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21>


 

오우삼 감독 영화 ‘적벽대전’은 1,2부 시리즈로 제작됐다. 제갈량 역은 금성무가 맡았다. 신생국 촉한의 설계자 제갈 공명은 위나라 오나라 두 호랑이가 우뚝 버티는 형국을 뚫고 천하삼분지계를 통해 촉나라의 생존을 도모한다. 천하를 떠받치는 솥의 다리 3개중 한 축을 이뤄 불리한 지세를 헤치고 캐스팅 보트를 쥐고자 한 것이다.



세계지도 오른쪽 상단 韓-中-日이 속한 동북아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민감하게 주목받는 전략적 공간이다.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곳이다. 세계 제조업의 메카이자 최대 소비국 중국이 15억 인구의 큰 덩치로 시장경제로 내달리면서 G2의 한 축이 되었다. 일본의 기술과 자본은 지구촌 경제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여전하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은 간난신고 끝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압축적으로 치러내면서 5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IT 강국, 무역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세계 패권을 행사하며 주변국을 거느린 역사의 중심 무대였다. 한국 일본은 변방이었다. 동시에 한중일 3국은 상호 친선보다는 침략과 종속의 문제가 늘 앞섰다. 같은 황인종 아시아권, 젓가락을 쓰며 유교 영향권에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적 근현대사로 인해 정서적 거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들 세 나라 모두에게 통하는 미디어 코드가 하나 있다. 바로 三國志(소설 삼국지연의)다. 삼국지 스토리와 등장인물은 한중일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친숙하다. 유교 사서삼경, 불교 경전을 두루 읽어본 사람들은 드물다. 반면 삼국지는 동북아 사람이면 한 번 씩은 읽어본 경험이 있다. 어떤 문학작품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대중친화력을 갖고 있다. 수많은 사자성어와 인생 경구가 피어나는 동북아인의 필수 교양 미디어다.



# 공명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편집력을 발휘했다

삼국지가 펼치는 거대한 스케일과 중원을 가로지르는 호연지기는 한자문화권 동양인들이 항상 가까이 하고픈 상상력의 샘이 된다. 위 촉 오 숱한 쾌걸 남아들이 지략과 모략을 짜내면서, 서로 일합을 겨루는 무협지적 장면들은 3세기 당시 세계 최고수준 중원문명을 과시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삼국지 불세출의 영웅들 중에서 누구를 주인공 캐릭터로 삼고 싶은가? 아마 촉나라 창업주 유비를 도와 시대의 전략가 공명 선생이 가장 인기가 있을 것이다.

위, 촉, 오 3국이 대립하던 서기 210년 경 중국. 국력의 힘으로 보면 위나라가 가장 으뜸이었고 지배 영토도 가장 넓었다. 사실상 최고 권력자였던 승상 조조는 천자를 허수아비로 삼았지만 천하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중원대륙 지방 토호세력은 위나라를 주군의 국가로 떠받들었다. 인구도 가장 많아 군사력 또한 막강했다. 다만 북방 이민족들의 침입이 잦아 북쪽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강국인 오나라는 천혜의 방어선을 앞세우고 있었다. 장강(양쯔강)이 거대한 국경선을 이루며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다. 오나라 군대는 적벽대전 대승처럼 수전에 능했다. 아래로는 바다를 끼고 있어 무역 또한 발달해 물산이 풍부했다. 장강은 양날의 칼이었다. 자칫하면 장강 안에 갇혀 천하의 변화에 둔감해진다는 맹점을 지녔다.

가장 취약한 나라가 유비의 촉나라. 지배 지역도 큰 도시가 없는 산간벽촌이 대다수였다. 후대 역사가들은 당시 중국 전체 인구를 100으로 잡으면 위 55, 오 30, 촉 15의 비중으로 가늠했다. 궁벽한 곳이라 인재도 드물었다. 오직 주군 유비를 필두로 ‘오호대장군’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의 기량과 전략가 제갈 공명의 시대 편집력이 유일한 무기였다.

공명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로 세상을 나누려 했다. 북쪽의 조조와 강동의 손권이 자신의 거점에서 위용을 떨칠 때, 익주에 터를 내리고 ‘중원의 배꼽’ 형주를 취하면서 오나라와 동맹을 맺어, 조조를 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원대한 포부를 삼고초려 때부터 유비에게 건의한바 있다. 멸망해가는 한나라의 영광을 되살리려 유씨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유비에게 충성을 바쳤고 한나라의 명맥을 잇고자 촉한 건국을 기획 설계했다.



# 1등과 2등 사이에서 3등이 취할 수 있는 생존비법

중원 전체를 촉한 천하로 통일 하려면 신생국 촉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위나라 오나라 두 호랑이가 우뚝 버티는 형국을 뚫고 도모한 생존전략이 바로 천하삼분지계다. 고대 중국 솥은 다리가 3개다. 1개라도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천하를 떠받치는 솥의 다리 3개중 한 축을 이뤄 불리한 지세를 헤치고 캐스팅 보트를 쥐고자 한 것이다. 위나라는 장강을 건너 오나라를 치고 싶지만 그 사이 촉의 측면 기습이 두렵다. 반면 촉이 위나라와 합세, 오나라를 협공한다면 강동의 손권은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오는 단독으로 조조군과 맞붙으면 수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선 위나라와 맞붙을 수밖에 없다. 촉이 오나라 편에 가세하면 되레 위나라를 몰아붙일 수 있다. 이래서 두 라이벌 1등과 2등은 3등에 대한 구애에 나설 수밖에 없다.

조조도 유비-손권의 선린 동맹을 저어하여 촉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오 또한 촉을 단독 공격할 시간에 위나라가 쳐들어올까봐 굳이 촉을 자극하지 않는다. 더구나 촉의 지형은 험준하고 침공의 요로는 한정되어 있다. 와룡 선생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고자 했다. 탄탄한 1등과 버금가는 2등 사이에서 3등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세력 편집인 것이다. 판이 불리할 때는 우월한 자의 판을 분할하거나 기존의 판이 아닌 독립된 새 판을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판의 기획자, 시대의 편집자 공명은 손권이 촉나라와 동맹관계를 내심 원하고 있는 점을 간파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체면을 세워준다. 촉의 입장에서 조조를 위협하기 위해선 강동 전선이 일촉즉발의 위기가 아닌 평화의 경계선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오와의 동맹이 국력 소모를 줄이고 동시에 위를 견제하는 지름길임을 간파했다. 동시에 위와 오의 날선 대결 긴장국면이 유지되어야 틈틈이 전력을 보충 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조조와 손권은 마음속으로 ‘천하양분지계’를 원했지만 현실은 공명의 구도대로 천하삼분지계 책략대로 출렁거린다. 위-촉-오 세력 판세가 솥 다리처럼 정립되는 시기는 와룡 선생의 생존 시기와 궤를 같이 한다. 공명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하는 일은 사람이되,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서기 232년 8월13일 공명의 나이 쉰네 살. 마침내 최후의 큰 별이 떨어진다. 흰 깃털 부채를 들고 천하통일의 대전략을 도모하다 전장의 가을 속으로 스러져간 공명 선생. 사심 없이 주군을 모시며 충절의 미학을 보여준 선비정신. 전체를 보는 전략가이자 부분을 엮어낼 줄 알았던 전술 편집의 대가. 1700여년 전 오장원 들판에 불던 초가을 밤바람, 완벽한 삶으로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 와룡선생의 흰 도포자락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천하양분지계’를 ‘천하삼분지계’로 견제했던 최고의 스토리도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