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30>


딱 1년 전 4월 16일, 봄이 시작될 때 봄이 끝났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한 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였다. 비보는 마치 크렘린궁의 붉은 눈물 같았다. 또한 어둠이 드리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검은 빗물 같았다. 한국편집기자협회 50명의 데스크들은 패닉상태가 되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건 분명 침몰이 아니라 수장(水葬)이었다. 모두들 가슴을 저미며 슬퍼했다. 첫날 여정부터 애통하니 남은 객정(客程) 내내 비통했음은 물론이다. 국민들 가슴에서 애국가는 멈췄다. 국민을 잃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 1년이 지났다. 여전히 하늘에선 ‘우리를 잊지 마세요’라는 절규가 흩날리고 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4월 16일에 머물러 있고, 우리들의 시계(時計)도 4월 16일에 멈춰있다. 잊지 않겠다던 숱한 다짐들, 통째로 바꾸겠다던 엄숙한 결심은 세월호처럼 전복된 상태다.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가슴을 치고 눈물바람을 하던 사람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물바람을 맞고 있다. 1년 전처럼 저녁 바람이 차다. 1년 전처럼 구천의 바다는 검푸르다. 1년 전처럼 국가는 좌표를 잃었다. 1년 전처럼 9명의 꽃은 ‘수취인불명’이다. 세월호는 앞으로 닥칠 그 무엇의 ‘징후’다. 덮은 자도, 묻은 자도, 잊은 자도 모두들 공범이다. 국화꽃처럼 쌓인 304명의 슬픔은 앞으로 또 1년을 과거 속에서 표류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밤까지 하얗게 피어있던 벚꽃이 다음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건 1℃라는 온도의 무서움 때문이다. 1℃는 빙점으로 가는 오한이다. 하물며 까만 바다 밑 차가운 영혼들은 그 1℃의 무거움으로 인해 얼마나 추웠을 것인가. 당시 수온은 12℃, 6시간밖에 버틸 수 없었다.

이별을 납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시간은 가끔씩 뿌리째 흔들린다. 잊히지 않아 가끔씩 목 쳐들고 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우린 무엇을 했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왜 그렇게 헤어졌는지 묻고 또 묻는다. 두렵고 고통스럽다. 우린 서로 다른 종류의 무수한 ‘이별들과의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별과 이별하지 않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별을 끝까지 치러내는 게 옳은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어느 한쪽이 ‘이제 그만 끝’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헤어질 수 있으나 이별에도 도리가 있다. 시심(詩心)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이별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떠나려 해도 이별이란 잔상이 남는다. 결국 몸과 마음의 진을 다 빼고 나서야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람이다. 그게 사랑이다. 어차피 끝나는 마당에 담담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는 건 억지다. 세월호의 이별은 그래서 절멸(絶滅)이다. 잘잘못에 상관없이 먼저 결별을 통보받은 꼴이어서 그렇다.

요즘 들어 부쩍 고독하다. 살아온 날들이 허무한데, 앞으로 남은 날들마저 이미 ‘허무의 정점’을 찍은 듯하다. 본디 ‘허무함’은 예약을 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때문에 어떠한 설렘도 일지 않는다. 밤은 길고 낮 또한 길다. 잠만 짧아졌다. 술로도 이기지 못하는 번뇌라면 그건 ‘고민’이 아니라 고통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나, 사람의 숫자만 늘고 있다. 그 사람의 인생 여력이 내 인생에 틈입하지 못하니, 그저 막연한 숫자 늘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만나기가 두렵고 또 두렵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쳐간다. 갱년기라는 폭풍우를 만난 건 아닌지, 돛대가 휘청휘청한다.



세월호 1년….


그리고 세월호 2년차,


우린 이별과 이별해야한다. 그것이 사라진 꽃이든, 사라질 꽃이든 이별해야한다. 그것이 모두가 사랑했던 순간들에 대한 예의이고 이별에 대한 예의다. 물론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침몰하고 있는 이 시대의 보편타당한 부정(不正)을 떨쳐낸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그리고 다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듯 이 당위성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 봄은 다시 오지만, 다시 오는 봄은 과거의 그 봄이 아니다. 모든 여행의 끝은 귀향이다. 이제, 이별과 이별한다. 아니, 이별과 이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