라(벗겨라)라는 디지털 아마추어리즘에 언제까지 당할 것인가. 이제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알아서 팔린다는 도그마는 유효하지 않다. 여기서도 편집의 역할이 크다. 봇물처럼 양산되는 기사들을 걸러내고 바로 세울 수 있는 게 바로 편집기자다.”


―젊은층 10명 중 7명은 페이퍼 신문을 보지 않는다. 몇 년 사이 반 토막이 났다. 종이신문이 10년 이내에 없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붉은 피 낭자한 기존시장(레드 오션)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돌리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오만방자한 생각(블루오션)부터 버려야한다. 지금 같은 플랫폼으로는 생존하기 힘들다. 미디어환경 변화에 맞춰 체질 개선을 하라는 거다. 이는 기자들의 생존문제와도 직결된다. 좋은 기사를 쓰고 좋은 편집을 하면 독자가 알아서 찾아봐줄 것이라는 생산자 중심의 마인드가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


―편집 선배로서 한마디 해 달라.
“선배 없는 후배 없고, 후배 없는 선배 없다. 서로를 위로하라. 만약 서로를 돕지 않는다면 편집 선?후배는 불후의 계보가 아니라 슬픈 유산이 될 것이다. 편집기자를 편집하라는 주문도 그래서 종종 한다.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뛰자.”


―주량은 어떻게 되나.
“난 이런 질문이 좋다.(웃음) 사실 인터뷰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사적인 얘기를 듣고 싶은 것 아닌가. 편집기자협회라고 해서 편집만 묻는다면 식상하다. (그건 그렇고) 주량은 소주 2병쯤 된다. 물론 상대방이나 누구냐, 어떤 자리냐에 따라서 1병이 될 수도 있고 3병이 될 수도 있다. 술자리는 소통의 자리다. 공적인 업무를 떠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게 즐겁지 아니한가. 오히려 술자리에서 함량 높은 아이디어를 구할 때도 많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언제까지 편집이 최고이고, 편집기자가 최고라는 생각만 할 건가. 때로는 버리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이다. 편집(編輯)을 지키는 것은 편집(偏執)을 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린 편집을 너무 편리하게만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편집이 불편해졌다.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독소조항은 분명히 있어야한다. 머릿속에 박제해놓은 편집 땟거리를 365일 똑같이 우려먹는 것은 감히 말하건대 자폭이다. 우린 판짜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면서도 그냥 영혼 없는 판만 짜는 건 출산이 아니라 생산이다. ‘파격’과 ‘오버’도 따지고 보면 ‘틀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편집 통(通) 편집국장을 만난 지 1시간 만에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