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스토리 <17>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의(記意:signifie)고, 꽃집에서 산 장미꽃은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 곧 기표(記表:signifiant)가 된다. 곧 기의가 기표와 결합하여 사랑을 표현하는 기호(記號:sign)행위가 된다. 장미꽃을 받아 든 사람은 그것을 선물한 사람의 의도로 해석한다. 이때 발생하는 현상이 의미 작용이다. 사랑을 표시했더니 사랑을 느끼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두고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인간들의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하는 사람이 기호학자이다. 우리 시대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교수가 2월 20일 84세 생애를 마감했다.
기호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 미학, 문학 등 전방위적 인문학자였으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80년에 펴낸 첫 소설 <장미의 이름> 출간이었다. 역사를 통찰하면서 신에 대한 맹신과 인본주의의 대립을 그려 지식소설의 고전으로 자리 잡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희극을 논한 제2권이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책을 둘러싸고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추리 기법으로 다룬 소설이다. 1989년 숀 코너리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장미의 이름> 스토리라인을 따라서 신이 지배했던 서양 중세시대 마지막 풍경의 기의-기표-기호를 읽어본다.



◇미디어는 권력이다
 인권과 시민권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 근대 이전 인류역사를 간단하게 이항 대립시키면 지배와 피지배로 나눠진다. 지배자는 부와 품격으로 치장하면서 고급문화와 풍요로운 물질을 향유했다. 계급이 낮은 피지배자는 지배계급을 위해 평생 노동력을 바쳤다. 지배 계급은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다.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절차도 장악한다. 진귀한 향신료 보물 황금 청동기구, 강철로 벼린 칼과 창, 화약 총포는 결국 지식과 정보를 더욱 독점하는 도구였다.
르네상스가 움트기 시작하는 14세기 이탈리아. 신권의 상징인 교황의 절대권위가 서서히 흔들리던 1327년 이탈리아 북부 한 수도원. 이곳은 기독교계 최대의 장서관으로 당시 동서고금의 깊고 넓은 지식들을 채록한 방대한 서적들이 숨겨져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 이 가상의 수도원이 현대 지식소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장미의 이름’ 무대다. 장 자크 아노감독이 원작에 충실하게 영상화 했고, 숀 코너리가 윌리엄 신부 역에,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어린 수사 아드소 역을 맡았다.
수도원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희생자들은 수사(修士). 교황청은 월리엄 신부를 수사관으로 파견한다. 영국 출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정통하며 경험주의적 사유를 갖춘 프란체스코파 윌리엄 신부는 조수 아드소와 함께 이 비밀스러운 수도원에 발을 내딛는다.
두 사람은 수사들의 의혹에 찬 피살마저 신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수도원의 권위적 엄숙주의와 맞닥뜨린다. 살인은 계속된다. 체온이 아직 남은 시신이 연이어 발견된다. 희생자들은 장서관 책을 다루는 수사들. 월리엄 신부가 수도원의 연쇄살인사건을 본격적으로 추적하자 이 웅장하고 의혹에 싸인 지식 저장소는 중세의 본질적 모순을 드러낸다.
신의 이름을 내걸고 교권을 유지하려는 중세 교회와 권위의 상징인 수도원은 민심이 들끓을 때마다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을 벌인다. 수도원은 민중의 땀 위에 건설되었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마녀’ 혐의가 씌워진 민초는 가차없이 화형 당한다. 체제에 반항하면 ‘공공의 적’ 이단으로 낙인을 찍혀 십자가에 매달린다. ‘이단과 마녀’는 기성 권력에 유지하는데 꼭 필요했다.
청빈과 금욕을 강조하는 프란체스코 교파는 인문주의와 자연과학을 수용했다. 프란체스코 교파는 베네딕트 교파가 장악한 ‘있는 자의 교회’를 비판했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프란체스코파와 베네딕트파는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위상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수도원의 권력자 호르헤 신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애써 무시하며 중세적 가치 아래 모든 것을 복속시키려 한다. 그는 지식은 인간을 타락시키며 발전이 아니라 순환할 뿐이라고 강변한다. 이에 윌리엄신부는 인본주의적 사상이 동터오르는 르네상스가 도래함을 암시하며 맞선다.



◇도서관을 장악하라
 윌리엄신부는 당시 최고 지식들이 ‘다운로드’되고 재분류되어 새 저술로 ‘업로드’되는 수도원 사본실 안팎을 샅샅이 수색한다. 사본 수사(寫本 修士) 번역 수사(飜譯 修士)들의 연쇄 피살사건 추적을 통해 맹목적 신앙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 일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인다. 결국 호르헤 신부는 인류 수천 년 지식이 켜켜이 보관된 서고를 불태우며, 스스로 죽음의 불구덩이로 뛰어든다. 그토록 금기시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희극’을 움켜쥐고서.
신앙은 근엄해야 하고 신에 대해 두려움을 간직해야 하는데 인간의 웃음은 경박한 재치를 불러일으켜 신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다는 맹목적 믿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희극’을 후대에 전수시키지 않으면 인간의 웃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호르헤 신부의 닫힌 맹신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권의 종이책은 인류 문화의 최고 미디어였다. 필사에서 필사로 이어지는 문자 미디어의 총아였다. 15세기 인쇄술 발명은 종교적·세속적 권위의 해체와 지식의 분배를 발생시켰다. 이는 근대로의 진보를 이끈 혁명적 사건이었다. 성경의 대중적 출판은 일대 사건이었다. 서서히 일반인의 독서문화가 형성되고 작가, 독자, 출판 세 영역의 커뮤니케이션이 태동한다.
세월은 흘러 지금 인터넷 모바일 디지털 테크놀로지까지 이어진다. 디지털 독서가 가능해지면서 장서고 즉 도서관의 역할도 변한다. 지식의 깊이 보다 넓이가 중요시된다. 언어의 연결성이 지구촌을 이어 붙인다. 36년 전 출간된 <장미의 이름>이 이를 예견한 셈이다.
스러지는 진리는 떠오르는 진리를 막지 못한다. 그 과정이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간의 역동적 파워게임이다. 동 터오는 미디어는 저무는 미디어를 대체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정체된 종교권력 미디어가 한 시대 지식과 정보를 독점 통제하려는 과정을 수도원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진진하게 드러내준다. 변화가 변화를 밀어내는 급변시대. 태동하는 스마트 뉴미디어는 어떤 시대를 초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