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올해로 24회를 맞은 한국편집상에 예년만큼 많은 작품이 출품됐다. 출품작은 제목 분야의 130개와 레이아웃 분야의 52개, 그리고 ‘이달의 편집상’을 수상했던 50개까지 합하여 모두 232개였다. 심사위원단은 편집기자 출신 전문가 2명과 언론학 교수 2명으로 구성됐다. 심사위원들은 전시장을 걸어 다니며 모든 출품작을 일일이 검토했다.
출품작들의 수준은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들은 이미 검증을 받았던 터라 당연히 그러했으며, 그 외의 작품들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다. 심사는 두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심사위원 각자는 자기 나름의 기준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냈으며, 그렇게 모인 작품 33개를 놓고 심사위원들이 한데 모여 품평을 하고 만장일치로 수상작 8개를 결정했다.
경향신문의 <역사를 바꾼 세기의 대화...오늘 한반도 냉전 끝낼까>는 국내 신문의 역대 레이아웃 가운데 가장 도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지면은 기사의 본문은 아예 없고,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서명이 좌우에 적힌 문서 아래에 두 사진(1972년 닉슨-마오쩌둥 악수 사진과 1985년 레이건-고르바초프 악수 사진)을 배치했다. 글자와 이미지보다 여백이 지면을 훨씬 더 많이 차지한다. 이것이 1면이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매일 가판에서 이기기 위해 1면 편집에 온갖 실험을 시도하는 영국 신문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아웃 부문의 또 다른 수상작인 동아일보의 <생애 가장 뜨거웠던 하루>는 지난 8월 1일 섭씨 40도 안팎의 기록적인 무더위를 문자와 이미지로 생생하게 전달했다. 어떠한 연령대의 독자도 그날만큼 더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므로 ‘생애’라는 표현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통단 제목 아래에 장년의 건설노동자가 눈을 질끈 감고 땀으로 뒤범벅된 얼굴을 닦는 사진이 있으며, 그 좌우에 기온 상승과 채소가격 인상을 나타내는 붉은색 화살표 10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그날의 열기를 더했다.
중앙일보의 <“그 나이엔 원래 아파요” 의사의 말이 더 아픈 노인들>은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받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는 아픈 현실을 의사들이 진료 도중에 무심코 던지는 말로 가중 표현했다. 조선일보의 <강남을 때렸는데, 지방이 쓰러졌다>는 강남 아파트값을 잡으려고 내놓은 규제책이 ‘기초체력’이 약한 지방에 오히려 타격을 주는 행정의 실패를 지적했다. 대개 운율 맞추기 식의 제목은 리듬을 살리려고 하다가 표현이 어색해지기 쉬운데, 이 제목은 기사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절묘하게 운율까지 맞춘 수작이다.
제목 부문에서, 디지털타임스의 <멸종위기 1급 ‘한국인’>은 출생아 수가 지난 5월에 처음으로 3만 명 이하로 떨어졌으며 30개월째 연속 감소한 사태를 ‘멸종위기’로 표현하여 주목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경제사회 부문의 경우, 경인일보의 <울리지 않는 종, 공시생 울렸다>와 부산일보의 <버스 CCTV, ‘내부자 비리’는 못 봤다>는 모두 두 구절로 된 제목인데, 앞 구절과 뒤 구절의 내용이 대조적이다. 경인일보 기사는 지방공무원 시험장에서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지 않아 공시생들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내용이며 부산일보 기사는 공무원의 묵인 아래 업체가 버스전용차로 CCTV에 저가 부품을 납품했다는 비리를 다루었다. 둘 다 사건기사인데, 제목을 이렇게 참신하게 달아서 기사의 상품성을 한껏 높였다.
피처 부문 수상작인 전자신문의 <심기 불편한 날>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4월 5일이 나무 심기에 부적합해졌다는 것과 그 바람에 식목일 변경에 관한 논란이 발생하여 心氣도 불편해졌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시원한 레이아웃도 일품이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