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 <10>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끊어야 할 때가 있다. 지지멸렬하고 지지부진한 인연의 흔적이 한둘인가. 헝클어지고 지저분해진 나의 삶을 시원하게 청소하고 재배치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시기적절하게 정리되고 새롭게 의미부여가 될 때 나의 영혼은 재충전되어 새 출발할 수 있다.

비우고 채우고 다시 텅 비우는 과정 속에서 유한한 생은 알알이 익어간다. 호젓이 떠난 남쪽바다 올레길 키오스크에 쓰인 한 줄의 문장이 내내 입안에 맴돈다. 그가 보내온 이메일 속 고백 한 줄기가 장편소설 한 권보다 가슴을 찌른다. 삶의 산책길 주변에 많은 잠언과 금과옥조의 경구들이 흩어져있다. 한나절 지치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강줄기가 드디어 바다로 진입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느티나무 그늘아래 나무벤치. 건듯 불어온 신록의 봄바람 한 줄기가 이마를 어루만지듯 내 삶을 다독거려줄 몇몇 미디어 아포리즘을 모아본다.



 노숙자 출신으로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카디자 윌리엄스. 당시 그녀의 장래희망은 교육전문 변호사였다.

고교 졸업식 연설에서 그녀는 말했다. “한 달에 다섯 권의 책을 꼭 읽었습니다.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했습니다.

거리의 길바닥은 제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LA타임스

#엄마는 나를 오프라 윈프리로 부르곤 했다.


ㅡ 노숙자의 딸로서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카디자 윌리엄스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했고 옷도 언제나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11학년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께 거처는 옮기더라도 더 이상 학교는 옮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저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전 똑똑하다는 것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졌어요. 주변에서 ‘노숙자니까 대충 해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싫었습니다.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제 이름은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저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2009년 미국 LA타임스의 기사 하나가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18세 홈리스 흑인소녀 카디자 윌리엄스의 극적인 인생 스토리 때문이다. 미혼모 엄마가 14세 때 카디자를 낳았다. 모녀는 콘테이너 박스나 노숙자 쉼터에 머물다 여의치 못하면 ‘이사’를 했고 이 때문에 카디자는 고교 때까지 12년 동안 12곳의 학교를 다녔다. 카디자는 매춘부, 마약상들이 우글거리는 거리의 쓰레기더미에서 살았지만 아침마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어 깨끗한 모습으로 학교에 갔다고 한다.

거리의 노숙자들이 “너는 빈민가 출신이니 대학은 꿈도 꾸지 말라”고 놀렸지만, 카디자는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 엄마는 그녀를 오프라 윈프리로 부르곤 했다. 하버드대학교 입학사정관은 강조했다. “이 학생을 뽑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잃는 것이다.” 카디자는 브라운, 컬럼비아, 암허스트, 윌리엄스 등 20여 개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그 가운데 하버드대를 선택했다. LA타임스 기사의 제목은 ‘그녀에게 마침내 집이 생겼다. 하버드라는(She finally has a home : Harvard)’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ㅡ 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비평가·사상가 1871~1945)


참 무서운 경구다. 많은 대한민국 중년남자들이 이 문장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오늘 하루도 사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의지는 여리고 희망은 멀다. 타성의 뱃살은 두꺼워지고 머릿속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극적 관성에 길들여져 간다. 자, 단 하루라도 자기 생각대로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실천의 발걸음 뚜벅뚜벅 걸어보면 어떨까. 하루를 건지면 한 달도 건질 수 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낙망하지 마라.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이 스스로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강요한다. 이 짐을 벗어나는 길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길뿐이다.


ㅡ 랠프 월도 에머슨 (미국 시인·철학자 1803~1882)


살면서 언제쯤 어깨 위 삶의 버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아마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무거운 짐은 가슴을 누르고 있으리라. 다만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 미국 건국 시기 정신적 스승으로 숭앙받았던 에머슨은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사람이 생을 마감한 후 남는 것은 ‘쌓아온 공적’이 아니라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ㅡ 미우라 아야꼬 (일본 소설가 1922~1999)


소설<빙점>으로 유명한 일본 여성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남긴 유언이다.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 주부였다. 남편의 수입이 변변찮아 구멍가게를 열었는데 친절하면서도 정직하게 물건을 팔면서 손님이 많아졌고, 급기야 하루 종일 가게에 매달릴 정도로 고객이 쇄도했다. 하루는 퇴근한 남편이 말한다. “우리 동네 다른 가게들은 이제 손님이 거의 없대. 저 건너가게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더군.”

이 말을 들은 미우라는 당장 파는 물건의 종류를 줄였고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했다. “그 물건은 건너편 가게 가시면 살 수 있습니다.” 그 후 바쁜 가게 일에서 시간여유를 찾게 되자 미우라는 독서에 빠질 수 있었고, 마흔 두 살에 불후의 명작<빙점>을 썼다. 나 죽어 남는 것이 있다면 남에게 주었던 것이 아닐까. 타인들은 세상에 없는 나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나에게 유익한 일은 오직 자신만이 실감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 베풀고 타인을 도우려했던 일은 타인들이 두고두고 기억하고 칭송한다. 그것이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말기환자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는 ① 내 뜻대로 살 걸 ② 일 좀 덜 할걸 ③ 화 좀 더 낼 걸 ④ 친구들 챙길 걸 ⑤ 도전하며 살 걸이었다.


2012년 초 영국신문 가디언은 화제의 책<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가지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를 소개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말기환자들을 돌봤던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펴낸 책이다. 이 간호사는 수년간 말기환자 병동에서 일하며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통찰’을 꼼꼼히 기록했다. 지켜본 사람들은 임종 때 경이로울 정도로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데,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놀랍게도 후회하는 것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가장 큰 회한은 ‘타인의 기대에 맞추지 말고, 스스로에게 진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하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하지 않기로 한 자신의 ‘선택’ 때문에 꿈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일 좀 덜 할걸’ 하는 후회는 모든 남성에게서 나타난 공통점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들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내면에 쌓인 냉소와 분노가 ‘병’을 만들었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