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철민의 편집이야기 <6> 사진다루기

‘대통령 부각하는 1면 사진… 권력 중심 보도관행’. 지난 6월 24일자 기자협회보 기사다. 올해 11개 일간지 1면의 박근혜 대통령 사진쓰기를 분석했다. 조선·세계가 35회로 가장 많고 한겨레가 5회로 가장 적다. 다들 읽어 봤겠지만 여기선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는 식의 옳고 그름을 논하진 않겠다. 그럴 필요도 없다. 신문사의 스탠스에 따른 사진편집 전략의 차이일 뿐이니까.
시각적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사진가 나단 라이언스(Nathan Lyons)는 “사진의 문제는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찍느냐이다”라고 했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어떻게’가 신문사들의 ‘차이’를 만들고 독자들의 해석까지 달라지게 만든다.

문화유전자 밈(meme)이 다르다
 조선과 한겨레의 1면 사진편집이 다른 건 그들의 문화유전자 ‘밈(meme)’이 다르기 때문이다. 밈은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한 말이다. 유전이 아닌 모방을 통해서 전해지는 문화적 DNA다. 삼성의 밈, 애플의 밈처럼 조선의 밈과 한겨레의 밈이 다름이다. 이것이 ‘어떻게’를 결정짓는다.
 <사진 1>과 <사진 2>는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사진 편집. 대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조선과 한겨레 스탠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진 3>과 <사진 4>도 그렇다. 한겨레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가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다른 신문들이 현장 사진을 쓴 것과 달리 TV화면 속 안철수를 1면에 냈다. <사진 5>와 <사진 6>도 조선은 부시를, 한겨레는 오바마를 더 신경 썼다.




정보의 생김새가 달라진다
 편집에는 동기가 숨어있다. 일본의 편집 천재 마츠오카 세이고(1944~)는 제목의 어휘를 선택하는 것부터 편집자의 성장배경과 평소의 신념 등이 필연적으로 편집과정에 담겨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관이 개입된다. 마츠오카는 이 동기에 따라 ‘정보의 생김새’가 달라진다고 했다. 같은 정보와 비슷한 사진을 다뤄도 정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7>과 <사진 8>은 같은 정보의 사진인데도 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표정이, 한겨레는 박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눈치를 보는듯한 느낌의 의도가 들어있다. <사진9>와 <사진10> 최경환 부총리 사진도 조선에선 비장함이, 한겨레에선 쩔쩔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은 현장의 정보라도 정보의 모양새가 달라진 것이다.<사진 11>과 <사진 12>처럼 메르스 뉴스도 그렇다. 조선은 정부의 활동에, 한겨레는 시민의 표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어 하나에 정보의 표정이 바뀐다
<사진 13>과 <사진 14>는 같은 사진이지만 사진 제목과 트리밍에 따라 정보의 생김새가 달라졌다. 조선의 사진 제목은 ‘폐쇄 사회 북한 간 구글 회장’, 중앙은 ‘평양 간 구글 회장’. ‘폐쇄 사회 북한’과 ‘평양’은 큰 차이가 있다. ‘폐쇄 사회’란 말만으로 정보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조선은 의미를 못 박아 독자의 해석여지를 차단했고 중앙은 해석여지를 열어 뒀다. 각사의 스탠스에 비춰보면 둘 다 적절한 제목일 수 있다. 다만 트리밍에 있어선 중앙이 낫다. 조선은 북한병사 얼굴이 너무 크다. 구글 회장보다 더 눈길을 잡아끈다. <사진 15>와 <사진 16>은 이재용의 사과 사진. 한겨레는 크게 썼다. 조선은 작게 쓴 걸 떠나 이미지가 너무 많아 이재용의 사과 사진이 묻혀 버렸다.




어두운 문형표와 웃는 박대통령
<사진 17>과 <사진 18>은 개인적으로 조금 의아했다. 박대통령의 웃는 사진을 메르스 기사 밑에다 일부러 쓴 것 같은 느낌. ‘나라가 메르스로 비상인데 박대통령은 지금 뭐하고 있나’ 라는 메시지로 읽혀진다. 침통한 문형표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 박대통령보다 더 크게 쓴 것도 조금 그렇다. 메르스 방역 구멍의 책임은 박대통령이 아닌 문형표에게 있다고 말하는 듯한 편집이다. 사진배치가 마치 박대통령을 바라보며 원망스런 표정을 짓는 스토리도 생겨난다. 우리의 뇌구조는 관계 속에서 보도록 설계 돼 있다. 사진들을 연관시켜서 볼 수 밖에 없다.




‘매뉴얼’이 이미지 크기를 결정한다
<사진 19>처럼 사진 이미지가 지면에 비해 크게 쓰는 경우(image>text)가 있고 <사진 20>처럼 작게 쓰는 경우(image<text)가 있다. 인물면 등 정보전달이 많은 면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쓰일 때가 많다. 디자이너 정병규는 이미지 크기를 결정하는 건 매뉴얼이라 했다. 매뉴얼은 신문제작의 시작과 끝을 지배한다. 매뉴얼은 신문사 고유의 블러드 타입이다. 이게 조선과 한겨레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매뉴얼을 통해 소속 기자들은 피를 수혈 받고 밈을 이어갈 수 있다. 편집부에 매뉴얼이 없다면 만들고 있다면 시대에 맞게 하나씩 다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