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스토리 <12>

 

 

 

 

미국 유명 광고회사 ‘영앤드루비캠 그룹’ 이준희 글로벌 인재경영 프로그램 매니저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채용 담당자로서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는 A4용지 1장 분량이 제일 읽기 좋더군요. 거기에 진부한 표현이 아닌, 나만의 키워드가 있으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가장 남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창의적인(creative)’이라며 “수많은 지원자가 ‘창의적’이라고 쓰면 그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새롭고 참신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도 인사담당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씨는 “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료를 잘 요약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료란 내 머릿속에 든 기억, 책에서 읽은 것, 온라인에서 검색한 내용 등을 포함한다. 이런 자료를 빠른 시간 안에 잘 요약하는 것이다. 요약을 잘한다는 것은 그 자료에서 가져와야 할 요점을 재빨리 알아채서 압축된 글로 표현함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인에게 요약 능력은 중요한 기본기다. 장황한 서류뭉치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조직생활은 기획서를 만들어 보고하고 보고받는 과정이다. 직장 상사에게 사안의 중요성을 단도직입적으로 브리핑하면서 한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제안서를 내놓아야 주목받을 수 있다. 그래서 A4 한 장의 기획서, A4 한 장의 자기소개서, A4 한 장의 보도자료, A4 한 장의 에세이가 주목받는다. 왜 한 장짜리인가. 이는 필자가 그 문서 글을 읽을 사람의 시간을 배려했다는 뜻이며, 읽는 이의 폭넓은 경험과 판단력을 이미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정보를 습득한 즉시 신속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인지적 습성 상 가장 쉬운 결정부터 먼저 내린다. 꼼꼼히 조사한 후 진지한 회의를 거쳐야 하거나 자료를 더 보충한 후에 내려야 할 결정은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지나친 정보는 결정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킨다. 시간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비용 증가는 모든 결정과정의 아킬레스건이다. 결정이 지연되는 순간 목표를 향한 경쟁 순위에서 뒤처지는 것은 자명하다.
기획서를 예로 들어보자. A4 한 장의 기획서는 한글 1800~2000자(폰트 10 기준)분량이다. ①제목 ②목표 ③논리적 근거 ④상황진단 ⑤비용산출 ⑥액션플랜 순으로 글을 전개하면 좋다. 제목과 부제는 기획서 전체를 규명하고 한계를 명확히 한다. 목표는 기획서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한다. 논리적 근거는 제안이 시급한 이유를 증명한다. 상황진단은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그려낸다. 비용산출은 투입재정 규모과 예상수익을 사실적으로 예측한다. 실천계획(액션플랜)엔 기안자가 기획서를 읽은 사람에게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즉,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기획서를 받아보는 사람에게 추천을 원하는 것인지, 지출 승인을 원하는 것인지, 권한 부여를 원하는 것인지를 압축하여 밝히는 최종단계다.
요약능력은 논술 시험에서도 긴요하다. 대학진학 수시전형 논술고사에서 제시문의 핵심을 200자 이내로 요약하라는 문제가 종종 나온다. 긴 제시문을 재빨리 읽고 나서 서너 문장으로 압축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칼날 같은 독해력과 본질을 놓치지 않는 편집력이 요구된다.
요약하고 또 요약해야 한다. 단 필수적 근거와 결론마저 생략하면 안 된다. ‘요약하라’는 문제는 주어진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요약을 잘 했다는 것은 제시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의미이고 글의 논점을 잘 이해했다는 뜻이다.
요약한 글에 다시 살을 갖다 붙이고 충분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확장시키면 다시 본래 글이 된다.
논술이 주제를 분명하게 잡고 논거를 대면서 설득력을 발휘하는 과정이라면 요약은 장황한 글을 줄여 논거를 추리고 그 논거에서 주제를 뽑아 한 줄 또는 한 문단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요약이란 한 줄의 제목을 뽑는 과정이다. 뉴스 편집자가 마감시간을 코앞에 두고 기사의 헤드라인을 뽑는 과정과 유사하다. 요약을 잘한다는 것은 주제 파악을 잘한다는 것이고 주제를 제대로 잡으면 설득력 있는 논술이 가능하다.

 

 

#긴 글을 요약하는 순서는 3단계
1 요지 파악(결론 찾기)
대부분 맨 뒤쪽에 있는 단락이 결론 단락이다. 반면 역삼각 구조로 이루어지는 뉴스 보도기사의 경우 맨 앞 리드가 요지가 된다. 숲 전체를 조망할 줄 알아야 솎아낼 나무가 보인다. 글 맥락을 잡아야 어떤 부분을 빼고 어떤 부분을 남길 것인지 판단이 선다.


2 논거 파악(근거 찾기)
필자가 내세우는 결론의 논리적 구성을 파악한다.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뼈대를 찾는 과정이다. 핵심어(주인공)를 둘러싼 중심문장을 찾아 밑줄을 긋고 최종적으로 몇 개의 문장으로 추려본다.


3 요약문 작성(요약 실천)
먼저 요약문의 길이를 헤아린다. 가령 요약문을 서론 본론 결론 형태로 200자로 요약한다면 전체 내용을 3, 4문장으로 단순화 한다. 즉 ‘지금 우리사회를 뒤흔드는 특정 이슈가 발생했다.(문제제기) 그 이슈는 3가지 문제를 발생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논거제시) 해결을 위해선 A가 나서서 플랜 B를 실천하고 플랜 C를 보완해놓아야 한다. (결론도출)’로 요약한다.
요약문을 500자 분량으로 써야 한다면 서너 문장을 기본 구도로 조금씩 살을 붙이고 이미 파악된 중심문장들을 추가로 곁들이면 금방 열 문장을 넘어선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제시문 요약’과 ‘주장 요약’을 헷갈리면 안 된다. 제시문 요약은 주어진 제시문 틀 내에서 글의 핵심 주장을 압축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고, 주장 요약은 여러 제시문에서 드러난 찬성-반대 입장과 긍정-부정 입장들을 추려내 응축해 다듬는 것이다. 이때 응시자 본인의 주관적 생각을 요약 글에 집어넣으면 안 된다. 제시문 주제와 동떨어진 생경한 어휘사용도 금물이다. 제시문 문장을 그대로 옮겨도 안 된다. 문장이 길어지면 뜻이 변질되기 쉽다. 한 문장은 대체로 최대 30자 이내로 맞춰 중심생각 하나만 담아야 한다. 단문 형식으로 써야 긴장감을 갖춘 좋은 문장이 된다.
주장과 표현이 난무하는 SNS시대. 단순명쾌한 요약의 기술은 커뮤니케이션 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