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에세이 <3> 김종건 필묵 대표


 

서예와 디자인의 경계에서 살아온 나는 ‘꽃’ 한 글자에 매달려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이것은 서예의 시작이며 문자의 회화화(繪畵化)이다. 글자는 의미전달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그 목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의미전달의 목적이외에 글자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 서예는 예술로서 존재하기 시작하였고, 그 예술로서의 가치는 글자의 의미를 훌쩍 벗어난다. 한마다로 글자의 의미를 저버리고 순수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서예는 글자를 고집하지 않고 해체로까지 그 경계를 허물며 넓혀나갈 수 있는 것이다.



#“또, 꽃이에요?”
꽃에 빠져 매일 ‘꽃’자를 쓰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이 싫지 않다. 남들에겐 ‘꽃’자가 그저 단순한 단어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에게 꽃은 단순한 글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꽃’이란 글자는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갖췄기에 그림문자로서 한글의 독창성과 다양성, 조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글자로 도구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꽃’이란 소재는 세계와 소통?교감할 수 있는 감성 언어이기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글 ‘꽃’을 피우기까지
‘꽃’이란 단어로 한글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에 시작하게 된 것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붓이 아닌 허브 뿌리로 ‘춤’자를 쓰게 됐고, 2004년 제3회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였던 ‘춤’자가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한글의 그림문자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후 ‘꽃’이란 공동주제로 4인의 캘리그라퍼가 펼친 ‘사춘기(四春記)展’을 통해 한글의 조형성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열망을 갖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붓이란 틀을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수시로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다양한 도구를 찾아다니게 되었고, 그 결과 글을 ‘쓰는 것에서 만드는 것’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지금처럼 다양한 형태의 글꽃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한글의 세계花를 꿈꾸며
2004년부터 꽃자를 쓰며 첫 번째 개인전에는 백송이로 아트북을 만들었지만 2015년 네 번째 개인전에는 구백송이까지 꽃자를 썼다. 앞으로 천송이, 만송이, 백만송이로 쉬지않고 계속해서 글꽃을 피워 한글도 세계인이 함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는 세련된 그림 문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한글이 우리 생활공간 가운데 당당하게 예술작품으로 걸리는 그 날을 꿈꾸며 ‘더꽃’의 세계花를 위해 또 한 번 힘차게 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