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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사이드

<14> 장문의 스토리텔링형 기사, 모바일 플랫폼서도 통할까?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는 ‘손바닥 미디어’에서도 통할까?
스토리텔링 스타일이란 세밀한 장면 묘사, 과정 중시, 관점 개입, 드라마 기법, 조직화(기-승-전-결)에다 사실 증명과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 등이 어우러진 긴 호흡의 기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길고 장황한 기사가 영상과 짧은 텍스트 중심의 스마트미디어, 특히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읽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인터넷 매체에 첫 퓰리처상 안긴 이야기식 기사
‘한 구호 요원이 병원 예배당의 나무문을 열었을 때 죽음의 냄새가 그 순간을 제압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말라버린 수십 구의 시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시신을 덮은 새하얀 천 끝자락 위로 회색빛 머리카락 꾸러미가 뽑혀져 나뒹굴었다. 그 뒤로는 누군가의 한쪽 무릎이 구부러진 채 튕겨져 나가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창백한 한쪽 손은 마루 위의 파란 가운 위에 놓여 있었다.’
소설 같은 이 글은 201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셰리 핑크(Sheri Fink·현재 뉴욕타임스 기자·사진) 기자의 기사 첫 문단이다. 그 당시 인터넷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소속이었던 핑크는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고립된 한 병원을 밀착 취재, 1만3000단어 분량의 긴 기사를 내놓았다.
핑크의 취재 결과 현장 의료진이 가망 없는 환자들을 ‘안락사’시켰던 사실이 밝혀졌다. 핑크는 2년 반 정도의 취재기간에 환자·간호사·의사 등 140명 이상을 인터뷰했다.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 매거진 웹사이트에 공동 게재되면서 주목받았고, 프로퍼블리카는 인터넷 매체로는 사상 처음 퓰리처상을 받았다.
핑크의 기사는 ‘뉴스’가 단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숨겨진 진실을 그러모으는 작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기사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소설처럼 길게 풀어낸 기사 형식이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서는 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출처: 경향신문 2010년 10월 5일자/경향신문 64주년 창간특집: 독자와 빠른 교감 논쟁·기사 이끄는 온라인 뉴스의 힘의 재구성).
핑크는 퓰리처상을 받은 후 2010년 7월 한 포럼에서, “모바일 시대에 1만3000단어의 긴 기사가 읽힐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한 답으로 “기사가 흥미롭다면 인터넷에서도 읽힌다. 그 답은 이야기식 기사다”라고 했다.
그는 “휴대폰 문자나 댓글, 트위터 등 단문의 시대에 이렇게 긴 이야기 기사가 읽힐까 의심스러웠다”며 “그러나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다면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읽힐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심층보도와 이야기식 저널리즘은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용자들은 진심으로 이야기를 원하고 수천 년 동안 이야기는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통로가 되어왔다는 점을 들어 이야기식 기사가 가진 희망적 미래를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이야기가 각광받기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과 현장 취재를 위한 시간 지원, 기사를 유통시킬 플랫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모바일은 매우 빨리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지만 이것은 정보 자원과 보도를 연결해주는 초기 단계일 뿐이고 기자들은 이 모바일 정보를 활용해 심층보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소셜미디어는 뉴스 유통의 민주화 모형일 뿐이고, 질적으로 깊이 있는 기사가 지속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며, “가독성을 높이고 현장 느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구성이 적합하다”고 거듭 강조했다<출처: 2010년 7월 8일/오마이뉴스 주최 ‘세계시민기자 포럼’ 요약 재정리>.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는 종이와 소셜미디어를 넘나들며 팩트 파인딩(fact finding)부터 탐사보도까지 저널리즘 수호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형 기사의 발전적 대안
하지만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의 한계는 편향성이다. 묘사와 표현, 기자 개인의 관점 및 의견 게재를 주요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의 스트레이트 기사에 비해 더 적나라하게 관점 및 의견이 드러나게 된다. 상상·은유·예상·대화 기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기자 개인의 역량과 시각이 좀 더 뚜렷하게 반영된다. 이로 인해 편향성에 대한 지적은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에서 피할 수 없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내러티브적 설명, 드라마적 감정 곡선 처리, 연대기적 구성 등으로 수용자에게 재미있고 흥미롭게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왜 편향성의 범주에 드느냐’라는 반론도 있지만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는 기존 스트레이트 기사에 비해 기자의 감정 소모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가지는 관행적 특성이 적다. 스트레이트 기사가 뉴스메이커 중심이라면, 스토리텔링 기사는 뉴스메이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일반 대중을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에 형식이나 내용이 자유롭다. 이 스토리텔링 스타일 기사는 방송의 ‘PD저널리즘’ 특성을 보인다. 개인이 가지는 문제점을 따라 사회적 난제로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미디어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진화하는데 아직도 신문은 종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의 압박 속에서 변신이 더디다.
물론 스토리텔링 스타일만이 기존 기사쓰기 대안은 아니다. 문제는 스토리텔링 스타일 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상투적 기사쓰기를 바꾸려는 시도이다. 신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수많은 온-오프라인 기자와 데스크들도 저널리즘 글쓰기 미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했다<출처: 박재영·이완수(2008). ‘역피라미드 구조와 내러티브 스타일에 대한 기자와 에디터의 인식’. 한국언론학보, 52권 6호의 재구성>.
㉠ 기사 문체는 사회상을 반영하는데, 신문이 스마트미디어 시대 유저들의 흥미 유발에 실패했으므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 기사 작성에 공식은 없다. 기사의 소재나 유형에 따라 다양한 글쓰기 실험을 해야 한다. 팩트를 해치지 않는다면,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가 왜 문제가 되겠는가?
㉢ 역피라미드 구조와 내러티브(narrative) 스타일을 적절히 혼합할 필요가 있다.
㉣ 기자의 글쓰기는 언론의 편의성이 아니라 수용자와 시장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는 채널에 맞는 새로운 글쓰기가 필요하다. 다양한 수용자 눈높이에 맞는 개성 있고 흡인력 있는 기사 문체로 진화해야 한다.
㉥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는 ‘어느 신문사 기사인가’보다 ‘어느 기자의 기사인가’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기자 고유한 색깔을 보여주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 역피라미드식 정보 전달 기사는 인터넷에 넘쳐나는데, 왜 수용자들은 굳이 신문을 고집하겠는가? 스토리텔링형 글쓰기가 대안으로 제시될 것이다. 내러티브 스타일보다 더 정교한 문학적 글쓰기가 요청될지도 모른다.                                
스포츠조선 콘텐츠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