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 <4> 광고천재 이제석

 

광고천재 이제석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상수역 2번 출구로 나와 두 블록 내려오면 커피숍 있습니다. 오전 10시에 보죠.” 약속을 잡는 그 목소리는 단호하고 분명했다. 가공된 메시지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 능력을 훔치고 싶은 마음은 누구와도 통할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대표의 전문분야 옥외광고는 ‘자본주의의 꽃’ 광고산업에서 이미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 하지만 옥외광고에 아이디어를 더해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광고를 예술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광고작품을 보관하며 “나중에 경매로 팔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자신감은 클라이언트의 주문에 맞춰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신문 역시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 중 가장 오래됐고 향후 시장에서 존재 여부를 확답을 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옥외광고와 신문편집, 비슷한 냄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시대 읽기에 관한 새로운 시각도….

벙거지 모자·공사장 작업복을 입고 약속 장소에 나타난 이제석 대표. “뭐 좀 마셔야죠. 전 현장에 있다 오는 길인데 잘 찾아 오셨네.” 양복은 고사하고 캐주얼도 아닌 건빵바지차림으로 나타난 이제석 대표는 준비한 질문을 끄집어내기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늘 인터뷰 주제가 읽기라고 했나요. 음, 전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사실 난독증도 좀 있고…. 제 모든 신념을 걸고 말하는데 지금 문자가 9, 그림이 1이라면 향후 문자가 1, 그림이 9인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건 정말 단언할 수 있어요”
 ‘우리 시대 읽기’에 관한 인터뷰에 자신은 읽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림의 시대가 올 것이라니….

―문자가 1, 그림이 9인 시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읽기보다 보는 것이 더 넓은 의미를 가졌죠. 그러니까 가공적이지 않은 것들인데, 문화·교양 따위를 배우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 커뮤니케이션은 태초부터 존재했어요. ‘큰 소리는 위험’ 자동차 경적이 울리면 사람은 움찔하며 몸이 먼저 반응을 하죠. 화산이 ‘꽝’ 터지는 광경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전 방송에서 스위스 산업현장을 소개하면서 안전을 강조하던데 현장엔 글이 전혀 없어요. 그림이죠. 낙석주의·미끄럼주의·머리조심 등 그림으로 내용을 전달합니다. 한번 보면 딱 알죠. 그것이 전달력입니다. 흡수력이 빨라요.


―한국 사회는 읽기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실상 읽기를 통해 갈증을 해결하지 않으려하는데, 그림의 시대는 가능한가.
정말로 읽기에 목말라 있을까요. 지쳐 있는 건 아니고요? 광고도 카피가 먼저냐, 비주얼이 먼저냐 이야기가 많은 데 그건 뭐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많은 문화콘텐츠에서 흡수력이 빠른 건 원시적인 소스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시성에 가까운 것일수록 잘 읽히고 보이는 것이죠.


―복잡한 사회에서 그림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게 효과적인가.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을 ‘쓴다’라고 표현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을 쓰는 사람은 적어요. 정보가 포화된 현대 사회에서 별 생각 없이 뇌를 꺼둔 상태라도 내용이 전달되야해요. 그것이 그림이죠. 우리나라 국민 수준은 참 다양합니다. 남자·여자, 가방끈이 길고·짧고, 객관적·주관적…. 이들을 아우르려면 더 단순하고 쉬운 것이어야 해요. 사회가 고도화되고 문명화될수록 사람들은 똑똑하고, 유식해진다 생각하지만 약속체계가 복잡해지고 신호체계가 어려워질 뿐입니다. 때문에 쉽고 단순한 것들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글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나.
글과 그림에 관해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글자에 포커스를 맞추면 시야가 좁아져요. 글의 기원도 결국 그림이잖아요. 상형문자처럼 말이죠. 그림이 글자인 것이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중이 바뀔 것 같아요.


―뉴스 전달에서도 사진·그래픽과 같은 요소들이 강조된다. 메시지 전달 효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에 본 영화가 뭐죠? ‘국제시장이요.’ 당장 떠오르는 장면은? ‘흥남부두·독일 탄광·베트남 정도…’ 그것이 잔상인데 몇 장면 남지 않죠. 글자가 아니라 이미지가 남는 것입니다.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도 확 떠오르는 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조현아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선거는 어떤가요. 후보에 관한 뉴스나 공약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얼굴이 잘생겼다, 못생겼다 이런 식이지 사람들의 50% 정도는 글을 읽지 않고 판단하는데 뉴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시각화된 정보만으로도 내용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겠죠. 그래서 신문이 더 쉬워져야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고 공감대를 갖을 수 있어요. 지금 신문은 좀 어렵죠. 복잡하고, 고상하고 어려운 형식에 구속을 받으면 소수만의 잔치일 뿐입니다.


―시각화에 자유롭고 전달 효과도 높은 인터넷을 통해 읽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저는 빨리 오는 것은 믿지 않아요. 가령 인터넷 뉴스 빠르죠. 순식간에 우르르 쏟아지니. 쇠를 두드려 칼을 만드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데 속보에 쫓겨 그 인고의 과정을 얻을 수 없어요. 지금은 과도기라 진흙탕 싸움인데 쉬워보이진 않네요. 신문 역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수많은 인력을 적소에 배치하고 에너지를 쏟아내잖아요.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압축해 내는 시스템을 갖춘거죠. 안타까운 건 그 시스템을 갖고도 아이디어 없이 콘텐츠를 잡화점처럼 나열수준으로 놓기만 한다는 것이에요.


―언론 뿐만 아니라 읽기문화 자체가 모바일·아이패드 등 뉴미디어로 이동하고 있는데.
경미한 수준으로 보고 있어요. 새로운 디바이스에 열광하는 건 단기간에 결과를 원하는 경영 마인드와 관련 있는데, 한국이 IT로 재미를 본 이유도 있고…. 그러나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란 착각은 버려야합니다. 기술 이전에 아이디어가 우선이죠. 최근 융합이 이렇게 부각되는 것도 기술을 쫓다보니 속은 텅 비여있고 결국엔 ‘시다바리 밖에 못하겠구나.’ 하는 걸 깨달은 겁니다. 철학·미학·상상력이 없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껍데기죠.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어요. 읽기 역시 수단이 많아질수록 목적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새로운 기술과의 협업은 필요합니다. 광고도 아이디어 좋은 놈, 그림 잘 그리는 놈, 만든 광고 잘 뿌리는 놈 따로따로 있거든요. 읽기 콘텐츠의 본질적인 고민과 기술의 조화는 필요하죠.


―광고산업에서 옥외광고는 올드하고 효과가 약한 분야로 인식된다. 신문도 뉴스 전달 매체 중 가장 오래돼 처지가 비슷한데.
가장 오래됐다는 건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그만큼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가정해보면, 종이로 만든 삐라를 뿌리지 아이패드를 던져주진 않겠죠. 자연스러운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저도 신문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이벤트로 큰 현수막에 팩트를 요약해 사옥에 걸어두거나, 조그만 전단지를 활용하는 것.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결국엔 콘텐츠입니다. 내용만 좋으면 갱지에 써도 사람들은 봐요. 신문이나, 옥외광고나 오래됐으니 가치 없고 필요 없다는 판단을 누가 하고 있나요. 소비자들이요? 아니요 조직 스스로 푸념하듯 중얼거리는 것 아닌가요? 오래된 것은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본질에 관해 좀 더 고민하고 콘텐츠의 나열이 아닌 소비자가 먹기 좋게 구성·편집하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대표의 작품을 보면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많은 공모전에 참가했고 지금은 공모전 심사 맡을 때가 있는데 단순하고 ‘센 게’ 이기는 겁니다. 사람의 관점은 제각각이고 바쁘고 무관심하고 정보는 쏟아지죠. 쉽고 강한 것들만 살아남아요. 제가 항상 말하지만 불리하면 판을 바꿔야해요. ‘시선이 좌에서 우,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라’ 이게 당연한가요? 왜 당연하게 생각하죠? 읽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제 이야기가 외계어로 들리겠지만 불규칙적으로 생각해야 판이 바뀌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죠. 재미가 없는데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 저는 송신자와 수신자들을 재미와 내용의 과정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통역자입니다. 비주얼·시각적 통역자이죠. 저는 메시지의 주체가 아니에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먹기 좋게 전달할까 고민하죠. 소리를 통역해 덩어리를 만드는 것, 일정 주파수를 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 한 차원의 이야기를 다른 차원으로 전달하는 통역자이죠. 광고보다는 제약이 좀 있겠지만 편집기자도 그렇지 않나요. 뉴스 통역자….

―판을 바꿔 재미있게 만들기, 참 어려운 주문이다.
재미는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먹을 준비도 안된 사람에게 뭔가를 준다는 것은 어려워요. 흥미를 유발하고 디테일을 늘려 복잡한 것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소설로 시작해 논문으로, 동화로 시작해 다큐로, 삼류소설로 시작해 문학전집으로 끝나야해요. 그것이 흡입력이죠. 처음부터 논문으로, 다큐로, 문학전집으로 시작하면 누가 보겠어요.


―이 대표는 한국의 취업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국제 광고제를 휩쓸고 능력을 인정받았다. 드라마 ‘미생’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지금은 어떤가 ‘완생’에 접근했나.
그때도 지금도 미생이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취직도 하고 기사 딸린 리무진도 타봤어요. 사회에 관해 평가할 생각은 없고, 다만 개인적으로 정규직·종신직은 ‘불로장생초’ 같아요. 세상에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찾아다니죠. 모든 사람들은 프리랜서인데…. 내 관점은 그렇습니다. 종신·정규직의 환상이 서른 넘어 깨졌죠. 저 역시 불로장생초를 찾았지만 없더군요. 아무리 안정적인 회사도 조건이 다르면 헤어지는 겁니다. 자신의 경쟁력을 갖춘다면 책임과 의무가 아닌 필요에 의해 관계가 맺어지죠.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데 없는 것을 찾기보다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겁니다.


―신문을 보며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헤드라인에 전혀 관련 없는 큰 사진이 한 공간에 나열돼 하나같이 보여 헛갈릴 때가 있어요. 신문을 5초만 보는 사람과 30초를 본 사람, 60초를 본 사람도 같은 내용을 같은 밀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60초를 보지 않아서 내용을 놓치게 된다면 불량품이죠. 그래서 편집기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소스는 널려있어요. 하다못해 돈 주고 사올 수도 있고, 그런 소스들이 유기적이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신문편집의 부활… 너무 거창해 보일지 모르겠다. 만약 프로젝트 제안이 온다면 신문제작에 직접 참여할 생각은 없나.
모 일간지에서 함께 1면을 편집해보자고 제의를 받은 적도 있는데 실제 이뤄지진 못했어요. 저는 지구력이 약해 게릴라식으로 일을 하는 편인데 그쪽에선 장기 프로젝트로 구상하더라고요. 기획이나 특집처럼 단발성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이야기를 좀 덧붙이자면, 방송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예를 들어 JTBC의 ‘썰전’은 상당히 진화한 뉴스 토크쇼로 수준 높은 뉴스 통역의 역할을 해낸다는 생각이에요. 신문도 이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향후에도 종이의 힘은 유지될 것이고 종이에 담긴 텍스트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다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콘텐츠와 가공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떻게 묶을까,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고 능력 있는 독자의 뉴스 통역자가 되야하는 것이죠. 작은 화면에 갖히려고 하지말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해요. 신문은 결코 퇴물이 아닙니다.


―서두에 우리 시대의 읽기가 아니라 ‘보기’라고 했다. 읽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할 방법이 있을까.
읽기의 행위를 느끼기 위한 과정이라 할 때 보는 것을 통한 느낌은 읽기보다 크죠. 가령 책을 본다는 것은 표지를 만지고 폰트나 자간·행간 등 모양을 살피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요. 읽는다는 것은 누가 뭐라고 말했는지 속뜻을 파악하고, 해석하고, 따지는 것이에요. 제가 말하는 보기는 감성을 캐치하고 느끼자는 것이죠. 글머리로 배운 사람들은 느끼는 것이 부족해요. 의도와 비의도, 텍스트와 이미지, 주관과 객관… 모두를 포함한 공감각이 필요하며 이는 보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가령 네이버 메인페이지를 보면 너무 복잡해 속이 울렁거려요. 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 뒤 방청객의 줄무늬 티셔츠에 신경이 쓰여 무슨 내용으로 갑론을박 하는지 집중할 수 없어요. 머리로 세상으로 보고 페이퍼 차원에서 상황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내가 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겠죠. 글자 넘어 감각·직관에 대해서는 눈이 닫혀있기 때문에요. 감성 장애인이에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위해선 읽는 틀을 깨야해요. 대화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읽기에 골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