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 <9>


 

프리랜서 여성작가는 원고 마감에 안도하며 자신의 페이스북(Facebook) 타임라인에 거품 가득한 맥주잔을 찍어 올리고 삶의 넋두리를 몇 자 적는다. 감수성 예민한 40대 주부는 매일 詩를 읽고 한두 연을 인용해 자신의 삶을 교차시킨다. 중년의 직장녀는 휴대전화 그림판에 디지털 펜으로 그린 앙증맞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올려 페친들의 박수를 받는다. 30대 직장남은 주로 먹방 사진에 음주 포스팅을 하는데 싱싱한 안주 사진에 주당들의 반응은 열렬하다. 등산을 좋아하는 50대 중년남은 풀 나무 꽃 사진을 줄기차게 올린다. 인문학 대학 교수는 깐깐한 학습노트를 독백마냥 포스팅하는데 반응은 진지하다. 종횡무진 감성 만발한 시인의 300자 칼럼엔 댓글만 300개가 줄줄이 열린다. 얼굴 셀카를 굳이 줌인하여 보란 듯이 올리는 여성들은 자꾸 늘어간다. 봄나물 무쳐 아름답게 한 접시 빚어내는 페북 요리계 주부 고수들은 방방곡곡에서 음식 포스팅을 내민다.



# 나는 포스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작년 2014년 6월 기준, 페이스북은 전 세계 13억 2천만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최근 30일동안 그 사이트를 적어도 한번 방문한 사용자)가 활동 중인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인 페이스북 가입자 수도 1100만명을 넘어섰고 페북 메신저의 이용자수는 444만명 수준이다.

나의 휴대전화에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페북 뉴스피드 화면은 전 세계 페북 가입자중 오직 나에게만 맞춰진 정보 배열이다. 페북 가입자가 14억 명이라면 14억 개의 맞춤식 화면이 펼쳐지는 셈이다. 일단 가입자들은 모두 친구관계가 다르다. 100명과 페친을 맺은 경우와 1000명과 페친을 맺은 경우는 질적 양적으로 포스팅 배열이 달라진다. 또 ‘친한 친구’인지 ‘아는 사람’인지의 관계 설정 차별화로 중요도가 달라지니 천차만별의 ‘경우의 수’가 생긴다. 또 뉴스피드에 ‘인기 글’ 위주로 올라올지, ‘최신 글’ 위주로 올라올지를 선택할 수 있다. 오늘 밤 심정을 토로한 나의 포스팅을 ‘전체 공개’ ‘친구 공개’ ‘나만의 공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비밀그룹에 가입할 수 있고 동호인 그룹을 만들 수도 있다.

모든 분류와 배열이 페이스북의 ‘영업비밀’이라는 알고리듬 과정을 거쳐 디스플레이된다. 구글의 알고리듬이 구글의 정체성인 것처럼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크 알고리듬은 독보적이면서 ‘어마무시’한 것이다. 즉 페북 알고리듬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닌다. 가공 여부에 따라 상상초월의 차세대 SNS 상품이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사용자 1억 명일 때와 사용자 10억 명일 때, 그리고 사용자 15억 명일 때의 네트워크 가치와 관계망 데이터는 차원이 달라진다.


# 마크 저커버그의 꿈은 무엇일까

페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의 꿈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가입자를 페이스북에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두고 종일토록 페북 안에서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즉 능동적 ‘페북 페인’이 저커버그에겐 가장 ‘어여쁜 고객’인 것이다. 열혈 ‘페북 활동가’는 갖가지 포스팅을 올리고 ‘좋아요’ 눌러주면서 댓글도 열심히 단다. 타인의 좋은 글과 화제의 동영상을 공유해 전파 속도는 일파만파로 강력해진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시사뉴스를 끌어와 공유한다.

뉴스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던 사람들이 이제 페북으로 옮겨와 뉴스를 선택적으로 소화한다. 페북은 점점 ‘세계의 축소판’이 되면서 ‘세상의 수다방’이 된다. 특히 여성들에게 페북은 유사 이래 최초 최대의 ‘표현 해방구’다. 이는 곧 페이스북의 수익모델과 직결된다. 활성이용자(Active User)의 증가는 페이스북 타깃 광고의 효율성을 높인다. 더 많은 포스팅과 데이터를 남길수록 더 정확한 표적 광고 집행이 가능해진다. 유수한 기업체들이 페이스북 마케팅에 명운을 건다. 그럴수록 저커버그는 흐뭇하다.


# 페북은 ‘행복 바이러스’ 경연장

3년 전 미국에서 5만 8000여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참가한 실험이 있었다. 이 실험의 결론은 사용자가 누른 ‘좋아요!’만 분석해 봐도 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사용자들이 클릭한 ‘좋아요!’만을 분석해서 그 사람의 성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향과 성적취향, 그리고 약물남용여부까지 예측했다. 정확도는 얼마나 되었을까? 백인과 흑인 식별률은 95%, 남성성별 식별률은 88%,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성향 식별률은 85%, 약물남용 여부는 73%, 결혼여부는 65%까지 정확하게 맞췄다. ‘좋아요’누르기 자체가 소중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의 첫 단추가 된다는 실험 메시지가 읽혀진다.

뿐만 아니라 무심코 올리는 게시물은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드러내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호주의 연구팀이 18세 이상 616명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외롭다고 답한 여성 308명 중 78%가 페이스북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영화 등 자신에 관한 정보를 과다하게 게시했으며 집 주소를 공개한 사람까지 있었다. 즉 외롭다고 느끼는 정도가 클수록, 개인 신변을 노출하는 포스팅이 잦았다. 알게 모르게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리는 행위로 표출된 것이다.


페이스북은 과연 ‘행복’이라는 단어와 가까울까. 아니면, 불행’ 이라는 단어와 가까울까. 페북 통계전문가 연구에 따르면, 다른 이들의 타임라인을 자주 확인할수록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을 많이 할수록 게시물을 통해 접하는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며 자신은 덜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페북은 각자의 ‘행복 바이러스’ 경연장이기도 하다. 근사한 레스토랑, 멋진 해외여행, 맛있는 음식, 즐거운 표정,행복한 커플샷, 웃음꽃 만발한 가족샷이 넘쳐난다. 우울하고 분노에 찬 ‘격정 바이러스’ 포스팅은 의외로 외면 받는다.


사람들은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원한다. 동시에 우울과 외로움을 감추고 타인의 행복샷을 감상하는 기분은 무얼까. 이 지점에서 페북은 ‘겉 행복’과 ‘속 우울’의 물결이 파도친다. A는 포스팅을 한다. B와 C가 댓글을 달아주며 동의하고 격려한다. A는 B와 C의 댓글에 반응한다. A와 B와 C는 물고 물리는 관계다. 저커버그의 알고리듬은 이를 활용한다. 어느새 페이스북은 우리 시대의 ‘블랙박스’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