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하늘은 높고 편집기자는 살찐다는 ‘천고편비’의 가을. 일상 지면에 색을 입히던 편집장이들이 스트레스 훌훌 날리고 마음에 색을 새기러 일탈에 나섰다.
#1.울긋불긋 =때는 11월 첫째주 금요일(2일). 가을이 깊은 만큼 울긋불긋 단풍의 유혹이 다가온다. 첫 목적지인 치명자산은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천주교 순례지다. 1784년 호남 지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한 유중철(요한)과 아내 이순이(루갈다)가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산 정상에 묻혀 있다.
30여분 가파른 길을 따라 걷다보니 여기저기 “아이고 죽겄다. 운동이라곤 숟가락만 들었더니 죽겠다”라는 하소연이 들려온다. 나 또한  동참.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지만 끝 모를 오름길 옆으로 볼 빨간 단풍 새색시가 어서 힘내라고 엉덩이를 밀어 올려준다. 그렇게 긴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가을동화’다. 전주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 이곳이다. 정상에서 울긋불긋 상기된 얼굴로 서로 고생했다며 다독이는 전북의 장이들. 전북 편집장이들이 좋은 첫 번째 이유다.
#2.노릇노릇= 치명자산에서 걸어 도착한 곳은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전주향교다. 우리에게 두 번째 색을 입혀줄 전주향교는 고려 말에 창건됐다. 중앙건물인 명륜당 앞뜰 좌우에는 수령이 500~600년 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전주향교에는 왜 은행나무가 많을까? 은행나무는 생장이 느리지만 고온 건조, 공해 등에 내성이 강해 무병장수하며, 선비같이 곧은 기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부정과 부패에 물들지 말라는 의미에서 전주향교에는 은행나무가 많이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노란 가을색을 잔뜩 머금은 은행나무들이 뿌리는 ‘노란비’는 우산이 필요 없다. 산들산들 바람에 날려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은행잎을 굳이 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스스로 땅에 내려앉는 잎이 아쉬울 뿐이다.
선후배들이 “같이 한 장 찍어요” “선배 얼굴이 크니까 뒤로 물러나세요”라며 기념촬영에 열중이다. 회사는 다르지만 잦은 만남이 끈끈한 정을 이어준다. 이곳에서 편집기자들은 가족이고 연인이다. 전북 편집장이들이 좋은 두 번째 이유다
#3.은빛넘실= 전주향교 옆 천변 억새길은 온통 은빛으로 물들어있다. 은빛이라 함은 왠지 고령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중년으로 접어든 고참 편집장이들의 새치(누군가에게는 희어진 새치도 사치이겠지만)와 키만큼 올라선 억새의 색깔이 아이러니하게도 참 조화스럽다.
새까만 머리숱을 가진 막둥이들이 흰머리와 민머리를 자랑하는 왕선배들에게 편히 먼저 말 걸어올 수 있는 가족 같은 분위기. 이것이 전북 편집장이들이 좋은 세 번째 이유다.
#4.알록달록= 컴컴=눈으로 즐겼으니 배를 채워야 할 때다. 장소는 한식 뷔페. 저마다 그릇에 가득가득 음식을 담고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입에 넣기 바쁘다. 어느 먹방 프로그램 못지않다. 마지막 코스인 영화 관람까지 남은 시간 우리는 ‘고독한 잡식가’일 뿐이다.
전북편집기자들은 피보다 진한 무엇인가가 있다.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정이다. 같은 지역에서의 우린 남이지만 남이 아니다. 만나면 좋은 형, 동생, 누나, 오빠다. 가족이다. 이게 전북 편집장이들이 좋은 네 번째 이유다. 


최병호 전라일보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