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31>


나는 데스크(desk)다. 책상(冊床?desk)이 아니다. 책상머리(desk)에 앉아서 제목과 레이아웃을 손보는 데스크(desk)다. 그런데 웬만하면 편집대장에 ‘빨간 낙서’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제목을 고칠 줄 몰라서가 아니다. 뉴 트렌드의 레이아웃을 몰라서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다름’과 ‘틀림’을 인정하고 싶어서다.

편집기자가 애써 만들어온 작품에 끼적끼적 ‘낙서’를 하는 건 훈수가 아니라 훈계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단정해버리는 독선이다. 물론 ‘틀린 것’을 무조건 ‘맞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한다. 다만 당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전제를 분명히 단다.

편집 초년시절과 10년차 때 난 ‘틀림’과 ‘다름’의 모호한 경계에서 몰상식한 훈육을 받아야만했다. 별로 유능해보이지 않던 데스크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대장을 고쳐대는데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그는 무조건 ‘틀렸다’고만 했다. ‘다르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내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은 데스크가 ‘틀린 게’ 아니라, 그와 내가 ‘다르다’는 거였다. 만약 그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랑 틀려, 그 사람은 우리랑 틀리게 살아.” 맞는 말 같지만 틀린 말이다. 다름은 ‘차이’다. ‘차이’를 틀린 것이라 생각하면 ‘차별’이 된다. 흑 아니면 백, 승자 아니면 패자, 정답 아니면 오답은 틀린 것이지만 다른 것이다. 틀리다 생각하면 그것은 고쳐야 할 오답이 되고, 고쳐봐야 고작 문제 하나 맞히는 자기만족일 따름이다.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다름은 같지 않음을 말하고, 틀림은 옳지 않음을 의미한다. 두 표현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동의어인 양 사용하는 데 있다.

“네가 틀렸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네가 틀린 게 아니라 너와 나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여야 한다. 이건 접점을 찾는 야합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두 사람의 생각과 인식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다. 이는 자기를 중심에 놓고 자기 관점에서만 보려하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술집을 기준(동서남북)으로 손짓 발짓을 한다. 목사에게 길을 물으면 교회를 기준으로 손짓 발짓을 한다. ‘+(플러스)’를 놓고도 수학자는 덧셈이라고 말할 것이고 목사는 십자가, 간호사는 적십자, 경찰은 네거리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틀린 게 아니다. 단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이해의 대상이다.

요즘도 편집부 선?후배 간 ‘빨간 트집’이 심심찮게 목도되고 있다. 그들은 ‘다르다’고 얘기하지 않고 ‘틀렸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경우도 많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틀렸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면 본인이 틀린 것엔 둔감하게 된다. 반대로 ‘틀렸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으면 진짜 틀린다. 말은 습관이다. 습관은 저마다 다르다. 살아온 인생이, 배워온 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다르고 배워갈 인생도 다르다.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다. 살아온 인생이 틀렸고 배워온 여정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르다’와 ‘틀리다’는 정말 다른 말이다. ‘다르다’에는 이해와 포용이 숨어있지만 ‘틀리다’엔 독이 묻어있다. 틀리게 본다는 것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고 그 부정적인 시선은 사람을 배타적으로 만든다.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세상에 나만 옳은가. 나만 잘나가는가. 나만 박식한가. 다르다 생각하면 그것은 점차 ‘같음’이 된다.

“나 젊었을 때 일하던 거 생각하면 요즘 기자들은 너무 해. 도대체 일을 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모르겠어. 우리 때는 상사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잖아. 요즘 애들은 말을 안 들어요. 고집들이 세서…”

단언컨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절대로 아니다. 다르다는 건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다.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길, 그건 일종의 존중이다. 빨리 가려는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가면 귀찮고 번거로울 것이다. 함께 가기 위한 전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럴 수 없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다.

“모두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 마라. 매끈한 돌이나 거친 돌이나 다 제각기 쓸모가 있는 법이다.”<도산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