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경인일보 강보한 기자의 “이 식당 안 가봤죠”

동남아 식당의 간판은 꼬불꼬불 비슷하게 생겼다. 가게를 지나며 냄새를 맡아본다. 캄보디아 식당 근처에는 어향액젓에 생강채를 듬뿍 넣고 끓여 잊을 수 없는 묘한 향이 난다. 미얀마 식당은 인도, 네팔 음식점처럼 커리 냄새가 난다. 베트남식당은 뼈육수에 고수풀, 빵굽는 내음이 나고, 인도네시아는 요거트처럼 달달한 코코넛 스프 향이 난다. 만약 지글지글 볶는 기름에 레몬처럼 시큼한 향이 섞여있다면 십중팔구는 태국요릿집이다.
광교 아브뉴프랑의 '바나나테이블'은 태국식당이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마싸만 커리<사진>'다. 전주에서 한식을 처음 접한 외국인들은 귀국해서 한인식당에 가면 밥상을 엎어버린다는 농담이 있다. 손맛의 노하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나나테이블의 마싸만커리는 태국 본토의 맛집보다도 맛있다.
마싸만커리는 아랍, 동남아, 인도문화가 만나 탄생한 태국요리다. 정향, 백두구, 레몬그라스, 타마린드 등 10여종의 향신료를 걸쭉하게 절구에 빻아 만든 커리를 베이스로 한다. 견과류를 썰어넣어 입안에서 자작한 식감은 청국장 같다. 큼직하게 썰어넣은 고기는 감자탕 같다. 스튜에 감도는 붉은색은 칠리가 아니라 새우소스로 낸 빛이다. 보통 대나무찰밥을 추가해 먹는다. 대나무통속에 찰기가 없게 지은 밥알이다. 월계수, 코코넛 가루에 한시간동안 뭉근하게 끓인 국물을 곁들여 찰밥을 얹어먹는 맛은 '세계제일 요리' 타이틀을 다툴 자격이 있다.
이곳의 푸팟퐁커리도 본토에 뒤지지 않는다. 튀긴 게를 계란 커리에 얹은 음식이다. 중국집에서 주방장 실력이 계란볶음밥에서 확인되듯이 커리에 계란을 마치 살아있는 듯 탱탱하게 엮는 것도 불실력이 필요하다. 어른 손바닥만한 큼지막한 게도 고소한 껍질까지 먹을 수 있다. 허물을 벗고 탈피하자마자 냉동시킨 머드크랩이다. 껍질이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고 닭발보다 풍부한 쫀득임이 살아있다.
바베큐 그릴 '카무앙'도 새콤한 레몬 마요네즈소스와 함께 나온다. 태국음식은 레몬그라스, 라임, 파타야 등 새콤달콤한 맛이 조화된 낯설고 어려운 맛이다. 취향이 생기려면 경험이 먼저 있어야 한다. 전주의 한식과 서울의 한식이 다르듯 태국요리라고 다 같은 태국요리는 아니다. 바나나테이블의 나시고랭(볶음밥)은 촉촉함과 매콤함이 살아있고 무사테(돼지고기 꼬치)는 직화로 스며든 육즙이 땅콩소스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잘만든 태국음식을 맛보는 것은 나쁜 경험도 피하고 훌륭한 추억도 쌓아 맛의 폭을 넓혀준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