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 <8>


 


일본 최초 에디토리얼 디렉터(Editorial Director)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 편집공학연구소장은 지식독서법의 대가다. ‘지(知)의 편집공학’ ‘지식의 편집’ 등의 저서로 한국에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의 관심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편집공학’(Editorial Engineering)이다. 마쓰오카 소장은 신문·서적·텔레비전·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편집’의 의미와 용법을 더욱 확장시켰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서 정보를 얻을 때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두 편집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삶에서 편집의 순간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일기를 쓰는 것도,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저녁 식단을 짜는 것도, 축구경기 하는 것도 편집이다. 생각하는 것이나 쓰는 것도 편집이다. 심지어 생명체 활동의 본질 자체가 정보 편집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편집이란 “대상의 정보 구조를 해독하고 그것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이란 나라를 아예 ‘편집국가’로 정의 내렸다. 이 개념을 기반으로 편집력을 재정의 해본다면 “산재한 팩트와 스토리를 취사선택 가공하여 완결된 콘텐츠로 종합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마쓰오카의 ‘편집공학’ 개념을 유심히 들여다본 학자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전 명지대교수다. 김 교수는 작년 말 ‘에디톨로지’<사진>를 출간해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의 ‘에디톨로지’는 ‘편집공학’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저자가 직접 출연한 공영방송 신년특강을 통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라는 주제에 시선에 쏠렸다.
“에디톨로지(EDIT + OLOGY)는 ‘편집학’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한마디로 ‘편집’이라고 정의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편집자가 원고를 모아 지면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 혹은 영화 편집자가 거친 촬영 자료들을 모아 속도나 장면의 길이를 편집하여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의미를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한다. 이같은 ‘편집의 방법론’을 통틀어 나는 에디톨로지라고 명명한다.”
한마디로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김 교수의 ‘에디톨로지론’은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콜라보레이션, 큐레이션 등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섞는 것이나 기계적 짜깁기가 아닌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창조는 편집이다’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만이 점유하는 기성 제도권의 ‘계층적 지식’은 원론과 개론을 읽고 학위를 따야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네트워크적 지식’은 진입 장벽이 없다. 검색과 다운로드 업로드를 통해 지식의 바다를 넘나들고 가로지른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즉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 인물이다.
저자는 두 가지 사건을 실례로 든다. 2005년 ‘황우석 사건’은 제도권 학술 논문의 허상과 허실을 깨닫게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 문제를 파헤친 곳은 대학이 아니고 인터넷 동호인 카페였다. 대학과 국가가 황교수를 국가영웅으로 떠받들 때 황우석의 사이언스지 게재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된 것임을 암시했다. 그 결과 황우석 논문은 최고의 생명과학 기술이 아니라 허접한 포토샵 기술에 불과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김 교수는 “이때 한국의 기성 지식세계는 추락했다”고 본다. 지식 편집의 독점권을 지닌 대학의 붕괴가 황우석 사건의 본질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008년 ‘미네르바 사건’도 대학의 지식권력 독점 붕괴의 조짐으로 보고 있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논객(박대성씨)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2008년 하반기 미국 리먼 브라더스의 부실에 따른 서브프라임 사태 촉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동시에 환율폭등 및 금융위기의 심각성 그리고 한국 경제의 위기를 예견했다.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될 때마다 네티즌은 열광했고 ‘미네르바는 과연 누구인가’로 들끓었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지식권력의 공식 체계를 지속적으로 모욕(?)하던 미네르바는 결국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무죄로 석방된다. 미네르바의 정체는 경제 석학이 아니었고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다. 미네르바 자신은 인터넷의 잡다한 지식을 짜깁기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단순 짜깁기가 아니었다. 아주 정당하고 자발적인 ‘지식편집’이었다. 대학의 논문과 학위시스템에서만 가능했던 지식편집이 인터넷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에 기존 지식권력자들은 깊은 충격에 빠진다.
황우석 사건과 미네르바 사건은 텍스트 중심의 논문 지식편집이 더 이상 우월하지 않다는 신호탄이다. 이제 그럴듯한 각주 미주 참고문헌 인용 나열로 포장된 논문을 누가 읽겠는가. 특정분야 박사학위자가 가장 무식할 수도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김 교수는 하이퍼텍스트 시대가 도래했음을 외친다. 탈(脫)텍스트 멀티모바일시대, 나는 미디어 자체다. 나의 미디어의 편집력 유무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