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그리고 외쳤다 “쟁이들아, 혁신을 짜보자”


편집 대선배 함정훈, 요즘 편집에 할 말 있소

신문의 미래, 편집기자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이 땅의 ‘편집쟁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신문을 대체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나온다면 편집기자는 도태하고 말 것인가.
‘77살 수습기자’로 돌아온 ‘편집의 전설’은 후배 편집자들을 향해 “지금까지의 낡은 편집은 찢어버려라”고 일갈했다.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기를 고민하기 전에 지금의 위치에서 파격과 혁신을 고민하라는 것이다. 9월 12일 종로에서 함정훈 아시아경제 편집위원(77)을 만났다. 아시아경제 이상국 편집에디터, 그리고 이상용(전자신문), 이종희(경향신문), 박해리(한국경제) 등 후배 기자 3명이 함께 했다.


# 나는 77살 먹은 수습기자
1960년 부산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편집부장과 편집국장, 국민일보 편집국장, 전무 등을 거치며 50여년을 언론인으로 살아온 함정훈 편집위원, 그는 자신을 ‘77살 수습기자’로 소개했다. 후배들이 짜 온 지면이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퇴짜 시킨다고 해서 전성기 시절에 ‘함빠꾸’란 별명으로 통했던 그는 새 직장에서 편집자로 첫 발을 내디뎠던 때의 초심을 떠올리고 있다. “내 별명이 함빠꾸인데 이빠꾸(이상국 에디터)와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초년병 때 밤새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내던 시절이 떠올랐다”며 “이럴 때 ‘난 아직도 편집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느 날, 어려운 경제기사를 보고, 어떻게 쉽게 편집해서 독자와 소통할 지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게 그날 저녁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거야. 다음날 아침에 깨서도 계속 고민했죠. 그렇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울었다는 소쩍새처럼 40년, 50년이 지나도 고뇌하는 것이 편집쟁이의 숙명인가 봅니다”


# 편집기자는 죽지 않는다
10년 후를 두려워하는 기자들이 많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쇠퇴해가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미래 뉴스 시장의 주도권을 쥐는 매체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편집기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 다매체 시대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짧은 글이 인기 있는 ‘단문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목 시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편집기자들이 뉴스를 가공하고 연출하는 것은 온라인에서도 불가결이기 때문에 편집기자의 역량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사회자가 10년 뒤 편집기자의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내 대답은 우스개 소리로 ‘함빠꾸도 지금 현장에 있지 않소’ 입니다.(웃음)
우리 자리가 어디일까 하고 묻기 전에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어야 합니다.“
함빠꾸는 갑자기 일어나서 신문을 부욱 찢었다.
“오늘 우리의 토론은 관행(慣行)의 장송곡, 상투(常套)의 단발령, 유니폼의 탈의(脫衣)였으면 합니다. 우리가 종이시대가 끝나간다고 말하는 것은 수동적 관조적 제3자적 한탄입니다. 당사자인 편집자는 오히려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종이시대관행을 스스로 끝내자’ 타살 당하기전에 자살하자는 것은 시대의 트렌드에 밀려나기 전에 스스로 신문(편집)의 패러다임을 바꿔 트렌드의 앞에 서자는 것, 한국 신문 백년의 관행을 벗어나고 상투를 벗어던지자는 것입니다. 침몰하는 종이신문의 골든 타임에 편집, 당신은 어디 있었나. 신문의 종말 ㅡ타살인가 자살인가 자연사인가. 이대로 간다면 언제가 우리 편집기자들이 청문회에 설지도 모릅니다.”2014년 9월 12일, 오늘 우리가 종로 3가 toz에 모인 것은 어쩌면 청문회 리허설일수도 있습니다. 종이의 절벽에 서서 절박한 SOS를 우리가 우리에게 한번 날려 봅시다.


# 종이가 살려면 편집이 앞장서야
 그렇다면 편집기자들은 제목 달기와, 레이아웃 짜기, 뉴스 가치 측정 등 본연의 임무 외 무엇에 주력하자는 말일까. 함 위원은 종이 신문이라는 매체 안에서의 혁신을 멈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신문이라는 동종매체끼리의 경쟁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은 종이신문을 전제로 했을 때 변신의 몸부림이 필요해요. 편집기자의 정신과 본연의 기능이 살아있으면 어떤 플랫폼이 나오든 적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단순히 편집기자로서의 역량을 쌓는 것이 아니라 신문안에서 혁신하고 파격으로 변신하는 연습해야 새로운 뉴스 전달방식이 나왔을 때 적응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제목을 하얗게 비우거나 까맣게 칠하는 등 파격적인 편집을 선보였던 함 위원 답게 여전히 종이신문 안에서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주변을 살펴 봅시다.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는 혁신의 모험은 이미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관행의 탈피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새로운 편집마당을 열고 있습니다. 아시아경제의 리노베이션, 중앙일보의 어드벤처에서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닦으며 새로운 편집마당을 연 아시아경제신문의 혁신이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뉴스의 장르별 칸막이를 허문 중앙일보를 눈 여겨 보고 있습니다.
신문의 10년 뒤를 걱정할 게 아니라 지금의 신문을 특성화하고 좀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미디어가 나와도 편집의 기능은 그대로 갈 것입니다. 뉴스가 살아있고 시장이 살아있는 한 뉴스에 대한 욕구는 영원히 본능적인 것 아니겠어요? 미래는 어차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니 너무 앞서나간 걱정보다는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변신할까 훈련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훈련이 다음 미디어에 대한 적응 과정입니다. ‘역량을 쌓자, 열심히 해보자’ 따위 교과서적인 말이 아니라 완전히 파격적인 변신하고 혁신하는 연습을 해보자는 겁니다.”
함 위원은 “편집자는 자신의 지면에서 국장이 되어야 한다”며 편집기자가 나서서 신문의 혁신을 이끌어야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면에서부터 혁신을 해봅시다. 신문을 다른 매체라고 상상하고 해볼 수도 있고 기사의 관점을 바꿔보는 방법도 있지요. 편집자는 가벼운 운신을 할 수 있는 축복받은 자리에 있어요. 뉴스를 어떻게 가치판단하고 표현할 것인지는 편집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지요.
신문이 비슷비슷한 틀 안에서 맴돈 지가 수십 년째다. 요즘 신문들을 보면 제목이나 레이아웃이나 거의 비슷비슷하고 다른 신문 따라 하기에 바쁜 것 같은데 혁신과 파격이 어떻게 가능할까. 함 위원은 “익숙한 관행을 바꾸는 것은 힘들지만 새로운 모습에 인이 박히게 하는 것이 편집자의 몫”이라며 “변화에 대해 설득하는 것이 편집자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에서 창간호를 만들었을 때 ‘C일보 비슷하게 만들면 당장 100만부 팔린다’, ‘세로쓰기 대신 가로쓰기 하면 헌금 많이 내는 5,60대들이 불편하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이렇게 관행을 바꾸는 것에는 저항이 따르는 법이지요. 하지만 결국 제일 민첩하고 간단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편집이에요. ‘나는 어떻게 될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일을 걱정하기 전에 오늘을 바꾸면, 오늘이 쌓여서 내일은 우리의 것이 될 겁니다.”


# 한국판 신문혁신보고서 만들자
 함 위원은 편집기자협회에 신문의 혁신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제안했다. 뉴욕타임즈가 만들었던 ‘혁신보고서’를 한국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혁신보고서는 실험적인 결과물을 만들자는 얘기입니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에요. 이론적인 토대나 장황한 분석은 다 아는 얘기니까 필요 없어요. 월급 주는 사장 밑에서 일할 때는 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들, 아이디어를 모아서 혁신적인 지면을 시험 삼아 만들어봅시다. 관행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지요. 그런 것 없이 ‘다시 독자를 찾아간다’는 마음으로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그런 시도를 해보고, 단기적으로 역량을 축적하면, 공급자가 시장을 만들 수도 있어요. ‘세이의 법칙’이 신문에도 맞는다고 봅니다. 새롭게 듣는다는 뜻에서 ‘신문’이라면 뉴스가 자기 스스로 자체발광해서 시장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어요?”


# 어제의 편집을 종간하자
 마지막으로 함 위원은 50주년을 맞은 편집기자협회 후배들에게 “어제의 편집을 종간하자”며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는 편집자 개개인이 혁신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시 한번 당부했다.
“세월호 참사 후 ‘잃어버린 7시간’ 동안 뭐하고 있었냐는 비난이 일었지요. 신문이 위기라면 ‘편집기자의 7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합시다. 오늘 이 자리가 종이의 장례식, 장송곡이 아닌 새로운 신문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가로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제의 신문은 잊어버립시다, 똑같은 제목만 달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실험적인 것을 해보는 겁니다.”
함 위원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편집기자로서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아시아경제에 있는 것은 편집기자로서의 마지막을 신문의 패러다임 혁신 추구하는데 숟가락 하나라도 얹어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한국신문 황혼기에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간 신문이 있었다, 그 말석에 함정훈이라는 이름이 끼어있었다’는 말을 들어야 편집기자로 마지막을 마칠 때 편히 눈을 감을 감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