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24>


세종시는 충남 연기군, 공주시 일원에 건설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말한다. 시의 이름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이름에서 따왔다. 세종시는 ‘우리들의 행복도시’를 슬로건으로 했지만 ‘행복도시’란 콘셉트가 금방 와 닿지 않는다. ‘사랑도시’ ‘진실도시’ ‘아름다운 도시’라는 표현이 공허한 것처럼 ‘행복도시’는 구체성이 없다. ‘행정중심복합도시’란 명명도 참으로 딱한 이름이다. 공무원들의 관변적 발상이 물씬하다. 행정특별시도 아니고 테마도시도 아니며 스토리텔링 도시도 아니다. 복합이란 말로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려져 있다. 세종시를 발음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광활한 농토 위에 세워진 덩그런 관청 높다란 공무원촌 아파트만 떠오른다.

한국 도시 중에 홍보 콘셉트를 제대로 잡아 유명해진 지자체가 전남 순천시다. 순천시의 슬로건은 ‘대한민국 생태수도’이다. 한국의 대다수 도시들이 행복 교육 문화 관광 복지 역사 산업 등의 복합 개념을 동시에 내세우는 데 비해, 순천시는 광활한 갈대밭을 낀 순천만을 내세워 ‘생태도시’라는 발전 전략으로 일관한다. 세계 5대 연안습지중 하나인 순천만은 사계절 국민 생태답사코스가 됐다.



◆ 청정습지 + 에코투어 + 남도한정식 이미지를 상품으로

순천를 화제로 올리면 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진 철새도래지 순천만이 떠오르고 청정습지 에코투어 남도한정식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용산 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이 춘하추동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확연히 목격할 수 있다. 금가루를 뿌린 듯 황금빛 사금파리들이 가을 갈대꽃 끝자락에서 일렁거린다. 진홍빛 칠면초 군락과 진귀한 철새들의 군무는 전국의 많은 사진작가들을 초대하고 있다. 봄 갈대의 파릇한 싹. 짙은 녹음의 여름 갈대숲 사이로 뭇 생명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겨울엔 흑두루미 청둥오리 왜가리가 유유상종하면서 ‘생태계의 보고’ 갯벌을 부리로 쪼아댄다.

순천시는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까지 개최하여 수백만 국내외 관광객을 모았다. 미래 도시들은 친환경 생태도시, 녹색성장 자족도시를 꿈꾼다. 순천은 자신의 특장점을 잘 살린 도시마케팅으로 ‘대한민국 생태수도’란 비전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전주는 한옥마을과 비빔밥이 유명하다. 2009년부터 도시 슬로건을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로 정했다. 전통과 현대를 비빔밥의 개념으로 조화롭게 융합한다는 의지이며 ‘세계와의 소통’을 구호로 내건 전주국제영화제의 메시지도 포함하고 있다. 도시 마케팅의 초점은 ‘가장 한국적 도시’에 맞춰져 있다.

전주시에는 전통문화관 역사박물관이 많아 도시 전체에 볼거리가 퍼져있다. 여타 도시와 다르게 남도민요 판소리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역동적인 전주 대사습놀이 이미지는 도시 홍보의 큰 몫을 하고 있다. “한국 전통을 알려면 전주를 체험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악예술의 도시’ 이미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전주시의 향후 발전전략은 ‘전통과 미래의 연결 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의 관광 국가슬로건은 ‘100% PURE’. 훼손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남반구 자연경관을 내세운다. 세계인이 청정무구한 별천지로 떠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나라가 뉴질랜드다. 거대국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인접 소국으로서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극대화한 매력적 슬로건이다.

말레이시아의 슬로건은 ‘Malaysia, truly Asia’. 우리말로 하면 “말레이시아, 진정한 아시아”. 중국이나 태국, 싱가포르에 비해 관광지로서의 잠재성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로서 적극적 홍보를 하지 않았으나 2007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를 계기로 “Malaysia, truly Asia”문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슬로건은 말레이시아의 관광수입을 4배로 껑충 끌어올렸다. 아시아적 신비를 체험하고픈 서구인에게 말레이시아로 떠나고픈 욕구를 한 순간에 불러일으킨다.

이밖에 스위스 ‘Get Natural’ 싱가포르 ‘New Asia’ 필리핀 ‘WOW Philippines’ 미국 뉴욕시 ‘I ♥ Newyork’ 도쿄 ‘Yes! Tokyo’ 홍콩 ‘Asia`s world city’ 슬로건이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되고 있다.



◆ 도시도 국가도 최적화된 미디어 전략을 찾아야

도시나 국가의 또 다른 이름인 슬로건 개발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젠 마을도 도시도 국가도 미디어다. 마땅히 최적화된 미디어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미래 비전을 적재한 최적화된 슬로건 찾기다.

국가나 도시 슬로건은 첫째 핵심 콘셉트가 잘 드러나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발표한 새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추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슬로건 ‘창조경제’ ‘문화융성’처럼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다. ‘크리에이티브’이란 형용사는 한국적 콘텐츠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 연상되는 상징과 내용물도 없다. 한국의 첨단 IT기술과 멋진 디지털 제품을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 키워드가 보이지 않는다.전라남도 여수시의 옛 슬로건은 ‘깨끗하고 친절한 도시’였다. 밋밋하고 개성이 없었다. 하지만 여수시는 2012 세계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세계로 웅비하는 미항, 여수’ 영문은 ‘Yeosu, Beautiful Gateway to the World’로 정했다. 훨씬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도시가 지향하는 비전이 확실하게 다가온다.


둘째 자신만의 차별화다.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뭔가를 찾아내 언어적 형상화를 해야 한다. 제임스 딘엔 제임스 딘만의 반항적 이미지가 깃들어 있다. 앙드레 김엔 앙드레 김만의 아우라가 이름 자체 안에 담겨있다. 일순간 낯설게 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와야 한다. 필자가 군복무한 동부전선 강원도 고성 모사단의 사단연병장이나 신병훈련소에는 “동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걸려있다. 3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사계절 불철주야 전방철책선 경계근무에 임하는 슬로건으로써 손색이 없다. 국토방위 다짐과 지역적 자부심이 여덟 글자의 슬로건 속에 꽉 차있다.


셋째 남들이 발음하기 좋아야 한다. 이름은 내 것이지만 내가 쓰지 않는다. 남들이 말하고 싶고 쉽게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 슬로건이자 브랜드는 내 눈에 맞추면 안 되고 남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I ♥ Newyork’ 영문이 적힌 티셔츠를 세계인이 입고 싶어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