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철민의 편집이야기 <9> 디지털과 편집 中


한국경제 멀티미디어 뉴스 ‘IoT 빅뱅이 온다’를 제작할때 기획했던 스토리보드 초안.


◇온라인 제목달기의 한계
 온라인에 제목 달고 끼워 넣는 일. 편집기자가 이 일만 한다면 편집을 떼어내야 할 수도 있다. 제목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편집의 시작과 끝은 제목이니까. 하지만 온라인 제목만 단다면 카피기자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온라인 제목달기는 오프라인과 같은 듯 다르다. 온라인은 본문이 생략된 채 제목만 보인다. HTML언어 기반의 수직적 미디어라 그렇다. 정보를 읽으려면 제목 창을 보고 클릭해 없애고 내용 창을 보는 직렬적 구조다. 온라인은 최대한의 정보를 노출 시키려고 화면에 가능한 많은 제목 창을 만든다. 그래서 제목이 팩트 중심이거나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반면 종이는 제목과 본문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소위 던져주거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만 달아도 궁금하면 읽게 돼 있다.
종이에서 뉴스는 제목과 본문이 한 덩어리로 읽히지만 온라인에서는 제목 따로 본문 따로 읽히게 되는 것, 이것이 온라인과 종이의 차이점 중 하나다. 종이는 불친절한 제목도 매력적일 수 있지만 온라인은 보는 순간 내용을 파악 못하면 다른 화면으로 휙~ 넘겨 버리게 된다. 불친절하게 제목을 달 수 있는 건 종이미디어만의 특권이자 장점이며 디지털과의 차별화 수단이기도 하다.



◇재미없었던 모바일 뉴스팀 근무
 모바일 전략팀에서 한 일은 아이패드 뉴스 앱 편집마감. 새벽에 나와 출근시간에 맞춰 7시에 1판 강판. 점심에 강판, 퇴근 시간대인 6시에 강판. 또 나이트라인 뉴스처럼 밤 11시 이후 한 번 더 강판. 2교대였지만 몸이 견뎌나질 못했다. 스트레스에 수면부족에 고생 만큼 뱃살도 차곡차곡 쌓였다. 재미도 없었다. 종이신문 제목을 튜닝해서 껴 넣고 데드라인에 맞춰 업데이트만 할 뿐이었다. 앱 디자인이 템플릿으로 디폴트 돼 있어 편집에 변화를 줄 여지가 없었다.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기계가 된 듯 했다.



◇아이패드가 준 선물 ‘디지털 기획력’
콘텐츠 서비스를 기획하고 엮는 건 꽤 흥미로웠다. 종이 위에 레이아웃을 하는 것과 스토리보드를 짜 디지털에 집어넣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둘 다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정보를 건축적으로 구축하는 행위다.
종이신문의 레이아웃 경험은 우리가 매일하는 일이라 별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대단한 것이다. 뉴스를 접하고 압축 제목을 달고 종이 위에 매일매일 가공했던 경험은 편집기자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디지털과 동영상을 위한 스토리보드 짜는 일도 멋지게 해낼 능력이 잠재 돼 있다. 정보를 조직화 해 본 경험으로 PD·영화감독의 자질이 이미 다듬어져 있는 것이다. “왜 이걸 제가”보다 “한번 해 보죠”가 필요한 때다. 후배들에게 디지털 경험이 주어질 때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길 권한다. 그 경험을 통해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편집능력을 깨우길 바란다.



◇세로로 레이아웃 하는 스토리보드
 종이신문이 페이지 순서대로 가로로 전개하는(병렬적 구조) 레이아웃이라면 멀티뉴스·카드뉴스 등은 세로로 펼치는(직렬적 구조) 레이아웃이다. 멀티뉴스와 카드뉴스를 만들기 위한 스토리 보드를 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가로로 엮던 레이아웃을 세로로 돌려 짜면 그만이다. 지면에 사진을 배치하고 어떤 이미지를 쓸까 고민하는 것과 똑같이 멀티뉴스도 중간 중간 애니메이션·음악·동영상을 맥락에 맞춰 껴 넣기만 하면 된다.
이런 설계의 틀을 짜는 것이 편집기자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코딩 특수효과 등의 나머지 영역은 개발자와 그래픽디자이너의 몫이다. 멀티뉴스를 만들기 위해 편집자가 포토샵, 동영상 편집 툴이나 코딩 프로그램을 꼭 배울 필요는 없다. 기획은 머리로 하는 것이니. 다만 좋은 이미지를 찾는 시각적 안목은 키울 필요가 있다.
종이와 디지털 편집이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다. 한번 기획하면 수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코딩 등 디지털 작업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과정과 같다. 수정하려면 밑단의 벽돌을 빼서 새로 껴 넣는 것이라 관련된 벽돌 전체를 건드려야하기에 종이신문처럼 쉽게 수정할 수 없다. 스토리 보드 단계에서 거의 완벽을 기해야 한다.



◇매크로 편집의 시대
 중앙일보는 지난 2015년 12월 디지털 전략 총 책임자로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영입했다. 그후 모바일에 역량을 쏟기 위한 수퍼데스크 체제의 뉴스룸을 도입했으며 편집부 기자가 디지털운영팀장으로 발령 나기도 했다. 모 취재 데스크는 “기존 신문제작은 그대로 간다지만 조금은 걱정”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편집의 장점이 기사작성 단계부터 편집부와 수많은 논의를 거쳐 나오는 것인데 취재 쪽에 집중하면 기회가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편집부 모 기자는 “지면 편집은 그대로 간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지는 앞으로 나오는 지면을 보면 알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협업으로 만드는 매크로(macro) 편집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디지털에서도 승부는 매크로 편집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앞으로 종이신문의 승부처도 이 매크로 편집에 있다. 사건 발표 등 이벤트 뉴스보다 그게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 등 분석 기획 뉴스가 종이신문의 차별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매크로 편집은 필수적으로 정보의 시각화 작업이 동반된다. 카드뉴스에 이미지가 없으면 팥소 없는 찐빵이다. 방송뉴스도 지금은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쇼처럼 바뀌었다. 데이터시각화에 있어 종이든 디지털이든 시각적 이미지 작업이 중요해졌으며 좀 더 폼 나게 하려면 품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하루 만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단순 속보와 양의 경쟁에 치중하던 온라인미디어들은 그 경쟁을 유지하면서 분석과 질도 함께 신경 쓰기 시작했다. 차별화를 위한 매크로 편집은 디지털에서도 점차 비중이 강화 될 수밖에 없다. 매크로 편집의 시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