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만주 신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외할머니의 식탁은 고깃국물, 매콤한 두부지짐, 수수 섞인 콩밥, 그리고 빻은 명태내장찜 같은 동북음식으로 기억된다. 마찬가지로 동대문역 광희동 몽골타운건물 2층에 위치한 ‘울란바타르’의 분위기도 만주의 밥상과 비슷했다. 1인분에 7천원이지만 일상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가족을 위한 요리다. 먹기 좋은 단품메뉴는 당근과 감자를 넣은 양갈빗국, 초이왕, 그리고 골랴시다. 가격대비 엄청난 양이 놀랍다. 입맛을 돋우는 국물과 파스타, 그리고 메인디시로 쇠고기찜이 식탁에 놓이면 명절날의 집밥같은 기분이 든다.
양고기스프는 양갈비를 도가니탕처럼 뭉근하게 끓인 음식이다. 버터를 넣었지만 크림스프처럼 걸쭉하지 않고 맑은 국물에 갈색빛이 감돈다. 숟가락을 한입 뜨면 양고기의 묵직한 맛과 감자의 넓디넓은 포용력, 그리고 당근의 정직한 풍미와 옅은 파향이 느껴진다. 은은함, 감칠맛, 강렬함이 조화롭다. 여기에 러시아빵을 찢어 말아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초이왕은 몽골식 볶음국수다. 면발은 칼국수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한두번 더 짧게 썰어 식감은 국수보다 쫄깃한 파스타에 가깝다. 널찍하고 얇은 면에는 야끼소바처럼 기름이 고루 발려 있다. 은은한 마늘, 파향 위로 마술소스가 섞였다. 불량식품같은 쫀득함에 머리가 갸웃하지만, 이내 두 맛이 밀고 당기며 식욕을 자극한다. 이 비법소스는 된장처럼 유학생, 이민자들의 향수를 달래는 소울푸드다.
골랴시는 헝가리의 굴라쉬가 동쪽에 전해진 음식이다. 한국어 메뉴판에 따라 ‘비후스텍’이라 적기도 한다. 네모낳고 큼직하게 썰어 넣은 소고기 등심을 우스터소스, 브라운소스에 적셨다. 나이프를 대면 폭신한 케이크처럼 결이 부드럽게 찢어지고 뜨거운 육즙이 촉촉히 배어난다. 양기름이 스며든 맛있는 국물에 으깬 감자(메쉬드 포테이토)를 함께 먹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마르꼬프 까레이스키’라는 샐러드를 곁들이면 느끼함을 잡을 수 있다. 새콤달콤하면서 아삭하고 시원한 당근 피클이다. 이름의 뜻은 ‘고려인 당근’이다. 강제이주된 한인들이 먹다가 러시아 전역으로 퍼진 샐러드다. 함경도에서도 ‘당근지’라는 비슷한 김치가 있었다.
투박하면서 풍성한 ‘울란바타르’는 좋은 음식과 좋은 요리의 차이를 생각나게 한다. 가정식은 단지 ‘조금만 연습해도 만드는 단순한 요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매력적 음식’은 치킨, 삼겹살, 라면처럼 복잡한 기술이나 세련된 멋은 없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닐까? 이곳의 단순함에도 그런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