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스토리 <14>


 


조용필을 건너야 겨울로 들어선다. 조용필은 내밀한 사진첩이며 추억의 등대이며 휘청거리는 신호등이다. 동시에 가왕 조용필은 가요계 ‘최고의 미디어’다. 조용필은 1990년대부터 TV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오직 라이브 무대로만 팬들과 만나고 있다. TV공연 예능토크쇼에도 출연하지 않고 책이나 영화 등 여타 미디어 채널로도 활동하지 않는다. 오직 정교하게 준비된 라이브공연 무대 예술로만 그의 발걸음은 드러난다. 한 길을 꾸준하게 47년째 걷고 있다. 천하의 국민가수는 해가 갈수록 한국 중장년층 추억의 배경이 되어간다. 삶의 절반을 살아낸 한국인이 지나간 청춘과 교신할 수 있게 하는 추억의 소통 미디어가 바로 조용필이다



# 80년대를 청춘의 江으로 건넜던 사람들은 안다. 조용필의 노래는 한국인을 위로하고 감동시키는 문학이었음을. 단순한 유행가요가 아니라 지친 가슴을 어루만지고 처진 맥박을 뛰게 했다. 스쳐가는 대중가요 가사가 아니라 한국어의 차진 맛을 절감하는 메타포였다. 정련된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우리는 포섭되고 만다. 누구나 굴려야하는 실존의 쳇바퀴. ‘生의 수레바퀴’를 끄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절창은 삶의 다독임이었다.
물망초. 그대여. 촛불. 창밖의 여자. 그 겨울의 찻집. 모나리자. 허공.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난 아니야 .고추잠자리. 한오백년. 간양록,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여행을 떠나요… 그의 노래는 끝이 없다. 그가 불렀던 200여 곡들은 단순한 가요가 아니다. 고달픈 현대사 속 휘청거렸던 우리의 삶을 대변한 대서사시였다.
황금빛 노을 속에서 뚜벅 뚜벅 걸어나온 거인이 시대의 고비와 힘겨운 심정을 어루만져 주었기에 한국의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이자 첫 디지털 세대는 술 한잔 속에 다 녹이고 다시 일어섰다. 지나간 청춘의 꿈을 회억하고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했다.
‘영원한 오빠’가 시대의 고비와 힘겨운 심정을 어루만져 주었기에 중년 세대의 가슴 속 낭만은 항상 현역처럼 출렁거린다. 아날로그 세대이면서 디지털 변화의 파도까지 헤쳐 나가했던 세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의 격랑을 온 몸으로 치러낸 한국 중년의 마음을 누가 위무할 수 있을까. 조용필뿐이다.



# 콘서트 무대의 레이아웃까지 연출
 국민가수 대형가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특정 세대만을 위한 맞춤식 대중가요만 횡행한다. 중장년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장르의 노래가 국적불명의 언어 조합으로 난무하고 있다. 생경한 댄스가요는 수요공급 방식에 따라 공산품처럼 급조된다. 한두 달 이리저리 얼굴을 들이민 아이돌 가수들은 어느덧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뜻 모를 랩에 한국어의 향기는 묻어나지 않는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함께 가슴을 저미게 해준다. 가객의 노래에는 말이 살아있고 의미가 숨쉬고 있다. 인간은 말 글 노래라는 미디어를 통해 존재와 관계를 깨닫는다. 시는 언어로 언어 밖의 세계를 노크하고 소설은 긴절한 희로애락을 긴장감 있는 스토리로 풀어낸다. 조용필이란 미디어는 굽이치는 한국인의 정서를 유장한 가사와 살가운 리듬으로 담아냈다.
그는 먼저 노래의 장인(Master) 이었다. 세상 속에서 노래가 어떻게 태어나야 하는지를 알았다. 노래의 거장은 인간을 위무할 정서의 선(線)을 제대로 뽑아낼 줄 알았다. 자신이 펼칠 무대의 종합 구성을 간파할 수 있기에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총지휘자 총연출자로서 콘서트 무대의 레이아웃까지 해낸다. 화려한 조명의 무대는 작은 소리도 3층 꼭대기 객석까지 펑펑 울리도록 정교한 설계로 짜여 진다.



# 조용필은 일찌감치 ‘푸시 미디어’
풀 미디어(Pull media·포털이나 뉴스닷컴의 홈페이지)가 푸시 미디어(Push media·직접 수용자를 찾아가는 미디어)에 밀리고 있다. 즉 거대 언론사의 공급자적 뉴스 물량공세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신문과 TV로 일정한 시간에 뉴스를 보는 사람들보다 수시로 스마트폰 SNS을 통해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수용자가 정보를 찾아가기보다 자신을 찾아온 뉴스와 정보에 시선을 먼저 둔다.
24시간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현대인에게 언론사의 브랜드나 플랫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찾아온 화제의 콘텐츠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조용필은 일찌감치 자신을 ‘푸시 미디어’로서 자리매김했다. 가객으로서 자신과 공연장을 자발적으로 찾아온 팬들의 교감지대를 수십 년 전부터 설정해 놨다. 매스미디어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 친화적 모바일 친화적 음악 메시지로 ‘조용필 미디어’를 구축한 것이다. 막강한 조용필 팬클럽은 한국의 모든 스타 팬클럽의 원조이며 ‘스타덤’과 ‘팬덤(fandom)’으로 상호 조응하는 팬문화 현상의 첫 씨앗이었다.
한국의 가요 역사는 ‘위대한 가객’ 이전과 이후로 획을 긋는다. 그는 중단 없이 창조적인 무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해마다 업데이트되는 그의 레퍼토리 패키지는 한국 최고의 ‘문화상품’이다. 그가 있어 한국인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