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27>


마지막 잎새처럼 간당간당하던 달력 한 장이 찢겨나간다. 여백엔 절규가 가득하다. 그 질량은 가볍다. 가볍기 때문에 눈물이 걸린다. 소란스러웠던 시간들도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 투성이거늘 우린 늘 쫓겨 왔고 쫓기고 있다. 그리고 쫀다. 1분과 1시간, 1일, 한 달이 모여 해가 바뀌듯, 왜 365일은 364일과 1일 사이에서 항상 우두망찰한가. 해묵은 364일이 가야 해밝은 1일이 온다. 그런데 이맘때가 되면 골수의 모든 마디들이 시큰시큰하다. 망년(忘年)과 망년(亡年)의 기로다. 한 해 동안 지고 왔던 무수한 억지와 억측 사이 ‘후회’가 바싹바싹 마른다.
그때 만약 용기를 냈더라면 그 친구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떠나보내고 나니 후회가 된다. 그때 만약 참았더라면 삶의 행로가 바뀌진 않았을 텐데 떠나고 보니 후회가 된다. 그때 만약 담배를 끊었더라면 담뱃값 오른다고 법석을 떨지 않았을 텐데, 그때 만약 식탐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비만한 관절을 탓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만약 그녀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절망의 짝사랑을 기억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만약 조금만 절제했더라면 아파트 평수를 조금 더 늘렸을 텐데 좁은 방에서 웅크려보니 후회가 된다. ‘후회, 후회, 후회….’
일 년 동안 키운 나무가 바람에 스치운다. 아주 아득한 곳으로부터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향기의 미묘한 흩날림 속에 소리는 깊어진다. 삶의 무게에 겨워 적설을 덜어내는 소리다.(그 어떠한 햇살도 절반은 응달이니까) 응달의 나무들은 그 그림자 속에서 튼튼하게 자란다. 바람이 왔다갔다는 신호를 듣고 햇살을 흡입하는 것이다. 바람의 맛을 아는, 세상풍파를 아는 바람의 아들이기에 그렇다.
지나온 한해는 ‘미완성’을 ‘완성’으로 채우려는 욕심 탓에 그나마 버텼다. 무던히도 참았다. 그건 통증이었다. 비우고자 했으나 버려지지 않았고, 버리고자 했으나 버려지지 않았다. 그 아만(我慢)은 고집스럽고 퉁명스러웠다. 그리고 손에 받아든 것은 결국 미완성이다. 여전히 여백이고 공백이다. 채워질 줄 알았던 일 년의 역사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그게 두렵다. ‘비움’을 ‘채움’으로 바꾸려 했던 자만이 두렵다. 떠난 자와 떠나갈 자만이 서성대는 이 컴컴한 공간이 두렵다. 남은 자는 헛헛하다. 남은 자로서의 위로가 없다. 누군가는 짐을 싸고, 누군가는 짐을 내려놓는다. 시기의 차이일 뿐 사계절 내에 일어나는 진화(進化)다.
가장 두려운 일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도망치려는 습관이다. 이별도 습관이고, 안주(安住)도 습관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의 비율이 95대5 정도인데도 5를 생각하는데 95를 사용한다. 이런 구조 속에 사니 늘 우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결국 기본기를 확실히 닦은 사람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가까이 가서 두려움을 꼭 껴안는 것이다. 강해지는 비결이 많이 실패해보는 것처럼.
서커스단의 어린 코끼리가 어른 코끼리가 되서도 쇠사슬을 끊고 달아나지 못하는 것은 어릴 때 끊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겪는 일이 싫어서 도망치는 것보다 겪으면서 그 느낌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한 번도 깨져보지 않아서 굳은살이 없는 것 아닌가. 아플지라도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게 피하는 것보다 낫다.
‘죽이게’ 아름다운 날들은 그리 길지 않다. 후회할 시간도 없다. 흐르는 물에게 물어보라. 어제의 물이 따로 있고 오늘의 물과 내일의 물이 따로 있냐고? 물은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성품대로 흘러간다. 어차피 인간은 던져진 존재다. 누가 내던져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냥 넝마처럼 가벼이 버려진다. 인간만이 걱정이나 후회를 한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 지나온 사십구 년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어떤 동물들도 ‘현재’만 산다. 인간만이 ‘현재 과거 미래’를 오가며 산다. 현재를 잘 살아야 과거가 ‘추억’이 되고 미래가 ‘기억’이 된다.
일본의 망년(忘年)은 ‘지겨운 시간이여, 빨리 가라’다. 우린 ‘정든 시간이여, 가지마라’다. 우리는 가는 세월을 잡고자 등촉을 밝히고 밤을 지새운다. 물론 이 밤이 지나가고 나면 또 지겨운 밥벌이에 나설 것이지만…. 올해가 가도, 내년이 와도 밥벌이의 지겨움은 계속된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새벽, 김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돈을 벌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넘길 수가 없다. 그래도 넘겨야 한다. 질긴 시간이 목구멍에 걸려 컥컥거려도 필사적으로 씹어 넘겨야한다. 포만으로 더워진 뱃속이 울렁거려도 고개를 숙이고 꾹꾹 씹어 넘겨야한다.
어제의 노동은 끝이 났다. 이제 내일의 노동을 준비해야한다. 망년(亡年)을 살아왔을지라도 어찌됐든 이제는 망년(忘年)이기 때문에 그렇다.
‘1년간 수고 많으셨습니다.’