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자리 빌어 고개 숙여 사죄
이 자리 빌어 감사의 뜻 전해
이 사건을 고위관리 말을 빌어 보도


방송에서 한 연예인을 볼 때마다 그의 방대한 지식에 놀란다. 그런 그가 말할 때마다 틀리는 표현이 있다. TV를 틀었다 하면 나오는 성공한 방송인이라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그이기에 그가 잘못 말할 때마다 빨간펜으로 수정해주고 싶은 오류 한마디. ‘이 자리를 빌어’다.
최근 한 방송에선 심지어 그가 함께 출연한 후배에게 이 말을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대로 지적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이 방송 내용은 여러 신문매체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기사화했다. 그런데 이 표기를 정작 신문 기자 중에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방송이야 그나마 말로 흘려보내지만 기사는 기록으로 남으니 더 주의해야 한다.   
사실 신문 제목으로 자주 뽑히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만 잘못 써도 두고두고 검색돼 눈에 띄는 실수가 되니 꼭 기억해두자.
여기 지면을 빌어 자세히 말해보겠다. 바로 이 문장을 빨간펜으로 고치면 ‘여기 지면을 빌려 말해보겠다’로 꼭 수정해야 한다. 왜 그럴까.
‘빌리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해 따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이다. 활용을 알면 쉽다. 빌리다→빌려→빌리면.
이에 비해 ‘빌다’는 ‘남의 것을 거저 달라고 사정하다’로 주로 ‘동냥을 빌다’가 대표적인 예로 사전에 올라 있다. 그 유명한 ‘빌어먹을 놈’이 바로 이 빌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활용은 빌리다와 확연히 다르다. 빌다→빌어→빌면 참고로 빌다는 ‘소원을 빌다’처럼 무언가를 염원할 때도 사용하고 활용 역시 같다.
정리해보면 남의 물건을 돌려주기로 하고 쓰는 것은 ‘빌리다’로 충분하다. ‘빌어’는 남의 물건을 거저 달라고 사정할 때나 ‘빌어’ 쓰면 되는 것이다. 활용하면 돈을 돌려주기로 하고 잠시 얻어 쓰는 것은 ‘빌리다’, 밥을 공짜로 얻어먹는 것은 ‘빌어먹다’로 기억하면 헷갈리지 않는다.
밥은 가급적 빌어먹지 말고, 자리도 빌어 얻지 말고 빌리기만 해 사과하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이 지면을 ‘빌려’ 정말 강조하고 싶다. 별표 치고 기억해두자.
이 자리를 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