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스토리 <18>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우직한 저널리즘의 펜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파헤치는 시네마다. 지난 2월 제88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로 각본상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동부의 유력지 보스턴 글로브 신문 탐사보도팀의 이름이다.
2002년 탐사보도팀은 장기 취재를 통해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가톨릭교회의 행태를 만천하에 고발했다. 30년에 걸쳐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신부가 기소되자, 보스턴 글로브 신임 편집국장은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스포트라이트’ 팀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 사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분)기자,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기자, 매트 캐롤(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 분) 통계분석요원은 심층 취재에 나섰다. 발로 뛰는 팀플레이덕분에 보스턴 지역에서만 약 90명의 사제들이 추악한 행위를 자행했음이 드러난다. 이를 계기로 타 지역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가톨릭 교구는 큰 타격을 입는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2003년 미국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받게 된다.



◇가톨릭 교계 ‘침묵의 카르텔’을 겨냥하라
‘스포트라이트’ 팀은 정확한 보도와 충분한 근거 확보를 위해 여러 명의 피해자를 만나고 관련 변호사를 설득해가며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린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숨겨져 온 실체와 보이지 않는 세력이 은닉했던 흑막은 드러나고 만다.
피해자 중 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은 사제의 순결 서약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증언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니 당연히 성욕을 느낄 것이며 그걸 풀 기회조차 막혀있으니 다른 해결책을 찾을 것 아닌가.” 피해자들 대부분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난한 집 아동들이다. “당신이 가난한 집의 아이이고 사제가 당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면 아이에겐 대단한 일이 된다. 사제가 은밀히 부를 때 어린 마음에 어떻게 하나님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신부가 가난한 아이를 고른 건 그들이 쉽사리 고발하지 않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순진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가해진 추행은 사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범죄 패턴이었다. 사제, 교구민, 바티칸 상층부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 모두가 알고도 쉬쉬해온 사건이었다. 동성애라든가 소아성애증에 걸린 특정 사제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실 가톨릭 교계는 아예 성추문 전담 변호사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나이 어린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 근본적인 사전 예방의 조치가 없었다. 사건이 들춰지면 문제 사제를 다른 교구로 전출시킬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온존해온 사제의 아동 성추행 패턴은 가톨릭 교계 ‘침묵의 카르텔’이 키워온 것이다. 아동 성범죄의 온상이면서 이를 회피한 가톨릭 ‘침묵의 문화’가 진범이었다.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며 문제 자체를 덮는 일종의 내부자 담합 행위다. 결국 ‘침묵의 나선’ 똬리는 지속적 비극을 낳는다. 가난한 아이들은 계속해서 사제들에게 성폭행 당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정신병을 앓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결국 마약과 술에 빠져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았다.



◇탐사 저널리즘의 교본으로서 미덕 발휘
‘스포트라이트’팀의 성취는 신성모독의 범죄를 특정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지 않았고 방조하는 시스템을 과녁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사건을 은폐한 시스템을 향해 펜 끝을 겨눴고, 수년간 이 문제에 대해 방관 혹은 침묵했던 언론의 자성 또한 잊지 않았다. 그동안 아동 성추행 기사제보가 많았다. 하지만 기존의 보스턴 글로브 편집국은 단발성 뉴스로 그치고 말았다.
외부에서 부임한 유대인 출신 신임 편집국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이 보여주는 리더십은 인상적이다. 제3자적 관점에서 멀리 보는 통찰력으로써 사건의 지향점을 꿰뚫고 있다. 단일 사건으로 일회적인 마녀사냥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의 연결고리를 짚어내라고 지시한다. 또한 현직 추기경의 은근한 압박도 막아낸다. 보스턴 인구의 절반이 가톨릭 신자이다. 지역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나쁜 일을 ‘쉬쉬’하는 관행적 정서에 굴하지 않고 취재를 밀어붙인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심층 취재 저널리즘의 기술과 실제를 보여준다. 동시에 탐사 저널리즘의 교본으로서의 미덕도 발휘한다. 제 혼자 잘난 영웅적 기자는 보이지 않는다. 현실에 나약하지만 우직한 기자들의 팀플레이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보스턴처럼 아동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교구가 전 세계 수백 개에 이른다는 사실과 그 리스트를 엔딩 자막으로 가득 채우며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