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우리 시대의 읽기 <1> 시인 함성호


 9월 12일 홍대 카페에서 만난 함성호 시인은 나무, 꽃, 자동차, 건물,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텍스트 이며 읽을거리라며 시대가 변해도 읽기의 본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 시대의 읽기’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을까? 이 시간에도 각종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콘텐츠’가 생산되고 대중들로부터 소비된다. 물론 과거와는 다른 디바이스를 통하며 미묘하게 어떤 측면에선 획기적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기 위해 함성호 시인과 웹툰대통령 하일권 작가를 만나 “우리시대의 읽기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졌다.
동그란 뿔테 안경에 부스스한 머리,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그 반대운동의 수단으로 읽기 문화 확산을 선택한 함성호 시인이 읽기 문화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홍대 모 커피숍에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그의 눈은 인터뷰 내내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듯 보였고 읽을 수 있는 것은 문자 뿐만이 아닌 세상 모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핵심 내용에 바로 접근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읽기’ 의미와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시대 읽기에 관한 고민 이전에 우리는 왜 읽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조건들 그러니까 기후, 산, 나무, 꽃… 자연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이죠. 더불어 이웃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이 시대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이 시대가 읽는 것 자체에 함몰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죠. 왜 읽는지 생각하지 않고 진학·취직 등을 위해 읽는 것은 허무해요. 이러한 허무함에서 벗어나려면 텍스트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활자로 된 것들뿐만이 아니라 어법과 행간, 하물며 사투리까지도 텍스트에 포함해야합니다. 가령 ‘잠자리가 난다’라고 합시다. 그 속에 ‘여름이 끝나가고 있구나’하는 텍스트가 숨어있어요. 잠자리 유충이 장구벌레를 잡아먹고 성충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에 비해 목적을 갖고 읽기는 그 범주가 너무 작아요. 담론의 대상으로 삼기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공사장 인부들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인다고 합니다. 목적을 갖고 읽는 것은 읽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 빨리 해치워야할 것이 됩니다.


―혹자는 읽는다는 것을 새로운 디바이스의 출현과 연관해 고민한다. 읽기와 디바이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은?
활자 자체도 디바이스입니다. 활자가 없는 시대, 읽는다는 행위는 외우는 것이었죠. 암송을 통해 전달하고 읽는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의 암기력은 현대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난설헌집’의 경우 허균이 암송하던 누이 허난설원의 작품을 활자로 옮겨 발간했으니까요. 이렇게 암송은 뇌에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암송의 단계를 넘어 활자라는 디바이스를 통해 전달의 속도는 달라집니다. 저는 이것을 미끄러지는 속성이라 말합니다. 미끄러짐이 빨라지는 거죠. 뇌를 긁는 강도가 달라졌지만 활자 역시 미끄러짐의 속성은 같아요. 서양과 동양의 활자는 근본부터가 다릅니다.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하기위해, 즉 잘 미끄러지기 위함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직지심경은 달라요.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었죠. 활자를 대상화하고 고정된 실체로 만들어 놓기 위함이었어요.
한국의 읽기 문화는 독특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이중 언어를 사용했어요. 말은 우리말인데, 문자는 중국어를 쓰고, 그 글을 또 우리말로 읽어요. 중국어를 모르는 데도 말이죠.
한글의 등장은 새로운 디바이스의 출현과 같습니다. 알파벳과 같은 음성어로 체계 자체가 미끄러지기 좋은 글자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의미맹은 70~80%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강정 평화책마을 조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제주도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고 있는데, 투쟁의 도구로 읽기를 택하게 됐는지?
제주도 해군기지는 전쟁적인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평화적인 측면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시설입니다. 또한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미군 항공모함이 정박하게 되면 미군들이 역시 육지로 들어오죠. 미군부대가 주둔하는 장소치고 온전한 곳이 있었나요. 폐기물로 인한 토양·수질과 같은 물리적 오염을 포함해 인근 마을에 술집 양공주 등 퇴폐적인 인적 오염을 동반합니다. 이러한 인적 오염에서 우리 마을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관건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읽는 행위를 통해 인적 오염에 대항하자는 것입니다.


―최근 쇼셜리딩 개념이 부각하고 있다. 이런 소셜리딩도 효과적인 읽기의 트렌드인데, 현대인의 읽는 습관에 대한 생각은?
텍스트를 통해 물리적인 것을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목적이 없죠. 다만 읽는다는 행위로 읽는 사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느낌을 갖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영국의 음악 그룹 더 후(The Who)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는 어떡하면 그렇게 기타를 잘 연주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난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답했죠. 이는 텍스트를 읽는 행위가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최고의 읽기는 제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를 몸을 움직여 알아내는 것이죠. 음식을 준비하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이러 의례가 최고의 읽기인 것이죠. 또 그런 읽기가 필요하구요.


―읽는 것 자체에 피로감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읽기의 중요성을 말한다면?
읽기가 싫다는 것은 읽어도 느낌이 없다는 것이죠. 읽지 마세요. 문자만이 텍스트는 아닙니다. 나무, 꽃, 책상, 종이컵… 주변을 통해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