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철민의 편집이야기 <2>




 

지난해 12월 아마존에서 360달러 넘게 주고 중고 책 하나를 구입했다. 영국의 급진적 여성잡지 노바의 역사를 기록한 책 ‘노바1965-1975’다. 한달 용돈에 육박하는 거금을 쓴 탓에 속은 좀 쓰렸지만 펼쳐볼 때 마다 밀려오는 감동에 위안 받고 있다. 노바를 구입한 건 영국 가디언의 비주얼페이퍼 전통을 조금이나마 찾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었다.

‘보는 신문’ 가디언의 전통은 노바의 아트 디렉터 데이비드 힐만(David Hilman,1943~)으로부터 시작됐다. 노바를 통해 위대한 잡지 디자인을 보여줬던 힐만은 1988년 가디언을 새롭게 하면서 잡지의 유전자를 신문에 이식시켰다.

◇노바, 여성을 디자인하다
1965년 창간된 노바는 60~70년대 잡지 디자인의 바이블이었다. 영국 타임즈에서 영화평론을 담당하는 케이트 뮤어(Kate Muir)는 노바에 대해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며 아름답게 디자인된 지적인 여성의 잡지”라고 정의했다.
비틀즈, 미니스커트, 플라워 무브먼트로 대변되는 60년대는 여성의 해방이 시작된 시대다. 노바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여성’을 모토로 섹스, 피임, 낙태, 레즈비언 등 시대의 금기들을 하나씩 꺼내 사회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트벤의 디자인을 넘어서다
 노바는 컨셉트와 스타일면에서 독일잡지 ‘트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디자인은 더 뛰어났다. 16페이지에 걸쳐 펼쳐진 4m가 넘는 누드 일러스트레이션,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편집 등 파격적인 디자인 실험들이 이뤄졌다.
‘에로틱’ 사진의 대부라 불리는 사진가 해리 패치노티(1935~ harri peccinotti)가 초대 아트디렉터였다. 그는 사진들을 반복된 이미지를 배치하는 등 비전통적인 방식의 편집을 선보였다. 포르노도 그가 찍으면 은유적 이미지로 바뀌었다.
페치노티 이후 69년부터 힐만이 아트 디렉터를 맡으면서 노바의 디자인은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중고교시절 트벤 매니아였던 힐만은 노바에서 트벤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시각적으로 더 풍부한 디자인을 많이 담아냈다.

◇연출의 트벤, 편집의 노바
 트벤의 플렉하우스가 철저하게 지면을 미리 디자인 하고 무명의 사진가를 고용해 자신이 스케치한 대로 사진을 찍게 했다면 노바의 힐만은 유명한 사진가의 작품을 거의 재단하지 않고 그대로 썼다.
전쟁사진의 거장 돈 맥클린과 몽환적 패션 사진으로 유명한 사라 문, 헬무트 뉴턴, 테렌스 도노반 등 사진 거장들이 노바의 이미지들을 만들었다.
텍스트도 깊이감이 가득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뉴욕의 지성 수잔 손택, 스릴러의 대가 그레이엄 그린 등 시대의 지성들이 원고를 담당했다.

◇보는 신문의 시작, 데이비드 힐만
 힐만의 디자인 인생 하이라이트는 88년 가디언을 리디자인할 때였다. 그는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의 영향을 받아 여백과 체계적인 그리드, 비대칭적 사진쓰기를 바탕으로 한 현대 신문디자인의 기틀을 만들었다.
리브랜딩된 가디언은 혁명적이었다. 사실 1920년대 이후 신문디자인은 80년대까지 별 발전이 없었다. 제호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광고를 달고 지면은 기사를 얹히는 공간일 뿐 시각적으로 지면에 질서를 부여하는 디자인 개념은 전무한 수준이었다.
힐만은 눈의 움직임을 고려해 왼쪽 위로부터 오른쪽 아래로 가로질러 흐르는 편집을 도입했다. 잘 읽혀져야 하고, 체계가 잡힌 그리드에, 기사와 기사의 구분이 명확하며, 심플한 레이아웃에, 다른 신문과 차별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5가지 디자인 기준도 제시했다.
힐만은 24단 그리드를 기본으로 뉴스면 피처면 경제면 등 성격에 따라 8단 6단으로 묶어 변형할 수 있게 했다. 섹션편집(지금의 G2)의 개념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힐만의 가디언은 2005년까지 지속됐다.

◇비주얼 저널리즘을 이끈 마크 포터
2005년 마크 포터는 힐만이 남긴 디자인 유산을 최대한 살리면서 비주얼 지향의 가디언을 만들었다. 가디언 이집션(guardian egyptian)체를 만들어 본문부터 제목까지의 타입페이스(typeface)를 통일한 타이포그래피, 섹션별로 나뉜 컬러 팔레트, 분석과 해설기사를 전달하는데 적합한 5단 그리드시스템. 그 위에서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이미지와 정보그래픽은 뉴스를 어떻게 시각화해야 임팩트가 생기는지를 잘 보여줬다.
포터는 비주얼을 우선했다. 기사를 쓴 뒤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아 껴 넣는 게 아닌 이미지를 고려하고 난후 텍스트를 집어넣는 식이다. 이미지를 위해 텍스트가 양보한 것, 편집을 위해 기사가 희생됐던 것이다. 포터는 “신문 디자인은 일종의 건설키트(construction kit)를 만드는 것”이며 “여러 요소들이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하고 개성과 일관된 톤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이 위에 성공적으로 구축한 가디언의 비주얼 저널리즘은 모바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요즘 대세인 워드프레스로 새롭게 만든 웹사이트도 독자들이 기사를 퍼나르기 쉽게 SNS에 최적화된 디자인 포맷을 보여주고 있다. 포터는 지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네덜란드의 한 방송국과 일하며 화면 속 뉴스가 디지털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방송을 염두에 둔 뉴스화면이 아닌 모바일을 우선 고려한 방송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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