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33>


프로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특히 대전 연고의 한화 이글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홈경기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원정경기도 흥행몰이 중이다. 이런 배경 뒤에는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이 있다. 한마디로 ‘성근’이 나타나자 거꾸로 선수들의 ‘근성’이 살아난 것이다.
한화 이글스는 2009~2014년 6시즌 동안 다섯 차례나 꼴찌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개막 13연패를 당했다. 팀을 살려보겠다고 나선 덕장(德將) 김인식, 야왕(野王) 한대화도 나가떨어졌다. 한국시리즈에서 9번씩이나 우승한 코끼리 김응용도 ‘야신’이 되지 못하고 끝내 ‘야인’이 되고 말았다. 이런 팀을 새롭게 리빌딩한 김성근 감독이 그래서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것이다.
지금 한화는 마리한화 또는 한화극장이라고 불린다. ‘마리한화’는 한화 경기에 중독돼 마약(마리화나) 같다는 뜻이고 ‘한화극장’은 매 경기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치르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뜻에서 나왔다. 김 감독의 또 다른 별명은 ‘잠자리 눈깔’이다. 동시에 다양한 부분을 본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어차피’ 대신에 ‘반드시’를 주문한다. ‘이미 진 게임이니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꼭 이길 수 있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하라고 강하게 주문한다. 그래서 한화 야구는 끝내기, 역전승, 1점차 승부가 많다. 독종 감독이 만들어낸 독종 야구의 묘미다.
소통의 대명사로 알려진 그는 사실 ‘고집불통’이다. 실책을 범한 선수는 여지없이 ‘지옥의 펑고(야수에게 공을 쳐주는 수비훈련)’ 훈련을 받아야한다. 그의 좌우명(일구이무:一球二無)이 말해주듯 선수에게 두 번째 공은 없다. 공 하나하나에 승부를 걸 뿐이다. 또한 투수가 조금만 흔들린다 싶으면 마운드에서 내리고, 주자가 생기면 무조건 희생번트를 댄다. 강공으로 대량 득점을 노리기보다 1점이라도 쥐어짜는 스타일인 것이다. 때문에 경기가 늘어지고 재미없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야구계에선 선수들을 너무 오버워크(혹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일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승부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지려고 하는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 입맛에 맞춰 승부하다가는 진다. 지면 그 손해는 선수에게 간다. 내가 앞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조직이 이기면 된다. 조직에 플러스가 되면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한다. 세상 모든 손가락질을 이겨야지 리더가 될 수 있다. 소통과 불통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난 불통이다.”
그는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버려질 선수와 버려진 선수 사이에서 리더(leader)는 펜의 마음을 읽는다(reader)는 얘기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는 사람을 가차 없이 버린다. 적당주의와 패배의식을 가진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칼끝은 벼리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안정적인 소득, 편안한 집, 그리고 인생 2모작을 설계할 건강이 없다면 누구에게나 두려운 직업이다. 인생 100세 시대, 남은 후반전을 평생 현역으로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뛰어야한다.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다. 다만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리더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좋으면 꼴찌’라는 야구계의 격언에서 볼 수 있듯 승리를 위해선 비정할 정도의 냉정이 필요하다. 편집은 노동이 아니라 일이다. 노동은 시간만 채우면 되지만 일은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일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한다. 함량미달의 인성으로는 그 ‘일’을 해낼 수가 없다. 물론 리더(leader)를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리더의 마음을 읽어야(reader) 한다. 승리와 패배는 1㎝, 1%로 갈린다. 그 작은 틈새가 눈에 안 보이는 차이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을 살린다. ‘여럿이 함께’ 동질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과 함께 간다. 그래야 흥행하기 때문이다. 책상머리(desk)에 앉아 하루하루 시름하는 것은 리스크(risk)다. 위험소지가 많다. 솔직히 누군가는 뒤켠에서 욕을 바가지로 할 것이다. 그런데 욕을 먹고 싶지 않은 게 데스크다. 하지만 언젠가는 욕을 했던 그 사람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데스크가 될 것이고, 또 책상을 걷어찰 것이다.
솔직히 어떨 땐 동료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너무 힘들어 적당히 하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데스크보다는 누가 관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상머리의 고민은 힘겨운 ‘노동’이다. 편집의 ‘야신’이 될지, 아니면 ‘야인’으로 떠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설령 지금이 9회 말 투아웃 상황이라도 ‘맛있는 편집’을 위해 뛸 수밖에….
불어터진 국수는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